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력 잃은 카풀 시장, 이대로 지켜만 볼 것인가
[더팩트ㅣ이성락 기자] 산업계에는 다이어트가 필요하다. 신사업 추진을 방해하는 '규제'라는 기름기를 빼야 한다. 물론 규제는 질서를 유지한다는 측면에서 나쁜 게 아니다. 하지만 '나쁜 규제'도 있다. 필자가 다소 단정적으로 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시장의 변화를 읽지 못한 '일관된 규제'가 여러 사람의 발목을 잡는 사례는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카풀(승차공유) 업계 사정이 딱 이렇다. 여러 카풀 업체가 국내 서비스 활성화를 시도했지만, 규제에 막혀 사업 확장에 실패하고 있다. 최근에는 한국판 우버로 불린 카풀 업체 풀러스가 대규모 구조조정에 들어갔다는 소식이 들렸다. 해당 업체의 대표는 사임을 결정했다. 이유는 경영난이다. 경영난의 원인은 각종 규제로 인해 실적 회복의 기회를 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풀러스는 지난 2016년 사업을 시작했다. 1년 만에 회원 75만 명을 확보하고 누적 이용 370만 건을 기록하는 등 가능성을 보였다. 200억 원대 투자를 유치하며 기대를 모으기도 했다. 하지만 개인 카풀을 출·퇴근 시간에만 이용할 수 있도록 제한한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으로 인해 사업 확장에 실패했다. '규제 완화'를 기대하며 날개를 펼쳤지만, 결국 본궤도에 오르지 못한 셈이다. 풀러스 사례를 놓고 국내 스타트업의 현주소를 보여준다는 씁쓸한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카풀 업체가 규제 덫에 걸린 사례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국내 3대 카풀 서비스 중 하나였던 '티티카카'는 한계를 느끼고 출시 5개월 만에 사업을 접었다. 불법 유상 운송 논란을 겪은 럭시는 카카오모빌리티에 인수되는 방법은 선택했다. 글로벌 업체인 우버도 국내 시장 진출의 어려움을 겪고 주력 서비스의 출시를 포기하기도 했다. 우버도, 한국판 우버도 국내 시장은 쉽지 않다.
반면 글로벌 시장에서 카풀 서비스는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우버, 중국에서는 디디추싱, 동남아에서는 그랩 등 카풀 업체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상태다. 프랑스의 블라블라카와 에스토니아의 택시파이 등 후발주자들도 사업성을 인정받아 투자를 받고 몸집을 키우고 있다. 글로벌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글로벌 카풀 시장 규모가 지난해 360억 달러(약 40조 원)에서 2030년 2850억 달러(약 318조 원)로 8배가량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최근 만난 국내 카풀 업계 관계자들은 이런 상황이 답답하게 느껴진다고 토로했다. 승승장구하고 있는 해외 카풀 업체와 비교해 국내 업체들의 기술력이 결코 뒤떨어진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도 충분히 할 수 있다'는 게 이들의 판단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할 수 없다'는 게 이들의 현재 심정이기도 하다.
굳이 글로벌 시장 사례를 들며 '우리도 뒤처지면 안 된다'는 식의 논리를 펴지 않더라도 국내 카풀 서비스 활성화의 필요성은 충분하다. 택시 공급 부족 문제를 일정 부분 해소할 대안으로써의 필요성이다. 정작 필요할 때 택시가 잡히지 않는다는 불만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승차 거부 문제가 꾸준히 거론돼도 택시 서비스의 개선은 뚜렷하지 않다. 택시 수요가 넘쳐나는 시간대에 카풀 서비스로 이러한 수요를 메워 승객들의 불편을 줄일 수 있다고 카풀 업계 관계자는 설명한다.
카카오모빌리티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18일 기준으로 전국에서 오전 8시부터 한 시간 동안 발생한 '카카오T택시' 호출은 약 23만 건에 달했지만, 당시 배차 가능한 택시는 약 2만6000대 수준이었다. 데이터가 과장된 것 아니냐는 의심을 할 순 있지만, 택시의 수요와 공급이 굉장히 불균형하다는 점은 여실히 보여준다. 물론 이렇게 부족한 수요가 카풀로 완전히 해소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시도라도 해봐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게 업계 분위기다. 카카오모빌리티도 택시 수급 불균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카풀 서비스 출시를 준비하고 있다. 다만 규제와 택시 업계 반발을 의식해 사업을 신중하게 진행하고 있다.
결국 정부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 성장 가능성이 큰 시장을 활성화하는 것과 택시 수급 불균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규제 완화를 검토해야 한다. 아니, 카풀 규제 완화를 놓고 벌어지는 갈등을 해결하려는 최소한의 노력이라도 필요하다. 시장이 변화를 요구하고 있는데도 기존 규제를 유지하려는 이들의 눈치만 보고 '방관 모드'를 유지한다면 새로운 사업에 도전하는 기업들의 어깨는 갈수록 움츠러들 수밖에 없다.
카풀 업계에 특혜를 주자는 말이 아니다. '규제'를 놓고 완화하거나, 반대로 강화하는 일에는 여러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는 점도 이해한다. 새로운 서비스가 시장에 미칠 부작용도 충분히 우려된다. 그렇다고 지켜볼 수만은 없다. 한 발짝이라도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야 하지 않겠나 싶다. 문제해결을 위한 테이블을 마련하는 데 있어 좀 더 적극적인 자세를 요구한다.
신사업은 도전적인 과제다. 하지만 현재 기업들은 도전적인 과제를 최대한 조심스럽게 추진해야 하는 실정이다. 정말 웃긴 일이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