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뫼의 눈물' 이어 '울산의 눈물'...고(高)비용 저(低)생산성 조선산업 해법 시급
[더팩트ㅣ김민구 기자] 북유럽 복지국가 스웨덴은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세계 조선업계의 선두주자였다. 남쪽 항구도시 말뫼(Malmö)는 특히 스웨덴의 자랑거리였다. 말뫼는 스웨덴 3대 도시 중 하나 일뿐만 아니라 세계적 조선소 코쿰스(Kockums)가 둥지를 튼 곳이다. 코쿰스는 세계 조선시장을 쥐락펴락했다. 스웨덴을 '조선 강국'의 반열에 올려놓은 100년 기업 코쿰스 앞길은 순풍에 돛을 단 것처럼 거칠 것이 없었다.
그러나 '권불십년(權不十年)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 했던가. 글로벌 조선 산업의 대명사였던 스웨덴은 급격한 내리막길로 치달았다. 스웨덴 조선산업 쇠락을 초래한 국가는 한국과 일본이었다. 스웨덴 조선 산업은 1980~90년대 한국·일본과의 선박 수주 경쟁에서 밀리면서 경제가 수렁에 빠졌다. 스웨덴은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스웨덴 조선 산업은 글로벌 무대에서 쓸쓸하게 퇴장했다. 조선 산업이 침체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자 스웨덴 정부는 2002년 여름 깜짝 놀랄 만한 결단력을 내렸다. 높이 128m, 폭 164m, 인양능력 1500t급, 자체중량 7560t으로 세계 최대 규모인 ‘코쿰스 골리앗 크레인’을 현대중공업에 매각했다. 매각 금액은 단돈 1달러, 1100원이었다. 골리앗 크레인은 선박을 만들기 위해 조선 블록을 들어 올리는 기구로 조선 산업의 핵심 설비다. 골리앗 크레인을 매각한다는 것은 사업을 접겠다는 것과 진배없다.
‘스웨덴 조선업의 자존심’ 코쿰스 크레인을 현대중공업에 넘긴 말뫼 주민 수 천명은 2002년 9월 25일 크레인 마지막 부분이 해체돼 울산행 운송선에 실려 바다 멀리 사라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오열했다. 이를 중계하던 현지 방송에선 장송곡이 흘러나와 '말뫼의 눈물'이라는 별명이 생겼다. 만시지탄(晩時之歎)이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 ‘말뫼의 눈물’은 지금으로부터 16년 전 스웨덴을 눈물바다로 만든 흑역사였다.
역사는 되풀이한다고 하지 않았나. 세계 1위로 전 세계를 호령해온 국내 조선업도 시나브로 ‘말뫼의 저주’에 빠진 모습이다.
스웨덴 말뫼 조선소에서 2002년 1달러에 팔려와 현대중공업 식구가 된 골리앗 크레인이 이달 25일 가동을 멈춘다. 남은 일감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현대중공업이 공장을 가동 중단하는 것은 35년 만에 처음이다. 말뫼의 눈물에 이은 ‘울산의 눈물’인 셈이다.
현대중공업으로서는 치욕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1972년 울산에 조선소를 착공하며 조선 산업에 진출한 현대중공업은 반세기도 안 돼 2003년 이후 일본을 제치고 선박 주문량, 선박건조량에서 모두 세계 1위를 차지했다. 2009년에는 세계 시장에서 33.1%에 이르는 점유율을 기록하는 등 세계 조선시장을 호령했다. 그러나 지금은 세계 최고라는 영예도 과거의 빛바랜 영광으로 남았다.
세계적인 불황으로 국내 조선업이 침체 태풍의 눈에 빨려 들어갈 것이라는 점은 이미 오래전부터 예견됐다. 문제는 조선업체들이 이에 따른 구조조정과 산업 경쟁력 강화를 도외시 했다는 점이다. 설상가상으로 한국 조선업은 ‘조선 산업 세계 1위’를 되찾겠다며 절치부심한 일본과 값싼 가격 경쟁력을 무기로 세계 조선시장에 뛰어든 중국 사이에 끼인 ‘넛 크래커’(nut-cracker) 신세로 전락했다.
이런 가운데 현대중공업이 파업에 나설 것이라는 소식이 들려온다. 일감이 없어 수 백명이 휴업 중이고 해양플랜트를 43개월간 단 1건도 수주하지 못한 회사에서 파업을 한다는 얘기다.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다.
현대중공업은 수조원에 달하는 적자를 기록했지만 조선업의 미래 생존방안과 고부가선박 등 제품 첨단화, 원가 절감 등을 통한 경쟁력 회복에는 등을 돌렸다. 이런 상황에서 노조는 한가롭게 월급 인상 목소리만 높이고 있다. 회사가 기울어 가는데 노조는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독일 심리학자 헤르만 에빙하우스(Hermann Ebbinghaus) 가 떠오른다. 에빙하우스는 이른바 ‘망각곡선(忘却曲線·Forgetting Curve) 이론’으로 유명하다. 망각곡선은 ‘사람의 기억은 시간에 반비례한다’는 얘기다. 쉽게 얘기하면 기억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는 적절한 시점에 적절한 반복을 하는 것이 중요하며 사고(事故)에서 얻은 교훈도 되뇌지 않으면 결국 잊게 된다는 이론이다. 노력하지 않으면 집단망각증에 빠질 수 있다는 교훈인 셈이다.
국내 조선산업이 그렇다. 회사 위기 앞에서 노조 이익만 먼저 챙긴다면 망각곡선에 제대로 올라탄 것이다. 망각곡선의 교훈을 제대로 배우지 않으면 암울한 미래만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노조의 모럴해저드는 대우조선해양도 오십보백보다. 대우조선해양은 2015년부터 무려 13조원이 넘는 국민 혈세(공적자금)를 쏟아 부어 겨우 살린 회사다. 그런데 지난해 6년 만에 겨우 흑자 전환에 성공하자 파업한다는 소리부터 한다.
그러나 그 흑자는 대우조선해양이 사업을 잘 해 일궈낸 것은 아니다. 정부와 채권단이 지난해 신규 자금 2조9000억원을 더 투입해 나온 결과물이다. 혈세로 겨우 살아났는데 노조는 기본급 인상, 노동 강도에 따른 보상, 복지기금 확충 등 6가지 요구 조건을 내걸었다. 살려놓으니 보따리 내놓으라는 격이다. 현실을 무시하고 밥그릇만 챙기는 후안무치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대우조선노조는 채권단인 산업은행으로부터 지원을 받으면서 "파업하지 않겠다"는 확약서까지 제출했지만 얼마전 '최 강성 노조'라는 민주노총 산별(産別) 조직인 금속노조에 가입했다. 어려우면 세금으로 도와달라고 손을 벌리고 형편이 조금 나아지면 파업하는 모양새다. 대우조선처럼 ‘세금 먹는 하마’에는 국가가 지원을 중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을 이들은 모른다는 말인가.
생산성은 낮으면서 임금은 턱없이 높은 고(高)비용, 저(低)생산성 구조로는 갈수록 치열해져가는 세계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월급 인상 타령에만 매몰되지 않고 국내 조선 산업의 향후 생존해법을 놓고 노사가 머리를 맞대고 끝장토론을 하는 게 먼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