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일회용 비닐봉지 무상 제공 집중 단속, 전통시장에선?
[더팩트 | 마포=김서원 인턴기자] "이게 몇 푼이나 한다고 비닐봉지 값을 달라고 합니까? 단골 손님 기분 상하죠."
서울시 비닐봉지 무상 제공 점검 마지막 날인 9일 마포구 망원시장에서 비닐봉지를 '공짜'로 건네던 과일가게 상인의 말이다.
이곳에서 36년째 장사하고 있다는 그는 '왜 비닐봉지 값을 안 받냐'라는 질문에 "아예 비닐봉지를 여러 장 달라는 손님들도 부지기수인데, 어떻게 비닐봉지 값을 달라고 하겠냐"고 손사래치며 "여기까지 자주 찾아주는 단골 손님에게 비닐봉지 값으로 100원 더 달라 말할 수가 없다"고 고개를 연신 저었다.
정부가 '일회용품과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서울시는 지난 5일부터 9일까지 백화점·대형마트 등 대규모 점포와 면적 33㎡ 이상 도∙소매업을 대상으로 일회용 비닐봉지 무상 제공 여부 집중 점검에 나섰다. 공짜로 제공하는 사실이 적발되면 5만~300만 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하지만 전통시장은 이번 점검 대상에서 제외되면서 업계에선 정부가 비닐봉지 저감 대책을 제대로 제시한 게 맞냐는 지적이 나온다.
비닐봉지 무상 제공 금지 대상 업종인 백화점, 대형마트 등 대규모 점포 1만3000곳은 이미 일회용 봉투 사용 자체를 금지하거나 유상으로 판매하고 있다.
전통시장 상인들은 비닐봉지 무상 제공 금지 정책에 대해 현실과 동떨어졌다는 반응이 많다. 대부분 가게가 무상 제공하고 있는데 20원, 100원 받는 가게가 있다면 비닐을 그냥 주는 가게로 단골을 빼앗길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이다.
실제 <더팩트> 취재 결과 이날 망원시장에서는 "봉투 달라"는 손님의 요구에 비닐봉지를 '공짜'로 제공하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었다.
이곳에서 40년째 식료품 가게를 운영했다는 한 상인은 "전통시장에선 나이 든 사람들이 조금씩 조금씩 사가는데 비닐봉지 값으로 실랑이하는 건 파는 사람한테도 스트레스"라며 "봉지 값 받는다하면 화내는 손님들도 많다. 상인들한테 비닐봉지 값을 받으라하는 정부 정책이 시장에서는 먹히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을 찾는 중장년과 노년층 고객 상당수가 물건 값에 추가로 비닐봉지 값을 내야한다는 인식이 아직 완전히 자리잡지 못한 점도 전통시장의 비닐봉지 저감 정책 추진의 애로사항으로 꼽힌다. 정부 역시 전통시장이 대부분 영세한 가게들이라 단속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일부 점포만 단속하고 대다수 영세업체인 전통시장에 대한 감시·감독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으면서 정부의 비닐봉지 저감 정책은 실효성 논란을 겪는 중이다.
전문가들은 더욱 실효성 있는 비닐봉지 퇴출을 위해 '비닐봉지 전면 금지·유상 제공'이라는 '판매자' 책임 중심의 정책에서 '소비자' 책임 중심으로 변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망원시장은 지난 9월부터 상인과 주민이 직접 나서 '비닐봉지 없는 시장'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보증금 500원에 에코백을 대여하는 캠페인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미미한 참여율로 아직 효과는 미흡한 상황이다.
이 캠페인을 주도하는 환경보호단체 '알맹' 관계자는 "비닐봉투 사용을 줄여서 환경을 보호한다는 국민적 인식이 아직 자리 잡지 못했고 전통시장 특성상 비닐봉투 유상제공 정책은 비현실적"이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정부가 궁극적으로 비닐봉투를 퇴출시킬 생각이 있다면 비닐봉지 사용한 소비자에 대해 최대 4년 징역과 3만8000달러(한화 약 4300만 원) 벌금을 물리는 케냐처럼 강력한 제재를 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환경시민단체 서울환경운동연합 관계자도 "정부의 환경 관련 지원·규제 정책이 생산자에 대한 당근과 채찍 수준에 그치고 있다"며 "사실상 소비자 인식을 전환하기엔 역부족"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소비자가 변하지 않으면 정책 효과를 보기 어렵기 때문에 인식 개선 캠페인이 우선돼야 할 것"이라며 "보다 궁극적으로는 '환경 교육 의무화'로 친환경 소비문화에 대한 자연스러운 체득 과정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