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질이 높아지면서 기업들의 최우선 가치도 '돈을 버는 것'을 넘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경영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이에 따라 주요 그룹은 경제적 가치를 사회적 가치로 바꾸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인다. 그러나 주요 그룹의 이런 노력은 아직 일반인에게 생소한 편이다. '반도체' 세계 1위 기업 삼성이 다문화 여성을 대상으로 커피 제조 전문가인 바리스타 육성 교육을, 글로벌 자동차 메이커로 나선 현대자동차가 지역 특산물 판매와 유통을, 통신업계의 '맏형' SK가 산림을 가꾸고 나무를 심는 조림사업을 하는 것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지금부터 <더팩트>는 국내 주요 그룹의 '이색 계열사'를 살펴보고, 왜 이런 기업을 운영하는지에 대한 역사와 배경을 시리즈로 조명한다. <편집자 주>
선대회장이 심은 나무 최태원 '사회적 가치'로 울창한 숲 이뤄
[더팩트 | 천안=서재근 기자] 서울에서 차를 타고 1시간이 조금 넘게 경부고속도로를 탔다. 충남 천안에 있는 광덕산에 다다르자 'SK임업'이라는 글귀가 적힌 안내판이 눈에 들어온다. SK하이닉스와 SK텔레콤, SK에너지 등 반도체, 통신, 에너지 대표 기업으로 잘 알려진 SK그룹의 99개 계열사 가운데 'SK임업'이라는 기업은 그 존재만으로도 다소 생소하면서도 신기하게 느껴졌다.
흔하게 볼 수 있는 슈퍼마켓 하나 보이지 않는 산길 초입. 'SK'라는 대기업 계열사 입간판이 어색하게 느껴질 때 즈음 회색빛 사무실 건물이 방문객을 맞이했다. 지난 1974년 세워진 이곳은 SK임업 천안사무소다. 광덕산 중턱으로 산을 타고 5분여를 올라가자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광활하게 심어진 호두나무들이 아직은 덜 여문 녹색빛 호두 열매를 품은 채 수확을 기다리고 있다.
◆ "사람을 키우듯 나무를 키우고, 나무를 키우듯 사람을 키운다"
SK임업(대표이사 심우용)은 고(故) 최종현 SK그룹 선대회장이 지난 1972년 "사람을 키우듯 나무를 키우고, 나무를 키우듯 사람을 키운다"는 경영철학을 실현하기 위해 설립했다. 현재는 SK그룹의 지주회사인 SK㈜에서 SK임업 지분 전량을 보유하고 있다. SK임업의 지난해 기준 매출 규모는 405억 원, 전체 임직원 수는 60여 명으로 그룹 내 주요 계열사에 비해 적지만, 국내 유일의 복합 임업기업으로 지난 2013년 국내 최초로 탄소배출권 조림 사업을 승인받은 친환경 기업으로 거듭났다.
SK임업의 설립 당시 이름은 '서해개발주식회사'였다. 당시 선대회장이 그린 '큰 그림'은 3만ha의 임야에 수익성 좋은 나무를 심어 1년에 1000ha씩 벌목과 식목을 반복해 한국고등교육재단 재원 조달자금으로 활용하겠다는 것이었다.
선대회장이 1974년 사재를 털어 설립한 한국고등교육재단은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이 500달러도 안 되던 시절 "세계 1등 국가가 되기 위해 세계 수준의 학자를 많이 배출해야 한다"는 그의 의지를 반영해 세운 교육·연구지원 목적의 비영리 공익재단이다. 오늘날까지 SK그룹이 강조하는 최우선 실천 과제 가운데 하나인 '인재 육성'이 30년을 내다 본 선대회장의 선순환식 '수목경영'의 시발점이 된 셈이다.
◆최종현 선대회장의 선순환식 '수목경영'의 시발점
SK임업이 탄생하게 된 과정은 4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0년대 석유사업 진출을 공언한 선대회장이 조림사업에 관심을 보이자 주변에서는 "돈이 되지 않는다"며 손사래를 쳤다. 그러나 그는 "사람도 30년은 키워야 인재가 되듯이 나무도 30년은 키워야 하지 않겠느냐"며 "산에 나무를 심어 지역주민을 살리고 인재를 키우는 것이 나라를 살리는 길"이라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
이러한 선대회장의 기업가 정신은 SK임업의 '녹색공헌' 활동으로 지금까지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다. SK임업이 보유하고 있는 조림지는 충주 인등산, 천안 광덕산, 영동 시항산, 횡성 사업소 등으로 전체 면적이 4100ha(약 1240만평), 여의도 면적(약 100만평)의 13배에 달한다.
◆여의도 면적 13배 조림지, 지역 주민과 상생하는 '사회적 가치 창출'
천안사업소는 480ha(약 145만평)의 산림 가운데 약 100ha(약 30만평) 규모의 국내 최대 '호두나무 숲(호두원)'을 조성해 1만 여본의 호두나무에서 평균 15~20t의 호두를 생산한다. 특히 SK임업은 단순히 작물을 수확하고 판매하는 차원을 넘어 지역주민과 상생하는 사회적가치 창출 활동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실제로 SK임업은 지난 6월 한국임업진흥원과 손잡고 사회공헌의 하나로 '귀산촌 호두재배 특화과정 프로그램'을 운영해 전국 귀산촌인과 호두 재배 희망자들에게 회사의 호두재배 노하우를 전달했다. SK임업은 올해 첫발을 내디딘 해당 프로그램을 오는 10월에도 시행해 해마다 상하반기에 각각 한 차례씩 지속해 운영한다는 계획이다.
지역 사회공헌 활동은 이뿐만이 아니다. SK임업은 천안 광덕초등학교를 비롯해 인근 지역 3곳의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매월 수확한 호두를 제공하고 산림 가꾸기 교육을 시행한다. 이 외에도 SK임업은 지난 1997년부터 2006년까지 무려 10년에 걸쳐 그룹 핵심 계열사 SK에너지의 모태인 울산에 365만3285㎡ (약 111만평)규모의 '울산대공원'을 조성했다. 기업이익의 사회환원과 도시환경 및 울산시민 삶의 질 제고를 위해 조성된 울산대공원은 지금까지 매년 수만 명의 방문객이 찾는 대표 관광명소로 자리매김했다.
SK임업은 지난 2012년에는 서울시 환경상 시상식에서 서울대병원 암병동에 지은 '행복정원'이 서울시의 쾌적한 환경 조성에 이바지했다는 평가와 함께 조경생태분야에서 우수상을 받는 영예를 얻었다. 이 외에도 SK임업은 서울 여의도 전국경제인연합회 사옥, 덕평 휴게소, SRT 수서역, 아라뱃길, 서울역 광장 등 서울 및 수도권 일대에 있는 주요 건물 및 시설의 조경설계 및 시공사업에도 적극 나서며 도시 녹화에 앞장서고 있다. SK임업은 사업 영역을 단순히 나무를 심어 목재와 작물을 판매하는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탄소배출권 조림(A/R CDM), 신재생에너지 개발 등 고부가가치 분야로 확대해나갈 계획이다.
◆선대회장이 심은 나무, 최태원 회장의 '사회적 가치'로 숲을 이루다
SK임업이 추진하는 사업은 SK그룹 수장 최태원 회장이 강조하는 '사회적 가치' 창출과도 맥을 같이 한다. 최태원 회장은 지난 2월 연세대학교 백주년기념관에서 열린 '2018 글로벌 지속가능포럼(GEEF)'은 물론 중국 보아오 포럼(3월)과 '사회성과인센티브 어워드'(4월), 베이징 포럼(5월), '2018 SK 글로벌 포럼'(6월), '2018 확대경영회의'(6월) 등 올해 국내외 주요 행사에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최 회장은 "영리를 추구하는 기존 경제적 가치에서 벗어나 경제적 가치 위에 새로운 사회적 가치 창출로 환원해야 한다"며 새로운 형태의 비즈니스 모델 구축을 강조해오고 있다.
유희석 SK임업 산림팀 팀장은 "SK임업이 다른 핵심 계열사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것이 분명한 사실"이라며 "그러나 40여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인재보국'과 '산림보국'으로 대표되는 선대회장의 경영 철학과 신념을 계승해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조림사업은 많은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사업이 아니지만 환경을 보전하면서 신재생에너지를 개발하는 특화된 사업을 영위한다는 것만으로도 자부심을 느낀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최 회장이 최우선 실천 과제로 '사회적 가치 창출'을 강조한 것에 발맞춰 SK임업은 기존 사업 영역 틀을 확대해 산림자원을 토대로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방안을 끊임없이 연구하고 개발해 나갈 것이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