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구의 상암토크] ‘샤워실의 바보’, 언제까지 되풀이할 건가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14일 오후 정부세종청사에서 국민연금 관련 간담회를 열어 정부는 국민연금 지급연령을 68세로 연장하는 방안을 고려한 적이 없다고 밝히고 있다. /더팩트 DB

국민연금 개편안 국민 공감대 형성하는 현실적 대안 내놔야

[더팩트ㅣ김민구 기자] 아침부터 푹푹 찌는 무더위를 참지 못해 샤워실로 뛰어갔다. 샤워실에서 물을 트니 너무 뜨거운 물이 콸콸 쏟아져 나왔다. “폭염에 웬 뜨거운 물”이라고 중얼거리며 수온 조절 밸브를 찬 물 쪽으로 돌렸다. 그러나 갑자기 쏟아지는 차가운 물에 놀라 밸브를 다시 미세조정(Fine tuning) 한다. 그러나 미세조정이 한 번에 될 수는 없다. 시행착오 끝에 결국 원하는 온도의 물이 나왔다. 필자는 졸지에 바보가 됐다. ‘샤워실의 바보(Fool in the shower)'가 따로 없다.

샤워실의 바보는 필자가 만든 용어는 물론 아니다. 미국 시카고대 교수이자 1976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밀튼 프리드먼(Milton Friedman)이 소개한 경제학 이론이다. ‘샤워실의 바보’는 섣부르게 개입하는 정부를, ‘밸브’는 경제정책을, ‘물의 온도’는 경기의 등락을 뜻한다.

자유방임주의와 시장제도를 통한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주장한 프리드먼은 정부의 시장경제개입에 반대해온 학자다. 그는 정부가 샤워실의 바보처럼 경제정책을 섣부르게 하면 경제를 그릇된 방향으로 이끌고 갈 수 있다고 설파했다.

폭염 못지않게 뜨거운 논란이 되고 있는 국민연금 개혁안도 샤워실의 바보가 아닐 수 없다. 제4차 국민연금 재정추계 발표와 함께 17일 공개하기로 돼있던 국민연금 재정계산·제도발전위원회의 제안 일부가 최근 흘러나오면서 국민적 분노가 표출됐다. 국민연금 개편안은 한 마디로 정리하면 연금 보험료를 더 내고 덜 받는 구조로 바꾸겠다는 얘기다. 국민연금재정계산·제도발전위원회는 연금 보험료를 현재 9%에서 앞으로 1.8%~4% 포인트 올리는 방안을 비롯해 연금을 내는 나이를 현재 60세에서 65세로 늘리고 연급을 받는 나이를 현재 65세에서 68세로 상향 조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국민연금측은 국민연금 보험료율이 1988년 3%로 시작했고 1998년 9%로 인상한 후 20년 넘게 제자리걸음이라고 강조한다. 이는 주요 선진국 보험료인 15~18%의 절반 수준이라는 게 국민연금 설명이다. 일견 이해하기 힘든 대목은 아니다.

그런데 연금을 내고 받는 나이를 상향 조정하는 것은 조금 다른 얘기다. 쉽게 말하면 연금 보험료를 더 내고 늦게 받으라는 것 아닌가. 60세 정년까지 일하기도 쉽지 않은데 65세까지 일자리를 지키며 보험료를 낼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황당하기 짝이 없다.

민심은 크게 요동쳤다. 청와대 홈페이지 내 국민청원 게시판에 국민연금 관련 청원이 벌써 6000건을 향해 가고 있다. 게시물에 ‘국민연금 폐지’, ‘국민연금 선택 수정’ 등 눈에 띄는 용어가 등장한 것도 국민의 들끓는 분노를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국민연금의 투자 실패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대목이다. 최근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지난 5월 말 기준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투자 수익률이 마이너스 1.18%다. 국민의 피같은 노후자금을 지난 5개월간 1조 5570억 원 까먹은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국민의 노후자금 635조원을 관리하고 책임지는 사령탑인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이 1년 넘게 공석이다. 드넓은 바다에서 선장 없이 표류하고 있는 모습이다.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다.

오락가락하는 '샤워실의 바보'처럼 결정 장애와 포퓰리즘 정치가 어디 이뿐이겠는가. 폭염에 따른 전기요금 부담을 줄이기 위해 전기료를 깎아주면서 ‘원전 홀대’는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다.

비용이 가장 적게 들면서 효율은 높은 에너지가 바로 원자력이다. 이번 폭염 속에서도 원전은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다. 원전을 추가 가동하지 않았더라면 폭증한 전력 수요에 맞추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전기요금을 깎아주는 땜질처방만 내밀면서 탈(脫)원전 정책을 고집한다. 나라의 먼 미래를 내다보는 에너지 대계는 실종된 지 오래다.

정권만 바뀌면 전리품처럼 손을 대는 교육정책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대학입시제도가 1945년 광복 이후 지난 73년간 무려 24번이나 바뀐 역사가 이를 증명하고 있지 않는가. 입시제도가 평균 3년에 한 번꼴로 수술대 위에 올라갔다. 교육에 대한 장기 비전 부재와 주먹구구식 정책에 학생과 학부모들은 ‘샤워실의 바보’의 포로가 된 셈이다.

경제정책은 샤워 밸브처럼 왼쪽으로도, 오른쪽으로도 갈 수 있다. 문제는 오락가락하는 '샤워실의 바보'처럼 정책이 ‘반(反)시장주의' 정책과 '퍼주기식 복지'의 포퓰리즘에 매몰되면 성장 잠재력은 매몰되기 마련이다.

국민연금에 대한 국민적 공분이 커지자 정부가 최근 진화에 나선 모습이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국민연금 수령 나이를 상향 조정하는 것은 고려하고 있지 않다며 손사래를 치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국민은 박 장관의 말이 사실인지 두 눈을 부릅뜨며 지켜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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