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초점] '발사르탄 포비아'에…의약품 관리 체계·제네릭 과잉 '도마 위'

대봉엘에스가 가공한 발사르탄 원료에서 발암가능물질이 검출되면서 지난 7월에 이어 고혈압약 발사르탄 사태가 또다시 불거졌다. 의약계에서는 허술한 관리 체계 및 복제약이 난립하는 현실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픽사베이

의약품 관리 체계·복제약 심사·허가제도 개선 촉구 목소리 커져

[더팩트|고은결 기자] 중국산 발사르탄 원료에서 발암가능물질이 검출돼 논란이 생긴 지 한 달 만에 국내사가 가공한 발사르탄 원료에서도 발암가능물질이 함유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발사르탄 포비아'가 확산되며 비슷한 사태의 재발을 막으려면 의약품 관리 체계와 제네릭 의약품(복제약)의 심사·허가 제도 개편이 수반돼야 한다는 진단이 나온다.

8일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대봉엘에스가 제조한 일부 발사르탄 제품에서 발암가능물질인 'N-니트로소디메틸아민(NDMA)'가 초과 검출된 59개 품목이 추가 잠정 판매중지 및 처방 제한 조치됐다. 대봉엘에스는 중국의 원료 제조사 주하이 룬두에서 원료를 수입해 발사르탄을 제조해왔다. 문제가 된 의약품을 처방받은 환자는 병원을 방문해 다른 의약품으로 재처방 및 재조제 받을 수 있다.

고혈압약 발암물질의 상세한 리스트는 식약처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현재까지 판매가 중단된 발사르탄 의약품은 총 174개다. 식약처는 현재 31개사의 고혈압약 46개 품목에 대한 성분 검사도 진행 중이므로 발암가능물질이 들어간 제품이 추가 확인될 가능성도 있다.

발암가능물질이 검출된 고혈압약을 복용하던 환자는 18만 명이 넘는데, 중국 화하이사의 약을 교환한 환자는 이 중 1만 5000여 명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은 또 다시 고혈압약을 재처방 및 재조제 받아야 한다.

◆한 달 만에 발사르탄 사태 또…허술한 의약품 관리·복제약 난립 지적 받아

이번 사태는 의약품 관리 체계의 문제를 총체적으로 드러낸다는 지적이 많다. 앞서 식약처는 지난 7월 초 발암 가능성이 있는 성분이 들어간 고혈압약 115개 품목을 판매중지 및 제조중지 조치를 했다. 또한 각 제약사들에 해당 의약품의 자진 회수를 요청했다. 그러나 회수 과정에서 일부 의약품은 유통 정보와 의약품 소재가 일치하지 않아 혼선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내년부터 의무화되는 '의약품 일련번호 제도'의 이른 정착에 대한 필요성을 말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의약품 일련번호 제도는 의약품의 최소 유통 단위에 고유번호인 일련번호를 붙여 제조·수입에서 소비자에게 복용될 때까지 유통 과정을 실시간으로 이력 추적 관리가 가능하게 하는 제도다. 이로 인해 의약품의 불법 유통을 방지하고 의약품의 신속하게 회수할 수 있다. 그러나 의약품 도매업체들이 비용 부담 등을 이유로 준비 기간을 요구하며 전면적인 시행은 미뤄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6일 이원식 식품의약품안전처 의약품안전국장이 충북 청주 식약처에서 발암 물질 논란 고혈압약 관련 중간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문제의 원료에 대한 불안이 확산되면서 값싼 수입산 원료를 쓰는 복제약이 난립할 수 있는 구조적 문제에 대한 지적도 거세다. 대한의사협회는 지난달 9일 "제약사는 값싼 중국산 원료를 사용해 이익을 최대화하려 하고, 복제약에 터무니 없이 높은 약가를 책정해 제약사들이 연구개발 노력을 하지 않아도 존립할 수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복제약에 대한 약가 우대정책을 개선하고 품질 보증을 위협할 수 있는 공동·위탁 생동성 시험을 중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낮은 진입장벽으로 복제약이 쏟아지면서 '발사르탄 고혈압약' 논란이 불거졌을 때 해당 원료를 쓴 복제약에 신속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어려웠다는 설명이다.

서울시약사회는 입장문을 통해 "연이은 발사르탄 고혈압치료제 사태는 의약품의 안전성을 무시한 무분별한 규제 완화정책이 불러온 제네릭 의약품 정책과 시장의 민낯을 여실히 보여줬다"면서 "보건당국은 복제약의 심사·허가제도 및 약가정책을 개선하고, 원료의약품 안전성을 확보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약사회는 복제약의 제품명만 봐도 성분을 확인할 수 있도록 상품명 표기방법을 개선할 것도 당부했다.

아울러 의약품의 재처방·재조제는 '발암물질 고혈압약 파동'의 후속 대응일 뿐이며 원료의약품 안전관리 강화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는 의견이 이어진다. 같은 선상에서 식약처는 지난달 국회 업무보고에서 수입의약품에 대한 '해외 제조소 등록제'를 도입하고 현지실사 등을 통해 유해물질 기준 준수 여부를 확인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발사르탄 사태가 재발하며 중국산 발사르탄을 쓰지 않은 오리지널 의약품이 반사이익을 얻고 있다. 다국적 제약사 노바티스의 '디오반'은 특허가 만료돼 많은 복제약이 쏟아졌지만 '복제약 불신'이 깊어지며 품귀를 빚기도 했다. 업계에서는 발암 물질 논란이 일며 복제약을 기피하는 환자들이 늘까 우려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제네릭은 생동성 시험을 실시하고 허가를 받으며 오리지널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비슷한 약효를 낸다"면서 "발사르탄 고혈압약 사태가 재발하며 제네릭을 무조건적으로 기피하는 현상이 심화할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keg@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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