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프랑크푸르트선언’ 25주년...위기 극복하는 대혁신 기대
[더팩트ㅣ김민구 기자] 지금으로부터 28년 전 일이다. 삼성전자는 1990년 후쿠다 다미오(福田民郞)를 디자인 고문으로 스카우트했다. 후쿠다는 일본 전자업체 교세라 출신으로 세계적인 디자인 전문가다. 삼성전자 제품이 세계무대에서 맹위를 떨치려면 디자인 개선이 절실했다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냉철한 판단에 따른 것 아니었겠는가.
그 후 3년이 지난 1993년 6월 6일이었다. 이 회장은 세계 자동차산업을 시찰하기 위해 독일 프랑크푸르트 출장을 앞두고 있었다. 후쿠다는 이 회장에게 삼성의 문제점과 개선 방향을 담은 이른바 '후쿠다 보고서'를 건넸다. 보고서 핵심은 이러했다. '삼성은 세계무대에서 3류'라는 얘기다. 이 보고서를 읽은 이 회장은 눈이 뒤집혔을지도 모른다. 후쿠다 보고서는 이 회장 자존심에 큰 상처를 주기에 충분했다.
이 회장은 프랑크푸르트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보고서를 여러 차례 정독했고 6월 7일 독일 땅을 밟는 순간 긴급 간부회의를 지시했다. 삼성의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철저하게 살펴보겠다는 얘기다.
이 회장은 삼성 사장단과 주요 임원들을 독일 프랑크푸르트 시(市)외곽에 있는 켐핀스키 호텔에 불러 모았다. 회의에는 윤종용, 김순택, 현명관 등 당시 삼성의 스타급 최고경영자(CEO)와 고위 임원 등 총 1800여명이 한 자리에 모여 350시간 동안 회의를 진행했다. 이러한 산고(産苦) 끝에 나온 결론이 그 유명한 ‘프랑크푸르트 선언’이다.
이 회장은 단호했다. 그는 "삼성이 죽느냐 사느냐의 갈림길에 서 있다.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는 이른바 '신(新)경영 선언'을 했다. 삼성의 암울한 현실에 격노한 그가 제2창업을 선언한 것이다.
'프랑크푸르트 선언'은 삼성에 혁명적 변화를 가져다 준 '티핑 포인트'임에 틀림없다. 삼성이 가장 혁신적이고 파격적인 조직문화를 통해 초일류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초석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변화를 이끌어낸 방아쇠 역할을 한 것은 후쿠다 보고서다. 후쿠다 고문은 '악마의 변호인(데블스 애드버킷:Devil''s advocate)'이다. 악마의 변호인은 어떤 사안에 대해 의도적으로 반대 의견을 낸다. 모두가 찬성할 때 악마의 변호인은 반대하는 목소리를 낸다. 이쯤 되면 '왕따'가 따로 없다.
그러나 악마의 변호인은 조직이 쉽게 빠질 수 있는 집단사고(Groupthink)의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집단사고는 의사 결정 때 만장일치를 이끌어 내려는 속성 때문에 비합리적 결론을 내는 단점을 안고 있다. 특히 결속력이 강한 집단일수록 의견일치에 대한 의지가 강해 다른 의견은 무시하는'확증편향'에 빠지게 마련이다. 악마의 변호인은 이런 문제점을 해결한다. '충언역이이어행(忠言逆耳利於行: 좋은 말은 귀에 거슬리지만 바른 행동을 하는 데 이롭다)'이라는 고사성어가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삼성이 프랑크푸르트선언 이후 혁신기업의 대표명사가 됐지만 꽃길만 걸어온 것은 아니다. 1995년 3월 9일 삼성전자 경북 구미공장 운동장에는 불량제품으로 판명 난 무선전화기와 팩시밀리 등 15만 대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무선전화기는 출시된 지 5개월밖에 안된 애니콜의 첫 제품 ‘SH-770’이었다. 삼성 임직원 2000여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운동장 한 곳에 있던 불도저가 이들 제품을 산산조각 냈고 잘게 부셔진 제품에는 불이 붙었다. 500억 원어치의 제품은 시커먼 연기를 뿜어내며 한 줌의 재로 사라졌다.
이날 화형식을 집행한 주인공은 이 회장이었다. 이 회장은 무선전화기에 불량품이 있다는 보고를 받자 불량품을 모두 한 곳에 모아 불태우라고 지시했다. 제품을 집어삼킨 거대한 화염은 어쩌면 품질 완벽주의를 고집한 이 회장의 분노 표출이었을지도 모른다. 이 회장의 '애니콜 화형식'은 회사 내 느슨해진 규율을 바로잡고 삼성 스마트폰이 세계 1위 제품으로 도약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됐다.
아픈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던가. 삼성전자는 갤럭시노트7 파문으로 2016년 또다시 위기를 맞았다. 당시 현존하는 최고의 기술을 갖춘 갤럭시노트7은 배터리 화재사건이 잇따르자 제품 리콜이 아닌 단종(斷種) 이라는 극약처방을 내렸다. 삼성으로서는 처리 방식만 다를 뿐 '제2의 화형식'을 치른 셈이다.
갤럭시노트7 파문은 '깨진 유리창 이론(Broken windows theory)'의 결과물이다. 미국 스탠퍼드대 심리학과 교수 필립 짐바르도가 1969년에 발표한 이 이론은 사소해 보이는 것을 등한시하면 결국 전체가 무너진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세계 초일류 기업'이라는 꼬리표가 붙은 삼성은 1등 자리에 안주한 나머지 갤럭시 노트7 제품의 전체 성능을 좌우할 수 있는 미세한 부분을 등한시했다. 깨진 유리창을 방치하면 그 지역 일대가 더 큰 무질서와 범죄로 이어지는 무법천지가 된다는 점을 미처 깨닫지 못한 것이다. 결국 기술 혁신이나 변화도 거창한 것이 아닌 사소한 것에 결정될 수 있다는 얘기다.
삼성으로서는 갤럭시노트7 파문이 굴욕이 아닌 실패에서 배우는 경영학 과정이 됐다. 인텔을 세계 최대 반도체 업체로 일궈낸 후 지난 2016년초 타계한 앤디 그로브 전(前) 회장이 삼성 갤럭시노트 사태를 지켜봤다면 아마 이런 조언을 하지 않았겠는가. "공은 자만을 낳고 자만은 실패를 낳는다. 오직 패러노이드(Paranoid·편집광:사소한 일을 크게 걱정하는 사람)만이 살아남는다." 3류기업은 위기로 인해 파괴되고 2류기업은 위기를 이겨내며 1류기업은 위기로 발전해온 게 기업의 근대사다.
프랑크푸르트 선언이 삼성을 명실상부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도약판이 됐지만 선언 25년을 맞는 삼성은 침울한 분위기다. 행사를 축하하는 기념 팡파르가 울리는 것은 기대도 할 수 없다. 삼성은 시련과 역경을 겪고 있다. 프랑크푸르트 선언 설계자인 이 회장은 와병 중이고 아버지의 뒤를 이어 거대한 '삼성호(號)'를 이끌어가야 하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3심이 진행중이다. 이 부회장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휘말리며 삼성 총수 사상 처음으로 구속돼 1년 가까이 옥살이를 했다. 그는 2심에서 집행유예로 석방되며 큰 고비를 넘겼지만 아직 3심이 남았다. 화불단행(禍不單行:재앙은 혼자 오지 않는다)이란 옛말이 틀리지 않았다.
이 부회장 모습을 보면 조선시대 실학자 연암(燕巖) 박지원의 소설 '열하일기(熱河日記)'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이 부회장은 한치 앞이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발 한 번 잘못 디디면 그대로 황천길로 향할지 모르는 두려움에 휩싸였을지도 모른다. 초우량 글로벌기업을 이끌고 가는 총수에게는 너무 가혹한 시련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역경과 시련 없는 성공이 어디 있겠는가. 이 세상 어떤 성공도 다 역경과 시련 속에 꽃을 피우지 않았는가. 오늘날 삼성을 만든 프랑크푸르트 선언이 빛바랜 휴지 조각이 되도록 방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올해는 프랑크푸르트 선언 25주년이자 삼성 창립 80주년이 되는 해다. 삼성은 이제 80년을 넘어 100년 글로벌 기업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다.
이 부회장은 아버지에 이어 '제2 프랑크푸르트 선언'을 해야 한다. 삼성이 드론(Drone:무인항공기), 인공지능(AI), 로봇, 사물인터넷(IoT) 등으로 대변되는 제4차산업혁명의 거센 파고(波高)에 맞서 이겨내려면 다시 도약해야 한다. 삼성으로서는 그동안 걸어온 패스트 팔로워(새 기술을 빠르게 쫓아가는 기업)전략에서 탈피해 차별화된 기술로 시장을 장악하는 패스트 무버로 자리매김할 절호의 기회를 맞았다. 복합위기 상황을 극복할 이 부회장의 야심찬 기술혁신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