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기업 규제 외에 소비자정책 관심 없어...소비자도 스스로 권익 찾아야
[더팩트 | 조연행 칼럼니스트] 우리나라 헌법 제124조에는 ‘국가는 건전한 소비행위를 계도하고 생산품 품질향상을 촉구하기 위한 소비자보호운동을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보장한다’고 명시돼 있다. 자본주의 경제 체제에서 소비자가 상품·서비스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이러한 법규가 제대로 실천이 되려면 국가가 적극적으로 소비자를 보호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나라 실정은 아직 그렇지 못한 게 현실이다. 소비자 권리를 찾기 위한 시민 의식이 아직 부족하고 주무 부처인 공정거래위원회의 입장도 명쾌하지 않다. 이에 따라 이제는 소비자 스스로가 소비자 권익을 찾아야 할 때다.
최초의 소비자권리 선언은 존 F 케네디 전(前) 미국 대통령이 의회에서 발표한 ‘소비자 이익보호에 관한 특별교서’에 잘 담겨 있다. 케네디 전 대통령은 소비자가 안전의 권리, 알 권리, 선택할 권리, 의사를 반영시킬 권리 등 4가지 기본 권리를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유럽연합(EU)은 소비자가 생명 및 건강을 침해당하지 않을 권리, 적정한 표시를 행하게 할 권리, 부당한 거래조건에 강제당하지 않을 권리, 부당하게 입은 피해로부터 공정하고 신속하게 구제될 권리, 정보를 신속하게 제공 받을 권리 등 5가지 권리를 가진다고 밝혔다.
소비자 권리는 남이 찾아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컨슈머리즘(Consumerism;소비자주의) 주체는 소비자가 돼야 한다. 그래서 소비자보호법도 소비자기본법으로, 소비자보호원도 소비자원으로 명칭을 바꾸었지만 소비자 의식은 자신이 권리를 당당히 챙기지 못하는 수준이다.
2014년 1억500만 건의 카드사 개인정보가 유출돼 피해자들이 카드사를 상대로 집단소송을 제기했다. 소비자가 10만 원씩 보상금을 받도록 판결을 내렸지만 소송에 참여한 소비자는 10만 분의 1도 안 되는 수천 명에 불과했다. 소송에 참여만 해도 건당 10만 원의 위로금을 받고 피해를 입힌 카드사는 10조 원 이상을 배상해 자칫 문을 닫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소비자의 무관심으로 몇억 원의 위로금으로 소송이 조용히 마무리됐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생명보험사 즉시연금 역시 집단소송 참여자가 적어 생명보험사가 책임을 지지 않고 끝날 가능성이 크다.
소비자 무관심만 문제가 있는 게 아니다. 정부도 공급자 편이다. 2000년 생명보험사들이 상장을 추진할 때 유배당 계약자들이 기여한 몫을 계약자에게 돌려주지 않고 주주들이 그대로 가로챌 수 있는 '규정'에 대해 정부는 미온적인 입장을 보였다. 계약자나 소비자에게 당연히 돌려줘야 하는 ‘생명보험사 상장차익’이나 ‘금융회사 근저당설정비’를 소비자에게 지급하면 금융회사가 망할 수 있어 소비자가 피해를 감수해야 한다는 논리를 수용한 ‘사법부’ 역시 공급자 편이었다.
독과점 기업이 등장하면서 공급자의 영향력은 커지고 소비자권리는 줄어들었다. 또한 공급자의 허위 과장광고로 소비자 판단이 흐려졌다. 일방적인 횡포로 대형화되고 독점화된 공급자가 소비자 위에 군림하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소비자 권리는 약화되고 경제적 약자인 소비자들이 공급자 횡포에 피해를 당하는 상황에서 소비자 권익보호를 위한 경제법이 등장했다. 이 법에 따라 소비자의 피해방지와 보상, 기업의 불공정 행위 등을 규제해 소비자들은 주권을 강화할 수 있게 됐다. 또한 이러한 취지를 반영해 소비자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소비자기본법을 제정하고 기업의 불공정 거래행위를 규제하기 위한 공정거래법을 만들었다.
소비자 보호업무를 담당하는 공정거래위원회는 공정거래법, 하도급법, 약관법, 표시광고법, 할부거래법, 방문판매법, 전자상거래법, 대규모유통업법, 가맹사업법, 대리점법, 소비자기본법, 소비자생활협동조합법, 제조물책임법 등 13개 경제법이 소관 법률이다.
하지만 공정위는 ‘소비자권익’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듯하다. 공정위는 공정거래제도가 시장경제체제의 기본원리인 ‘기업간의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을 보장하기 위한 경제활동의 기본질서를 확립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공정위 설립 목적을 자세히 살펴보면 소비자권익에 대한 세부적인 사항이 눈에 띄지 않는다. 공정위는 주요기능에 ‘소비자 주권 확립’이라고 한 줄 추가했지만 소비자 피해에 따른 구체적인 구제 사항과 소비자 지원에 대한 언급이 없다.
공정위는 소비자 주권을 강화시키기 위한 법과 제도에 큰 관심이 없는 듯하다. 가습기살균제, 라돈 침대, 불타는 BMW 등 소비자 문제가 발생해도 담당 부처이지만 나 몰라라하고 있다.
공정위는 또 소비자생활협동조합법을 기획재정부로 이관하는 법을 발의했다. 또한 공정위는 소비자단체 ‘의료생협’을 공급자단체 ‘협동조합’과 이름이 비슷하다며 기재부와 보건복지부로 떠넘기려 하고 있다.
김상조 공정위원장은 연일 ‘재벌개혁'과 '공정거래’를 외치고 있지만 2017년 6월 취임 이후 500일이 다 되어도 소비자정책에 대해서는 별다른 입장을 보이지 않고 있다. 김 위원장은 ‘관심이 있다’는 말은 했지만 이와 관련된 구체적 내용을 내놓지 않고 있다. 공정위의 소비자에 대한 무관심은 지나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제는 소비자가 주체가 되어야 한다. 징벌적손배제도, 집단·단체소송제도, 입증책임의 전환 등 소비자권익 3법이 제정돼야 한다. 그러면 공급자가 소비자를 먼저 생각하게 되고 소비자도 스스로 권익을 찾을 수 있다. 소비자권익 3법의 제정에 힘쓰고 권리를 스스로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