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 증대에 떠밀리듯 '보장 범위 확대'…소비자 분쟁 가능성도
[더팩트ㅣ이지선 기자] 보험사들의 새 먹거리로 떠오른 치매보험시장에서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면서 보장범위를 확대한 상품이 쏟아지고 있다. 특히 비교적 흔한 '경증치매'에 대한 거액 보상을 담은 상품까지 나오면서 보험사들에 다소 무리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부터 보험사들이 치매보험의 보장 범위를 확대한 상품을 적극적으로 출시하고 있다. 이전에 나온 치매보험들은 중증 치매에 대한 간병비나 진단금 등을 지급하는데 그쳤지만 최근 상품들이 경증 치매도 보장하고 나서면서 고객을 끌어모은 것이다.
불과 2년 전인 지난 2017년에는 경증치매를 보장하는 상품이 극소수였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홍일표 자유한국당 의원에 따르면 2017년 기준으로 총 103개의 치매보험상품 중에서 경증치매를 보장하는 상품은 4개에 불과해 오히려 지적을 받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경증 치매'를 보장한다는 보험상품은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전체 치매 환자 중에서 경증도 치매 환자는 가장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중앙치매센터에 따르면 치매 경중은 크게 4단계로 분류된다. 가장 약한 단계가 '최경도' 수준이고, 그 이후로 경도, 중등도, 중증 순으로 나뉜다. 경도 수준의 치매 증상을 보이는 비중이 41.4%로 가장 높고 다음으로 중등도(25.7%), 최경도(17.4%), 중증(15.5%) 순이다.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최근에는 경증치매 진단금도 적게는 1000만 원, 많게는 3000만 원까지 높인 상품이 쏟아지고 있다. 앞서 메리츠화재가 '특판' 형식으로 경증 치매에 3000만 원까지 진단금을 지급하겠다고 나서면서 경쟁에 불을 붙였다. 이어 삼성화재·현대해상·DB손보 등 대형사들도 줄줄이 흐름에 동참했고 생명보험사들도 경증치매 관련 상품을 출시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아직 '경증치매'에 대한 기준이 모호하다는 점은 '리스크'로 꼽힌다. 치매 경중을 판단하는 기준은 CDR(임상치매척도)다. 0점부터 5점까지로 구성돼있고 경증치매는 1~2점, 중증치매는 3~5점으로 나뉜다. 하지만 이는 의사가 환자를 상대로 주관적으로 판단하는 것으로, 진단의나 자문의에 따라 판단 결과가 다를 수 있어 지급 분쟁의 여지가 남아있다.
또한 치매 유병자가 점차 증가하는 추세인 데다 경증치매 환자가 비교적 많다는 것도 보험사에 부담이 될 수 있다. 경증도 환자가 전체 치매 환자의 절반에 이르고, 앞으로도 그 수준이 유지되거나 더 많아질 가능성이 크다. 한마디로 보장 범위를 확대해 발병률이 높아질 수밖에 없는 구조인 만큼 그만큼 보험사의 손해율도 커지게 된다.
금융당국도 우려를 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사실 경쟁적으로 보장을 확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만약 이와 관련해 분쟁이 많아진다거나 하면 금융당국 책임론도 대두될 수밖에 없으니 금융당국에서도 한차례 약관 등을 면밀히 살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보험사들이 경증치매 보장 확대 경쟁에 뛰어드는 이유는 수요가 앞으로도 꾸준할 것이라는 예측 탓이다. 보건복지부 중앙치매센터 전국 치매유병현황에 따르면 2018년 60세 이상 인구 중에 치매 유병률은 10.16%에 이른다. 현재 치매 인구는 약 75만 명이지만 오는 2022년에는 거의 100만 명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금융소비자연맹 조연행 회장은 "지금 경쟁이 치열해진 것이 치매보험시장을 선점하려는 시도가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라며 "과거의 통계 등을 통해 위혐율을 고려해 설계했겠지만 예전 암보험 상품도 '직접적인 치료'라는 약관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분쟁이 커졌던 만큼 치매보험도 약관 등을 정확하게 만들어놓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