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지시해도 보험사도, 은행도 거부하면 ‘그만’
[더팩트 | 조연행 칼럼니스트] 은행이 대출금리를 조작해 이자를 더 받아 챙겼다가 금융감독원(금감원)에 발각됐다. 이에 금감원이 소비자에게 돌려주라고 지시했는데 은행이 이를 거부했다. 설상가상으로 금감원이 행정제재를 내리면 은행은 소송으로 맞대응하겠다고 으름장까지 놓고 있다.
삼성생명이 즉시연금 약관을 잘 못 만들어 놓고 소비자들이 매달 받는 연금에서 사업비와 위험보험료를 차감한 것이 드러나 금감원이 지급 지시를 내렸다. 삼성생명은 금감원 지시를 따르는 척하다가 국회에서 한 의원이 두둔하는 발언을 하자 이때다 싶어 지시를 거부하고 소비자를 상대로 소송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렇듯 요즘 금융감독당국이 ‘종이호랑이’로 전락해 피감기관에 영이 서지 않고 있다. 감독기관으로서 ‘체면’을 완전히 구기고 있다는 말이 정확할지 모른다.
은행들은 대출 소비자 소득을 누락시키거나 담보를 제공했어도 일부러 빠트리거나 가산금리를 중복 계산해 금리를 ‘고의적’으로 높여 이자를 받았다. 은행들은 대출금리를 조작해 더 받은 이자가 수천억 원으로 추정되지만 명백한 실수라고 인정한 27억 원 외에 한 푼도 돌려주지 않기로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원은 고객에게 사과하고 이자도 돌려주라고 권고했다. 하지만 은행들은 금리 산정은 은행 고유권한으로 자율적으로 결정한 이자를 돌려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또한 행정 제재가 내려지면 소송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자체적으로 진행하라고 했던 조사도 거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금감원이 피감기관으로부터 완전히 무시당한 것이다.
이같은 어처구니없는 상황에도 금감원은 침묵하고 있다. 현행법상 불공정 행위에 '금리 조작'이 빠져있기 때문에 제재할 방법이 없다는 ‘어처구니’ 없는 핑계를 대고 두 손을 놓고 있다. 은행의 금리조작은 단순 실수나 불공정행위가 아닌, 전산조작으로 소비자의 호주머니를 털어가는 사기행위다. 형사 처벌해야 할 만한 사안이다. 그런데도 금감원은 두 손을 놓고 있다.
이 사건이 발생했을 때 금융당국에 철저한 조사를 요구하는 소비자 비난 넘쳐났으나, 금감원은 이를 외면한 채 은행들에 자체조사를 맡겼다. 범죄자에게 범죄사실을 알아서 셀프 조사 후 보고하라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그런데 은행은 이 셀프조사마저도 거부했다. 당시 윤석헌 금감원장은 "금감원 차원에서 은행권 대출금리 전수조사는 안 하고 자체 점검하도록 하겠다"고 했고 최종구 금융위원장도 "은행들을 기관이 징계할 사안이 아니다"라며 은행을 두둔하고 감쌌다.
금감원은 금융위, 금융연구원, 은행연합회 등과 억지로 태스크포스(TF)팀을 꾸렸지만 아무런 대책이 없었다. 더구나 은행연합회를 포함해 자신들이 만든 문제의 규정에 대해 셀프 개선안을 만든다는 것 자체가 애시당초 ‘어불성설’이었다. 그런 결과가 오늘날 피감기관인 은행들이 금융감독기관을 ‘종이호랑이’로 보도록 만든 단초가 됐다.
삼성생명의 즉시연금 ‘환급거부’ ,‘소송제기’ 사건에 대해 금감원이 취하는 조치는 거의 없다. 소비자에게 분쟁으로 접수해 ‘시효’를 연장시키라는 주문과 소송 때 소송비를 지원해주겠다는 것이 전부다. 금감원은 또 삼성생명을 제재하지 못하고 완전 소극적인 태도나 조치를 취할 뿐이다. 즉시연금과 직접 상관이 없는 ‘종합검사’ 카드도 있다는 엉뚱한 엄포만 쏘고 있다.
삼성생명의 즉시연금 가입자는 5만5000명이다. 이들에 대해 약관을 잘못 적용하는 것은 ‘소비자권익 침해’의 명백한 ‘기초서류’ 위반 행위다. 금감원이 삼성생명의 즉시연금 약관해석에 대해 분쟁조정위원회(분조위)에서 내린 결정이 확실하게 자신이 있다면 ‘기초서류 위반 행위’로 보아 보험업법에 따라 최고 ‘영업정지’ 등 강력한 처벌이 가능하다. 그럼에도 삼성생명이 금감원의 지급지시를 전면 거부해도 아무런 손을 쓸 수 없이 당하고 있는 것이 ‘튼튼한 금융과 행복한 소비자’를 외치는 금감원의 현실이다.
생명보험사들의 재해사망특약 자살보험금 부지급 사태 때 금감원이 생보사에 제대로만 ‘제재’를 가했어도 보험사들이 이렇게까지 감독당국을 우습게 알지는 않았을 것이다. 겨우 임직원이나 제재하고 해당상품 영업정지 몇 개월 내려 제재 흉내만을 내니 보험사들이 금감원을 무서워할 이유가 없다. 금감원이 아무리 엄포를 놔도 ‘종이호랑이’ 정도로밖에 인식하지 않는다. 삼성생명이 계약자를 상대로 소송을 건다니까 한화생명, 교보생명도 따라서 소송을 제기하겠다는 입장이다. 명백히 약관을 위배하고도 감독당국 지시를 무시하고 당당히 사안을 법원으로 끌고 들어가겠다는 것이다.
그동안 금융소비자권익보호는 말로만 하고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산업보호차원에서 공급자인 금융회사들을 감싼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이제야 감독당국이 금융소비자 중심으로 감독정책을 펼치고자 하나 버릇이 잘 못 든 금융회사들이 따라주지 않는 형국이다. 자업자득이 따로 없다.
답은 이제라도 감독당국이 법과 원칙에 따라 ‘일벌백계’ 처리하는 것이다. 소비자권익을 침해한 금융회사는 수십 배 손해배상을 하고 영업정지를 당하고 망하기도 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감독당국 지시를 따르지 말라 해도 잘 따를 것이다. 어느 은행이 ‘이자환급’을 거부할 것이며 어느 보험사가 ‘지급지시’를 거부하고 소송으로 가겠다고 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