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연행의 소비자시대] 소비자 우롱한 은행권 ‘금리조작’, 엄중문책해라

최근 금융감독원이 국내 9개 은행을 대상으로 2~3월 대출금리 산정체계 적정성에 대한 점검을 실시한 결과 일부 은행이 금리를 불합리하게 산정한 것으로 드러났다. /더팩트 DB

금감원, 전수조사 통해 소비자에게 이상 유무 통보하고 은행 일벌백계해야

[더팩트 | 조연행 금융소비자연맹 회장] 은행이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다. 금리를 조작해 대출이자를 더 받아 금융소비자 주머니를 털어갔다. 은행은 소비자 소득을 누락시키거나 담보를 제공했어도 일부러 빠뜨리고 가산금리를 중복 계산해 금리를 ‘고의적’으로 높여 산정했다.

은행업은 신뢰산업인데 이 신뢰가 한꺼번에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다. 마치 튼튼해야 할 다리가 무너져 내리고 백화점 건물이 붕괴되는 것과 다름없다.

은행은 신용산업이다. 은행은 금융소비자들에게 신용을 믿고 대출해 준다. 또한 소비자들이 신용을 지키도록 이자가 하루라도 밀리면 가차 없이 연체이자를 물리고 담보물을 경매에 부쳐 처분한다. 대다수 소비자들은 은행을 공공기관처럼 신뢰한다. 은행은 금융회사인데 소비자들이 금융기관이라고 여긴다는 얘기다.

은행에 예금이나 적금을 들 때 소비자들은 "은행 직원들이 어련히 잘 알아서 좋은 상품을 권유해 주겠지"라는 생각으로 믿고 맡긴다. 소비자가 돈이 필요해 대출을 받을 때도 은행들이 대출만 해주면 ‘감지덕지’ 고마워한다. 대출금리는 잘 알아서 적당히 해 줄 것이라 믿었다. 묻고 따지지도 않고 은행이 정해주는 대로 이자를 내고 원금을 갚아 나갔다.

그런데 철석같이 믿었던 그런 은행이 소비자에게 대출금리를 조작해 이자를 편취했으니 놀랄 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은행들은 ‘실수’라고 하지만 한두 건이 아니라 한 은행에서만 무려 1만 건이 넘는 실수를 저질렀다. 이 정도면 실수가 아닌 고의적이라는 느낌이 든다.

만일 이번 일이 단순 실수라 해도 그냥 넘어갈 수는 없다. 소비자에게 직접 피해가 전가되는 예민한 ‘금리’ 적용을 은행이 ‘실수’라며 은근슬쩍 넘어가려는 것은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중대 사안이기 때문이다.

행장을 비롯한 전 임직원이 이번 사태에 무릎 꿇고 사죄해도 ‘용서’하기 쉽지 않은데 은행은 무성의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는 게 문제다.

금융감독원이 은행권의 금리 부당 산출과 관련해 전수조사를 진행하고 소비자에게 조사 결과를 공개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더팩트 DB

더욱 놀랍고 가관인 것은 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이다. 금융소비자연맹이 가산금리의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는 입장을 내놨지만 금감원은 이를 묵살하고 관리감독을 소홀히 해왔다. 금감원은 마지못해 은행 대출금리 산정체계를 점검한다며 9개 은행 샘플을 조사해 보니 ‘금리조작’ 사건이 한두 개 은행에서 실수로 일어난 게 아니라 생각보다 넓게 확산됐다는 점을 깨달은 것이다.

대표적인 예는 은행들이 가산금리를 수년간 그대로 두거나 터무니없이 높게 매기고 신용등급이 올라갔어도 그대로 방치했다는 점이다.

은행이 금리를 조직적으로 조작했을 가능성이 커진 가운데 금감원이 은행에 ‘셀프감사'를 지시한 것은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다. 이는 마치 범죄자에게 범죄사실을 조사해 스스로 가져오라는 것과 마찬가지다. 금감원 역시 '금리조작' 사건을 일찍 파악하고 이에 따른 조치를 취하지 못한 책임이 크다. 그런데 금감원이 은행에 셀프감사를 지시한 것은 ‘금감원’이기를 포기한 것과 다름이 없다.

우리 사회에서 은행은 고액연봉에 최고의 안정적인 직장으로 손꼽힌다. 그러한 일자리기에 각급 기관 권력자나 힘깨나 쓰는 인사들이 인사 청탁을 하고 은행들은 이들과 손잡고 채용비리를 십수 년간 저질러 사회적 지탄을 받고 있다. 국내 은행들은 새로운 수익원 발굴이나 선진투자기법 연구 없이 주로 소비자들에게 예금이자율은 낮추고 대출이율은 높여 예대마진을 키우고 높은 수수료로 앉아서 배를 불리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은행은 이처럼 안일하게 영업하고 비리가 춤추는 곳이 됐다. 그런 은행이 소비자를 속인 범죄를 또 저지른 것이다.

대출소비자들은 자신의 대출금리가 적정하게 매겨졌는지 궁금하게 여긴다. 그렇다고 잘못된 경우 은행에 물어본다고 제대로 답해 줄 리가 없다. 이에 따라 금감원은 전체 대출 건에 대해 대출금리 적용실태를 전수 조사해야 한다. 또한 소비자에게 적정성 여부를 통보해줘야 한다.

은행은 또 부당하게 더 징구한 이자에 대해 몇 푼 그대로 돌려줄 것이 아니라 몰래 더 받아간 이자의 10배 이상을 물어내도록 해야 한다. 범죄로 얻는 수익이 ‘배상’보다 크니 이러한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것이다. 소비자에게 손해를 입힌 돈만 물어주면 그뿐이기 때문이다.

온 국민은 은행의 ‘금리조작’ 사건 처리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과 윤석헌 금감원장이 현명한 결정을 해주길 기대한다. 금리조작 사건은 금융권 전체에 대한 신뢰가 걸려 있는 문제라는 얘기다.

kicf21@gmail.com

Copyright@더팩트(tf.co.kr)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