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적 요금제 개편 마무리 단계
[더팩트ㅣ이성락 기자] 국내 이동통신 3사가 바쁘다. 정부의 통신비 인하 기조에 발을 맞추려 '자발적 요금제 개편'에 속속 뛰어들고 있다.
최근 '자발적 요금 할인'의 결과물이 나타나고 있다. KT와 LG유플러스에 이어 SK텔레콤도 고심 끝에 새 요금제를 내놨다. 현재 통신 시장은 요금제를 중심으로 변화의 갈림길에 있다.
◆ 데이터 중심으로 간소화된 신규 요금제
SK텔레콤은 18일 신규 요금제 'T플랜'을 출시했다. 기존 밴드데이터 요금제와 비교해 달라진 점은 9종에서 '스몰·미디엄·라지·패밀리·인피니티' 등 5종으로 요금제 명칭과 개수가 간소화됐다.
앞서 KT도 새로운 요금제 '데이터온(ON)'을 출시하며 9종에서 '톡·비디오·프리미엄' 등 3종으로 간소화했다. 기존 요금제의 종류가 너무 많아 소비자 혼란을 일으킨다는 지적을 수용해 이해하기 쉽도록 구성한 것이다.
이동통신사들의 '요금제 간소화' 작업에서 기준점이 된 것은 바로 '데이터'다. 데이터 사용량에 따라 소비자층을 나누고 영역별 소비자에게 맞는 가격대의 요금제를 기획했다.
신규 요금제의 혜택 역시 데이터 중심으로 확대됐다.
SK텔레콤의 신규 요금제 '스몰'(3만3000원)은 1.2GB, '미디엄'(5만 원)은 4GB, '라지'(6만9000원)는 100GB, '패밀리'(7만9000원)는 150GB 등의 데이터를 제공한다. 기존에는 '밴드데이터 세이브'(3만2890원)가 300MB, '밴드데이터 3.5G'(5만1700원)가 3.5GB를 제공했고, 그 외 고가 요금제는 11~35GB 기본에 소진 시 매일 2GB를 추가로 제공하는 방식이었다.
KT의 신규 요금제도 '데이터ON'이라는 명칭에서 알 수 있듯 데이터 제공량을 확대한 것이 핵심이다. 가장 저렴한 '톡' 요금제를 살펴보면 4만9000원에 데이터를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다. 단 누적 사용량이 3GB를 넘어가면 1Mbps의 속도로 줄어든다. 기존 데이터 선택 요금제에서는 똑같이 3GB를 제공했지만, 무제한으로 사용할 순 없었다.
이동통신사가 데이터 중심으로 요금제를 개편한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소비자 데이터 사용량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앞서 KT는 신규 요금제를 출시하면서 "국내 LTE 스마트폰 1인당 트래픽은 2015년 3월 약 3.3GB에서 올해 3월 약 6.9GB로 2배 이상 늘어났다"고 설명했다.
◆ 'SK텔레콤도 합류' 완전 무제한 시대 열렸다
이동통신사들의 '자발적 요금제 개편' 이후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완전 무제한' 시대가 열렸다는 것이다. '완전 무제한' 바람은 LG유플러스가 주도했다.
그동안 '무제한 요금제'는 일정 데이터를 제공하고 이후 속도를 제한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지난 2월 LG유플러스는 월 8만8000원의 '속도·용량 걱정 없는 데이터 요금제'를 출시했다. 이후 KT가 '데이터ON' 3종을 내놓으면서 '완전 무제한'인 '프리미엄'(8만9000원) 요금제를 선보였다.
결국, SK텔레콤도 '인피니티' 요금제를 출시하며 '완전 무제한' 대열에 합류했다. 가격은 경쟁사 대비 다소 비싼 월 10만 원이다. 대신 6개월마다 최신 스마트폰을 공짜로 교체해주는 혜택이 포함됐다.
SK텔레콤 관계자는 "데이터를 완전히 무제한 제공하면서 6개월마다 최신 스마트폰을 교체해주는 것은 파격적인 혜택"이라며 "그래도 더 저렴하길 원하는 고객은 '라지' 또는 '패밀리' 요금제를 사용하면 된다. 각각 100GB와 150GB 제공하기 때문에 사실상 '완전 무제한'이나 다름없다"고 설명했다.
현재 '완전 무제한'을 선택하는 가입자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업계 관계자는 "동영상·게임 등 멀티미디어 콘텐츠 사용이 늘면서 속 편하게 '완전 무제한'을 사용하고자 하는 소비자도 함께 늘어나는 것 같다"고 밝혔다.
◆ 전략 따라 달라지는 통신 3사 주력 상품
이번 요금제 개편의 특징 중 하나는 각사의 대표 상품 변화다. 이전 요금제에서는 통신 3사 모두 수요가 많은 6만 원대에 주력했다. 지금은 6만 원대부터 8만 원대까지 다양하다.
SK텔레콤의 신규 요금제에서 핵심은 '가족 결합'이다. 고가 요금제를 사용하면 가족에게 데이터를 쉽게 공유할 수 있게끔 만든 것이다. 이는 기존 가입자를 묶어두는 효과를 노린 것으로 보인다.
SK텔레콤은 한 번에 선물할 수 있는 데이터 용량과 횟수 제한을 없앴다. 가족관계 증명서 없이 문자로 가족 인증을 가능하도록 하는 등 번거로운 절차도 없앴다.
SK텔레콤 관계자는 "가족 구성원 중 1명이 'T플랜'의 '패밀리' 요금제를 사용하면 다른 가족은 월 3만 원짜리 '스몰' 요금제에 가입해 데이터를 나누어 쓸 수 있다"며 "4인 가족 기준으로 15%의 가계통신비 절감 효과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SK텔레콤이 데이터 공유 기능을 크게 확대하면서 월 7만9000원인 '패밀리'(20GB 공유 가능) 요금제가 주력 상품으로 떠올랐다. 10만 원인 '인피니티'도 40GB 데이터 공유가 가능하지만, 가격 측면에서 '패밀리' 요금제가 덜 부담스럽다.
경쟁사들도 SK텔레콤의 데이터 공유 혜택에 놀라는 눈치다. 업계 관계자는 "SK텔레콤이 요금제를 내놓으면서 마련한 혜택 중 경쟁력이 가장 큰 것이 바로 데이터 공유"라며 "'패밀리' 요금제를 중심으로 가입자 변화가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KT의 주력 상품은 월 6만9000원인 '비디오'다. 수요가 많은 6만 원대에서 기존보다 혜택을 늘리는 방향으로 전략을 세웠다. '비디오'는 데이터 100GB가 주어지며 소진하더라도 5Mbps로 계속 이용할 수 있다. KT 관계자는 "'비디오'는 요금이 비싸지 않으면서도 넉넉하게 데이터를 사용할 수 있는 실용적인 요금제"라고 설명했다.
LG유플러스는 통신사 중 가장 먼저 8만8000원인 '완전 무제한' 요금제를 내놓은 만큼 해당 요금제를 주력으로 밀고 있다. 현재 회사는 '완전 무제한' 요금제와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서비스 개발에 공을 들이고 있다. 데이터 소모가 많은 'U+프로야구'와 'U+골프'가 대표적이다.
이동통신 업계 관계자는 "통신사의 주력 상품이 달라지는 건 각사의 전략이 다르기 때문"이라며 "예전에는 가격만 보고 요금제를 선택했다면, 최근 소비자들은 데이터 사용량 등을 꼼꼼하게 따진다. 이런 소비자 요구를 충족시키는 부분에서 각사의 생각이 다른 것"이라고 밝혔다.
◆ 보편요금제 때문? 저가 요금제 혜택 강화
고가 요금제뿐만 아니라 저가 요금제에서도 큰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이동통신사가 보편요금제 압박에 대한 방어 차원에서 저가 요금제 혜택을 늘렸다.
앞서 정부는 가격대별로 혜택의 차이가 너무 크다고 판단했다. 이 때문에 월 2만 원에 음성통화 200분, 데이터 1GB를 제공하는 요금제를 1위 사업자인 SK텔레콤이 출시하도록 하는 보편요금제 도입을 추진했다. 현재 보편요금제를 담은 법안이 국회에 제출된 상태다.
신규 요금제를 살펴보면 SK텔레콤은 3만3000원인 '스몰'에서 1.2GB의 데이터를 제공한다. KT도 'LTE 베이직'이라는 요금제를 최근 내놓으면서 3만3000원에 1GB의 데이터를 제공하고 있다. 보편요금제와 유사한 상품이 이미 출시된 셈이다. LG유플러스도 저가 요금제를 포함해 다각도로 신규 요금제 출시를 검토하고 있다.
정부의 보편요금제 도입이 무색해졌다는 의견이 나오는 것도 이동통신사의 '자발적 보편요금제' 도입 때문이다. 이러한 이동통신사들의 행보가 보편요금제 법안 처리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귀추가 주목된다.
정부는 신규 저가 요금제 출시와 별개로 보편요금제 도입을 계속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전성배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통신정책국장은 지난 17일 브리핑에서 "보편요금제를 추진하지 않았으면 이동통신사가 자율적으로 요금제 개편에 나섰겠느냐 하는 의구심이 있다"며 "아직 성과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보편요금제의 필요성은 여전히 존재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이동통신사는 "보편요금제 때문에 신규 저가 요금제를 내놓는 것은 아니다"며 "저가 요금제 가입자에 대한 혜택 강화 차원"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