"합병 비율 적정성 그만 얘기하라" JY 재판부 '경고' 재조명
[더팩트 | 서재근 기자] "합병 비율의 적정성은 본사건 쟁점과 무관하다."(김진동 전 부장판사, 2017년 6월 22일 이재용 1심 공판 中)
"회계부정을 저지른 기업으로 낙인찍혀 기업 이미지 및 신용이 심각하게 훼손될 우려가 있다."(이승영 부장판사, 2019년 5월 24일 삼바 제재 효력 정지 항소심 中)
검찰이 삼성바이오로직스(이하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의혹과 관련, 연일 삼성 수뇌부를 향한 압박 수위를 높여 가고 있다.
그러나 삼성바이오의 고의 분식회계 여부를 살피겠다던 검찰의 수사가 '삼성 승계' 쪽으로 무게추가 옮겨지고, 일부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삼성바이오의 불법행위를 기정사실로 두고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부당합병 의혹을 제기하자 재계에서는 '유죄 단정 프레임'에 대한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특히, 앞서 2심까지 진행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재판에서 특검 측이 제기했던 '삼성 승계를 위한 물밑작업' 시나리오까지 재등장하면서 일각에서는 "애초부터 검찰의 삼성바이오 수사 목적과 방향이 이재용 부회장을 향하고 있던 것 아니냐"는 의심의 시선도 적지 않다.
삼성바이오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사정 당국의 수사 초점은 '증거 인멸'에 맞춰져 있었다. 이달 초 인천 송도에 있는 삼성바이오 공장을 압수수색해 서버와 노트북 등 자료를 확보한 검찰은 해당 자료 등에서 'JY', 'VIP', '합병', '미전실' 등 단어가 사용된 점, '부회장 보고' 파일 등이 삭제된 정황을 근거로 그룹 윗선에서 직접 증거 인멸과 분식회계를 지시했을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를 진행했다.
반면 재계는 물론 학계에서도 검찰의 이 같은 수사가 기업의 경영 환경과 대기업의 보고 체계 등 경제계 경영 생태계 전반에 대한 이해도가 결여된 섣부른 단정이자 사실상 '증거은닉이 분식회계의 정황증거'라는 '유죄 단정 프레임 만들기'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실제로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대학 교수는 "상장 전 기업의 기업가치에 대한 판단은 객관적 평가가 불가능하다"며 애초 형법상 유무죄를 가늠할 수 없는 사안에 관해 정부가 두 번에 걸쳐 태도를 달리하고, 검찰에서 삼성을 향한 '표적 수사'에 나서고 있다고 지적했다.
홍기용 한국감사인연합회 명예회장(인천대학교 경영대 교수) 역시 "삼성바이오가 삼성바이오에피스의 설립 때부터 종속회사로 보는 연결회계가 아닌 관계회사로 본 지분법회계로 했어야 한다고 본 정부의 판단은 콜옵션의 잠재적 지배력을 강조하는 국제회계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해석이다"고 강조했다.
여기에 삼성바이오 의혹과 관련해 사정 당국이 수사 중인 피의사실이 일부 언론과 시민단체 등을 통해 무분별하게 외부에 노출되는 것을 두고도 비판이 이어지자 검찰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부당합병을 쪽으로 수사 방향을 틀었다.
양사 합병 당시 이 부회장이 지분 23.2%를 보유하고 있던 제일모직의 기업가치를 부풀리기 위해 삼성바이오의 고의 분식회계를 통해 자회사 삼성바이오에피스의 지위를 '종속회사'에서 '관계회사'로 변경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설득력을 얻기엔 부족하다는 게 정재계의 중론이다. 이미 이 부회장의 1, 2심 재판에서 수차례에 걸쳐 매회 한나절을 훌쩍 넘도록 공방이 오간 데다 당시 재판부 역시 '합병 비율 이슈와 삼성의 승계에 연관성이 없다'고 못을 박았기 때문이다. 삼성바이오 상장 특혜 의혹을 비롯해 최근 참여연대 등이 주장하는 삼성물산의 수주 누락 의혹 등도 이미 재판에서 다뤄진 사안이다. (2017년 7월 17일 자 <이재용 재판, 구 삼성물산 공시지연 의혹 실마리 풀렸다> 기사 내용 참조)
실제로 지난해 6월 이 부회장의 1심 재판 당시 변호인단과 특검 양측은 양사 기업가치를 측정하고, 합병 비율을 산정하는 과정에서의 부당성 유무를 두고 수일에 걸쳐 많게는 13시간에 걸친 마라톤 공방을 이어갔다. 특히, 특검에서는 양사 합병 이전 이뤄진 SK와 SK C&C 합병 당시 국민연금 회의록까지 증거로 제시하며 재판부 설득 작업에 열을 올렸지만,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당시 재판부는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 비율의 적정성 여부는 이 사건 쟁점과 관련이 없다"며 원활한 재판에 방해되는 불필요한 공방을 자제해 달라고 강조했다. 2심 재판부 역시 양사 합병을 포함해 재판에서 다뤄진 삼성의 개별현안과 관련해 "경영 승계를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는 증거도 없을 뿐만 아니라 일부 개별현안 가운데 이 부회장에게 직간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도 있지만, 이 역시 사후적으로 그 효과가 확인되는 것일 뿐이며 승계를 위한 작업으로 볼 수 없다"고 못박았다.
뿐만 아니라 지난 2017년 10월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6부(함종식 부장판사) 심리로 치러진 삼성물산 합병 무효 소송에서도 재판부는 "양사의 경영 상황을 비춰볼 때 원고 증거만으로 합병이 구 삼성물산 주주들에게 손해만 준 것으로 보기 어렵다"며 회사 측이 합병을 추진하려는 경영상의 이점, 배경 등이 부당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 문제는 물론 삼성바이오 상장 특혜 의혹 등 최근 검찰이 초점을 맞추고 있는 삼성 관련 수사 쟁점은 이미 이재용 부회장의 재판에서 특검이 문제 제기한 사안이다"며 "최근 검찰 수사에서 달라진 점은 삼성바이오 임직원들의 노트북과 서버, 이 부회장과 삼성바이오 합작사인 바이오젠 대표 사이에 오간 통화 내역 등 자료가 추가됐다는 점인데 이마저도 스모킹건으로서 증거가치가 증명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미 20여 차례에 달하는 압수수색과 검찰 공소내용의 무분별한 노출 등으로 삼성의 대외 이미지 실추는 불가피해졌다"며 "경제계는 물론 학계에서도 '표적 수사'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불확실성에 대한 우려가 시장의 공포로 확산하는 건 아닐지 우려되는 것이 사실이다. 삼성에서 이례적으로 해명자료를 낸 것 역시 이 같은 우려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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