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구의 상암토크] 중국에 뒤진 ‘한국판 스푸트니크 쇼크‘

3차 정보기술(IT)혁명을 주도해온 IT 강국 한국이 4차 산업혁명에서 후발국 중국에 뒤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4일 경남 거제시 두모동 대우조선해양에서 열린 4차 산업혁명 국방기술 시연회에 참석해 위험한 전투 현장에 투입되는 무인 로봇을 살펴보고 있다. /뉴시스

美 자만심에 우주경쟁 소련에 밀려...中 4차 산업혁명 위력에 한국 해법 절실

[더팩트ㅣ김민구 기자] 시계를 61년 전으로 돌려보자. 장소는 카자흐소비에트 사회주의공화국(현 카자흐스탄) 바이코누르(Baikonur) 우주선 발사 기지다. 1957년 10월 4일. 이곳에서 R-7 로켓이 굉음과 함께 상공으로 치솟았다. 5분 후 로켓은 지름 58cm, 무게 83.6kg 몸체에 안테나 4개가 달린 알루미늄제 구(球)를 지구 궤도에 올려놓았다.

옛 소련이 만든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Sputnik)’ 1호 얘기다. ‘동반자’를 뜻하는 스푸트니크 1호는 크기가 농구공 지름 2개 정도에 불과했지만 소련이 우주 시대 서막을 여는 신호탄임에는 틀림없었다.

스푸트니크 1호를 지켜본 전 세계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특히 당시 소련과 냉전대결을 벌여온 미국은 상상할 수 없는 충격의 도가니에 빠졌다. 미국을 거의 혼절할 지경으로 내몬 것은 위성보다도 소련이 핵탄두로 미 본토를 공격할 능력이 있음을 입증한 장거리로켓이었다.

소련의 거사(巨事)에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미 대통령은 충격과 당혹감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스푸트니크 쇼크’가 따로 없었다. 20세기 중반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이념 체제 간 대립구도였던 냉전시대에 자본주의 맹주로 자처해온 미국이 사회주의 소련의 우주항공 기술에 뒤통수를 맞은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미국이 첨단기술 경쟁에서 소련을 능가한다는 그릇된 자신감은 처절한 자기반성으로 이어졌다. 미국은 1958년 대통령 직속기구 항공우주국(NASA)을 만들고 과학기술 분야에 막대한 예산을 쏟았다. 또한 교육정책도 수술대에 올랐다. 경쟁을 지양하고 흥미를 중시하는 진보주의에서 탈피해 기초학문을 중시하는 쪽으로 대폭 개편했다.

미국은 1969년 7월 21일 아폴로 11호 선장 닐 암스트롱이 인류 최초로 달 표면을 밟으면서 소련과의 우주개발 경쟁에서 역전승을 거뒀다. 스푸트니크 쇼크는 미국이 위기를 기회로 만든 중대 분수령이 아닐 수 없다.

역사는 되풀이된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은 우리의 모습을 보면 ‘한국판 스푸트니크 쇼크’가 스멀스멀 떠오른다. 한국경제는 지난 산업화시대에 불굴의 정신으로 국가경제를 이끌어 오늘날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으로 우뚝 섰다. 산업화 시대의 우등생인 한국으로서는 당연한 결과다.

‘한강의 기적’을 일궈내며 경제 우등생 반열에 오른 우리는 어느 순간 무기력과 무사안일에 빠진 초라한 자화상을 마주하고 있다. 역경에 굴하지 않은 우리 민족 특유의 정신도 실종된 지 오래다. 세계 경제 판도를 바꿀 4차 산업혁명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지만 우리의 현주소는 초라하기 이를 데 없다.

정보통신기술진흥센터·한국특허전략개발원 등이 지난 17일 한국과 미국, 중국, 유럽연합(EU), 일본 등을 대상으로 4차 산업혁명 기술 역량을 평가한 결과 한국이 최하위권에 머물러 충격을 줬다.

총 136종의 하위 기술을 아우르는 인공지능(AI)과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 지능형 로봇, 3D 프린팅 등 5대 핵심 상위 기술 분야에서 우리나라는 평균 80.6점을 받았다. 이는 미국(100점)과 EU(94.9점)는 물론이고 일본(87점), 중국(81.2점) 등보다 낮은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한국경제연구원이 바이오와 드론·블록체인·AI 등 12개 기술 경쟁력을 조사한 결과 한국 기술경쟁력(평가 점수 100)은 중국(108)에 뒤처진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이 미국(130)과 일본(117)은 물론 중국 기술까지 쫓아가야 하는 서글픈 신세로 전락한 것이다.

특히 3차 정보기술(IT)혁명을 주도해온 IT 강국 한국이 4차 산업혁명에서 그동안 후발국이었던 중국에 뒤지고 있다는 점은 참담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누구를 탓하랴. 대다수 국가들이 전기자동차와 드론의 유망성과 상품화에 회의적 시각을 거두지 못할 때 중국은 기업가 정신을 발휘해 도전에 나섰다. 첨단기술에 머뭇거리는 국가들의 ‘엄숙주의’는 중국의 승리로 막을 내린 것이다. 사회주의 간판을 내건 중국의 ‘야심찬 자본주의 실험’이 성공을 거둔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의 발전을 가로막는 정부의 '규제 그물'은 더 말할 필요조차 없다. 박근혜 정부는 2016년 이른바 '알파고 쇼크'를 이겨내기 위해 ‘한국형 AI사업’을 마련해 국내 주요 정보기술(IT)기업들이 참여한 '지능정보기술연구원(AIRI·현(現)인공지능연구원)'을 출범시켰다. 당시 정부는 연간 150 억 원 씩 5년간 총 750 억 원에 달하는 연구예산을 투입한다는 계획을 내세웠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면서 이 프로젝트는 '적폐' 논란의 중심에 서면서 예산이 모두 삭감됐다. 향후 한국을 이끌 첨단기술 프로젝트가 정권 교체로 휘청거리고 있다.

우리나라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첨단 기술 연구현장이 마녀사냥 당하는 표적으로 전락해왔다. 지식경제(김대중 정부), 혁신주도경제(노무현 정부), 녹색경제(이명박 정부), 창조경제(박근혜 정부) 등 거창한 구호를 내세운 과학기술계획이 등장하지만 정권교체와 함께 슬그머니 자취를 감춘다. 이것이 우리의 슬픈 자화상이다.

그러나 패배의식에 사로잡힐 필요는 없다. 우리가 4차 산업혁명에서 패자로 전락했다고 단언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스푸트니크 쇼크로 심기일전한 미국이 달 착륙 이라는 성과를 일궈냈듯이 지금은 중국에 뒤처져 있는 우리가 4차 산업혁명 중심국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계기가 절실하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정부의 규제를 혁파하고 기술혁신을 일궈내지 못하면 우리는 4차 산업혁명의 쓰나미에 휩싸여 표류하는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다.

gentlemink@tf.co.kr

Copyright@더팩트(tf.co.kr)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