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력·전문성 부족 핑계로 소비자생협 타부처 이관 시도…정반대 조직 동일시 '왜곡'
[더팩트ㅣ조연행 칼럼니스트] 소비자생활협동조합(이하 소비자생협)을 관장하는 주무부처인 공정거래위원회가 인력도 부족하고 전문성도 없다며 기획재정부로 이관시키는 소비자생활협동조합법 일부개정안이 이학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발의로 국회에서 심의 중이다. 공정위의 무능과 무관심 때문에 의료생협을 보건복지부 산하로 이관하려는 천정배 의원법과 마찬가지로 본말이 전도된 황당한 법률개정안이다.
이번 개정안은 유기농산물을 생산 또는 공급하는 유통협동조합과 유사한 아이쿱, 한살림 등 전국생협협의회가 주동이 되어 발의한 법이다. 공정위는 협동조합 전담부서 및 전담인력도 없으며 예산 및 육성정책이 없어 협동조합업무를 담당하는 기획재정부로 주무부처를 옮기겠다는 것이다. 공정위도 일부 국회의원도 동조하는 모습이다. 그런데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고 이상하다. 협동조합이라는 명칭이 들어가 있다고 다 같은 협동조합인 줄 아는 것 같다.
소비자생협법 제 1조에서 "이 법은 상부상조의 정신을 바탕으로 한 소비자들의 자주·자립·자치적인 생활협동조합활동을 촉진함으로써 조합원의 소비생활 향상과 국민의 복지 및 생활문화 향상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돼있다. 소비자생협은 소비자들에 의한 자주, 자립, 자치적 활동 자체가 목적이다. 따라서 소비자가 주체이자 주인이며 비영리적인 조직이다.
반면 협동조합기본법(제2조)에서 "협동조합은 재화 또는 용역의 구매·생산·판매·제공 등을 협동으로 영위함으로써 조합원의 권익을 향상하고 지역 사회에 공헌하고자 하는 사업조직"이라고 정의돼 있다. 협동으로 영위하는 사업조직이라고 명시돼 있기 떄문에 '영리'적인 조직인 것이다.
협동조합이라는 명칭이 같이 들어가 있지만, 소비자생협은 주체가 소비자인 비영리 조직이고, 일반협동조합은 주체가 공급자로서 영리조직이기 때문에 조직의 차이는 '극과 극'이다. 그럼에도 이익을 위한 일부 생협연합회의 주장에 동조해 공정위나 국회는 정확한 '개념' 파악 없이 이를 동일시해 한군데에서 뭉뚱그려 관리하겠다는 법안을 낸 것이다.
가장 이해하지 못할 조직이 공정위다. 인력도 부족하고 전문성도 없기 때문에 소비자생협의 소관업무를 순순히 내놓겠다고 자인하고 자존심을 버리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공무원들이 생명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자존심이고 밥그릇인데, 이것들을 다 내 놓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이쿱·한살림 등이 포함된 전국생협협의회는 일반 협동조합과의 연대, 정책효과 제고 등 모호한 논리를 근거로 주무부처 이관을 주장한다. 이학영 의원도 공정위가 불공정거래행위를 조치하는 준사법적기관으로 업무성격상 관장하기에 적합하지 않고 전담 능력이나 정책이 부족하기 때문에 소비자생협을 공동체 기업모델로 보고 협동조합의 주무부처인 기재부로 일관되게 이관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의 논리에서는 공급자와 소비자라는 정반대의 주체를 혼동하고 있다. 기재부의 협동조합 모델이 좋으면 해당 모델로 새롭게 인가 받든지 조직을 변경해 사업을 하면 된다.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이 법에 근거한 다른 조합도 송두리채 싸잡아 넘기려 하는 것은 크나큰 잘못이다. 소비자생협이 유통사업으로 많은 자산을 축적했다고 그것을 바탕으로 소비자 주체의 정체성이라는 숭고한 의미를 헌신짝 버리듯이 버리고 이를 생산자 조직과 유사하다고 주장하며 생산자 협동조합과 동일시해 '사업자화'하려는 시각이 황당하다.
소비자생협의 활성화는 소관이 어디에 있든 정부의 의지가 문제라고 생각된다. 공정위가 소비자정책에 소홀하고 10년이 지나도 공제규정하나 만들지 못하는 등 '생협 활성화'의 직무를 유기하고 방치해서 생긴 일이지, 소관이 잘못돼서 '활성화'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농협·신협·수협·새마을금고 역시 개별법에 의해 설립되었고 주무부처가 농림부·금융위·행자부·해수부 등 제각기 다르지만 활성화돼 있다. 이들이 지원을 더 받고 활성화 시키기 위해 협동조합 기본법을 관장하는 기재부로 소관을 이관시켜야 한다는 주장은 들어본 적이 없다.
소비자생협은 2015년 기준으로 666개이며 총 공급고는 1조2000억 원에 이르고, 155만 명의 조합원이 가입하고 있다. 아이쿱·한살림 등 생산자조합과 유사한 유통 생협은 전부 합쳐야 180개 정도에 불과하다. 나머지 생협이 480개 정도로 수적으로도 훨씬 더 많다. 협동조합의 탈을 쓰는 것이 이들에게 어떤 이로움이 있는 지는 잘 모르겠으나, 공론화나 의견 청취 한번 없이 마치 기재부로의 소관 이관이 전체 생협의 의사인 양 법개정을 추진하는 모양새가 우습다.
공정위는 소비자정책 업무를 관장하고 있다. 그러나 공정위는 '돈과 자리'의 힘이 생기는 '소비자권익증진기금' 추진 말고는 '소비자정책'과 관련한 일은 별로 하지 않는다. 2008년 소비자기본법 소관부처가 재경경제부에서 공정거래위원회로 통합되어 모든 소비자관련 업무가 공정위로 넘어왔다. 이때 명분이 정책의 일원화로 일관성 있고, 보다 적극적인 소비자정책의 추진이 가능하다는 잘못된 판단이었다.
그럴듯한 소비자정책의 추진은 차치하고, 최근의 가습기 살균제 사태·라돈침대 사태·BMW 화재 사건 등 국민의 경제적 피해는 물론 생명까지도 위협하는 소비자문제가 발생하고 있지만 공정위는 손을 놓고 있다. 가장 공정해야 할 공정위 산하에서 가장 불공정한 행위가 일어나고 있다. 그러니 소비자단체들도 소비자업무를 관장하는 공정거래위원회에 대해 불만이 많다. 차라리 기재부에 소비자업무를 그대로 놓아 두는 게 나았을 것 같다는 말이 나온다.
능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소비자생협을 기재부로 옮길 것이 아니라, 차제에 관심 없는 소비자정책에 관한 모든 업무를 공정위로 부터 빼앗아 소비자청을 두든지 소비자위원회를 새로 만들어야 한다. 공정위 직무에 있고 조직도 갖춰져 있음에도 생협을 방관·방기하고 제대로 관장하지 못하는 것은 명백한 직무유기다. 문재인 정부는 공정위 소비자생협 담당자들을 '직무유기'로 처벌하고, 생협 활성화를 위한 정책을 강력히 추진하도록 지시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