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바뀔 때마다 '이현령 비현령'식 기업 정책으로 기업 경쟁력 악화
[더팩트 | 서재근 기자]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급성 심근경색으로 병상에 누운 지 오늘(10일)로 만 4년이 됐다.
10일 삼성에 따르면 이 회장의 건강상태는 예년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의식은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지만 여전히 자가 호흡을 하는 상태로 재활치료가 진행형이다. 지난 2월 출소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물론 이 회장 부인 홍라희 여사와 두 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물산 패션부문 사장도 틈 날 때마다 병실을 찾아 남편과 부친 건강을 살핀다는 게 삼성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큰 변화를 보이지 않는 이 회장 병세와 달리 삼성 안팎의 상황은 녹록치 않다. 삼성은 지난 2월 이 부회장이 집행유예로 풀려나면서 '결정권자의 부재'라는 악재에서 벗어나는 데까지는 성공했다. 석방 이후 대내외 공식 일정을 미뤄둔 채 '정중동' 행보를 유지해왔던 이 부회장도 지난 3월 출소 후 첫 해외출장을 시작으로 유럽과 북미, 중국, 일본 등 글로벌 무대로 보폭을 넓히며 경영 복귀를 위한 정지작업에 나서고 있다.
실적도 지난 1분기 15조6400억 원의 영업이익을 거두며 '4분기 연속 사상 최고치 경신'이라는 괄목할만 한 성과를 거두는 등 내부에서는 나름의 방식으로 '숨고르기'에 집중하는 분위기다.
문제는 연일 압박의 수위를 높이는 정부 부처의 칼끝이 여전히 삼성을 정조준 하고 있다는 데 있다.
공정거래위원회,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국토교통부, 국세청 등 삼성을 겨냥한 정부 부처 숫자와 각 부처에서 문제 제기한 사안의 범위도 상당하다. 컨트롤타워 부재 속에 삼성을 향한 정부 부처의 '쉼 없는' 공세가 이어지자 '관리의 삼성'으로 불리는 경영 시스템에도 비상등이 켜졌다. 지난 3월에는 삼성전자 평택 반도체 공장에서 정전 사고가 일어나 수백억 원 규모의 경제적 손실이 발생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한 달 후인 4월에는 삼성증권에서 사상 초유의 배당사고까지 터졌다.
특히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삼성 관련 이슈에 대한 각 부처의 달라진 법해석은 정치권은 물론 재계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는 것은 삼성의 순환출자 고리 해소와 관련한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의 태도변화다. 지난 2월 공정위는 삼성에 삼성SDI 보유 삼성물산 주식 전량(404만 주)을 추가로 처분하라고 통보했다. 지난 2015년 당시 '구 삼성물산삼성물산→삼성전자→삼성SDI→구 삼성물산' 고리가 합병 이후 '통합 삼성물산→삼성전자→삼성SDI→통합삼성물산'으로 바뀌는 과정을 '형성'이 아닌 '강화'라고 판단했지만 2년 만에 완전히 다른 해석을 내놓은 것이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역시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처리 과정에서 문제가 없다'던 기존 방침을 뒤집고 1년여 만에 '분식회계가 인정된다'는 쪽으로 노선을 바꿨다. 특히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에 대해 법 개정안 처리를 지켜보겠다던 기존 태도와 달리 금융위원장이 전면에 나서 30조 원에 달하는 지분을 조속히 처리하라며 압박하고 있다.
삼성을 향한 정부 부처의 '냉랭한' 태도를 바라보는 재계 안팎의 시선 역시 곱지 않다. 문제 제기 대상이 삼성에서 언제든지 다른 주요 그룹으로 바뀔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기업 관계자는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이현령 비현령)식으로 명확한 기준 없이 정권이 바뀔 때마다 다른 잣대를 들이댄다면 삼성뿐만 아니라 국내 어느 대기업이라도 '정부의 타깃'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삼성의 변화는 다른 대기업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 사실"이라며 "경영 시스템, 대규모 채용, 사회공헌 활동에 이르기까지 재계 전반에 바로미터를 제시해온 삼성이 '제재의 대상'이 된 상황에서 다른 기업들도 제2, 제3의 삼성 케이스가 될지 모른다는 우려를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