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상품 총부채상환비율(DSR) 규제 적용 논리 맞지 않아
[더팩트|조연행 칼럼니스트] 증가하는 가계부채를 잡겠다며 정부가 무리수를 두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나라 경제의 '뇌관'인 가계부채를 줄이겠다고 잘 못 건드렸다가 폭발하지 않을까 심히 우려된다.
최근 가계부채가 1조5000억 원을 넘어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가계부채 증가율은 5.8%로 가계소득 증가율 3.9% 보다 높다.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도 2017년 말 159.8%에서 2018년 말 162.7%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명목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2017년 말 83.8%에서 2018년 86.1%로 늘어났고, 가계부채의 GDP 대비 비율도 97.9%로 34개국 중 가장 높아 전 세계 평균(59.6%)의 두 배 가까이 된다. 우리나라 가계부채는 모든 지표에서 빨간불이 켜져 경제를 수렁으로 빠트리는 방아쇠로 작용할 우려가 크다.
빚을 갚기 어려운 저소득 서민 취약계층 대출자는 제1금융권인 은행이 아닌 저축은행, 상호금융, 여신전문회사, 대부업 등 제2금융권에서 주로 대출을 받는다. 제2금융권은 금리가 높다. 취약계층 대출자의 부채 규모는 지난 1년 사이에 4조 원 이상 증가했다. 가계부채가 증가하면서 이자 부담이 늘어나면 가계 소비가 줄어들고 이어서 기업 생산도 위축된다. 우리나라 서민들의 가계부채는 점점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 되고 있다. 최악의 경우 이자를 못 갚아 은행이 부실화되고 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빚 때문에 일가족이 자살을 선택하는 극단적인 상황까지도 한 발자국씩 가까워지는 것 같다.
정부는 당연하게 가계대출 집중 관리에 나섰다. 하지만 당면한 국가적 위기감에 당황했는지 황당한 정책을 펼치려 하고 있다. 정부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로 대출을 옥죄고자 오는 6월 부터는 제2금융권에도 DSR 규제를 적용한다. 이렇게 되면 담보대출 의존도가 높은 서민대출에 빨간불이 켜진다. 서민들은 대출이 더 어려워져 오히려 빠르게 더 큰 위기를 불러 올 수도 있다. 취약계층은 시중은행은커녕 저축은행에서조차 대출이 안 돼 대부업으로 몰리고 있는데, 모두 DSR규제가 적용되면 급전이 필요한 서민들은 등록 대부업체도 이용하지 못하고 불법 사금융 업체로 몰려갈 수 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고리의 이자를 갚기 못해 눈덩이처럼 원리금이 늘어나 '가계 파산'으로 내 몰릴 가능성이 크다.
황당한 것은 대부분의 모든 대출에 DSR을 적용하다 보니, 예금담보대출조차 받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내가 맡긴 예금을 담보로 대출받는 것을 정부가 막는 건 사유재산권 침해가 아니냐는 불만이 나올 법하다. 여기에 정부는 한 술 더 떠서, 보험사의 '약관대출'까지 규제 대상에 포함시키려 하고 있다. 그동안 정부가 금융소비자권익을 증대시키겠다고 외쳐온 것과는 정반대로 움직이는 것이다.
서민들은 급전이 필요할 경우 보험금을 담보로 잡는 '약관 대출'을 주로 이용한다. 말 그대로 본인이 맡겨 놓고 각종 계약금, 월세, 병원비 등 급전이 필요할 때 맡겨 놓은 돈을 찾아 쓰겠다는 건데 이 조차도 DSR로 대출을 막는다면, 돈이 있는데도 손해를 감수하고 보험을 해약해야하거나 소비자가 극한 상황에 몰릴 수 있다.'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꼴'이 되는 것이다.
더구나 기본적인 DSR의 논리에도 맞지 않는다. 보험약관대출은 금전소비대차가 아닌 보험계약의 선급금으로 금융사의 대출상품과는 다르다. 금융회사의 대출은 회사와 차주간의 금전소비대차 계약이다. 하지만 보험약관대출은 보험계약의 일부로 '대출'이라는 용어를 쓰나, 실질은 보험금이나 해약환급금의 선급금이다. 2007년 대법원 판결로 명백하게 정의됐고, 질권설정, 연체이자, 중도상환수수료, 대출취소 등 대출약정의 기본이 되는 '대차계약' 기본내용 조차 적용되지 않는다.
더욱이 국제회계기준과 보험업 감독업무 시행세칙에서도 약관대출은 대출자산이 아닌 보험계약과 관련한 단순한 현금흐름으로 인식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정부가 아무리 가계대출의 관리가 시급한 문제라 해도 사회보장제도를 보완하는 보장성 보험상품을 일반 대출상품과 동일하게 간주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많다.
보험약관대출을 DSR에 포함시킬 경우 대출실행에 '약관대출'이 문제가 된다면, 보험약관대출을 일시 상환하고 대출을 받아 제도도입의 실효성이 없어진다. 소비자가 대출을 위해 보험을 해약해 버리면, 커다란 손실을 입게 될 뿐만 아니라 사회안전망으로서의 보험 역할이 크게 훼손될 것이다.
더구나, 보험약관대출 현황을 전 금융회사가 공유할 경우 개인의 보험자산(개인자산)을 공개하는 것으로 개인정보보호법을 정면 위배하는 역효과가 발생할 우려도 있다. 또한 제2금융권이 아닌 사금융(사채) 등 제도권 밖으로 서민들을 내몰아 가계 붕괴를 더 촉진시킬 수도 있다.
정부의 가계부채 관리나 축소 정책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무리하게 적용하는 것을 문제 삼는 것이다. 금융위원회가 과잉 충성하느라, 서민들이 당장 생활비가 급해 예금·보험·적금부터 해지하게 만들고, 행정편의주의로 대출상품이 아닌 보험상품의 약관대출을 강제로 포함시키면 보험계약자의 정당한 권리가 축소될 것이다. 정부가 바라는 것이 이것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