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분쟁 중 법적 소송 제기 건수 63건으로 '최다'
[더팩트ㅣ이지선 기자] # 소비자 A씨는 사고를 겪은 이후 병원에서 오랜 기간 동안 치료를 받으면서 한화손해보험에서 여러번 보험금을 타 치료비로 사용했다. 그런데 몇 년 후 소장이 접수됐다는 소장이 날아왔다. 보험사에서 지금까지 받았던 보험금을 다시 내놓으라는 소송을 제기한 것이었다. 이와 함께 보험금을 반환하기 싫다면 기존 계약을 해지하라고 제안해왔다.
한화손해보험이 손보업계에서 보험금을 청구한 소비자에게 가장 많은 소송을 제기하면서 보험금을 받기 힘들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금융소비자 보호를 위해 업계 전반적으로 소송을 줄이고 있는데, 한화손보의 행보는 이런 분위기에 상반된다는 지적이다.
특히 보험사들은 보험금을 지급하기 전 손해 사정으로 사고에서 소비자가 처한 상황이 보험사에서 보장을 해야 할 부분인지 판단하는 과정을 거친다. 사례자 A씨 또한 오래 전에 심사를 거쳐 아무런 제지 없이 보험금을 지급받아 사용했는데 갑자기 보험금을 부당하게 청구했다고 주장하며 '이득을 반환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이런 행보는 보험사에서 지급해야할 보험 액수가 커지면 보험 해지를 유도하기 위해 소비자에게 '소송'으로 이른바 '겁'을 주며 압박을 가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대부분 보험금을 지급받은 사람들은 아프거나 약한 상태인데, 이들을 상대로 '소송'을 걸어 보험 해지나 계약 조건 완화 등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소비자단체 관계자는 한화손보가 제기한 바와 같이 보험금을 지급하고 나서 갑자기 보험금 반환 청구 소송을 제기하는 것에 대해 "보험금 관련 소송이 제기되면 소비자들은 지레 겁을 먹는 경우가 많아 대부분 보험사가 사기라는 명백한 증거가 확보되지 않은 채 지급 횟수만 보고 '아님 말고' 식으로 법원 문을 두드린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화손보 같은 중상위권 업체는 지급 과정에서도 심사를 철저히 진행할텐데도 소비자를 대상으로 소송을 벌이는 건수가 최근 많아지고 있는 편"이라며 "만약 소송까지 해서 반환받아야 하는 보험금이 실제로 그렇게 많다면 보험 심사를 하는 부서에서는 직무를 유기한게 아니냐"고 덧붙였다.
9일 금융소비자연맹에 따르면 한화손보는 지난해만 분쟁조정 신청인들에게 63건의 소송을 제기했다. 2016년보다 오히려 16건 증가한 횟수로 국내에서 영업하는 14개 손보사 중에 건수가 가장 많다. 손해보험협회 공시에 따르면 올해 1분기에도 한화손보는 분쟁조정 신청 283건 중 13건에 대해 소를 제기했다.
업계에서는 한화손보가 소송을 무분별하게 제기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 소송에서 패소하는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이다.
손해보험협회에 공시된 자료에 따르면 2017년 하반기에 한화손보가 제기한 31건의 소송 중에서 20건은 '전부 패소' 판결을 받았다. 개인과 기업과의 소송인데도 기업이 패소하는 비율이 높다 보니 보험사가 무리하게 소송을 건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것이다.
또한 한화손보는 민사 조정도 빈번하게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 한화손해보험은 222건의 민사 조정을 새로 제기했고 183건의 조정은 불성립됐다.
민사 조정은 분쟁에 대해 서로 양보하고 타협해 합의를 하도록 주선하는 법적 절차다. 법원에서 소송을 벌이는 것은 아니지만 소비자 대부분은 차이를 크게 느끼지 못하고 번거로운 소명 절차 등에 부담을 느끼게 된다. 이에 개인들이 제대로 대응하기 못하기 때문에 보험사는 사측에 유리하도록 보험 계약 해지 등을 조건을 제시하며 분쟁을 조정할 수 있다.
보험사가 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악성 민원'이나 보험 사기 등을 근절하기 위한 제도다. 하지만 법적 분쟁이 시작되면 막대한 비용이 드는 경우가 더러 있고, 개인이 기업을 상대하는 구조다 보니 소비자에게 훨씬 불리할 수 있다. 이에 보험사가 이런 소송을 남발하면서 소비자들이 피해를 보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금융감독원과 시민단체들은 이런 소비자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보험사가 소송을 남발하는 행위를 줄이라고 권고하고 나섰다. 특히 금감원은 금융소비자보호 실태 평가 등을 통해 분쟁 조정 절차 중에 금융사가 소송을 제기할 수 없도록 사전 차단하고, 소송 공시 항목을 확대하는 등의 제재 방안을 내놨다.
이에 따라 손해보험업계의 분쟁조정 중 소송 횟수는 점차 줄어들고 있다. 2016년 246건에 달했던 소송제기건수는 지난해 193건으로 감소했다. 삼성화재가 전년 대비 30건 줄며 17건의 소송을 제기했고 KB손해보험도 21건 감소한 4건의 소송만을 제기하며 일부 보험사를 제외하고는 전반적으로 개선세를 보인 것이다.
하지만 이런 업계 분위기에도 한화손보는 여전히 소비자를 상대로 소송을 이어가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기욱 금융소비자연맹 사무처장은 "보험사가 정당한 절차 없이 갑자기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에 대해서는 당국의 지속적인 집중 관리가 필요할 것"이라며 "대기업인 보험사가 무리하게 소송을 걸어 소비자가 피해를 보는 일이 없도록 지속해서 모니터링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보험사와 개인 간 소송이 불거지면 대부분의 개인이 소송 비용 등을 생각해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며 "보험사 입장에서는 소송을 제기하는 것만으로도 보험사가 유리한 쪽으로 조정을 진행할 수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한화손보는 소비자 대상 소송은 충분한 검토 끝에 제기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한화손보 관계자는 "보험 이득 반환청구소송이 많아 보이지만, 과다 입원 등 의심이 드는 경우 충분한 증거를 가지고 소를 제기하는 것"이라며 "부당하게 보험금을 지급하게 되면 보험 수가가 올라가는 등 선량한 소비자들도 피해를 입을 수 있어 의심이 되는 사례를 적극적으로 검토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내부적으로 소송관리위원회 등을 별도로 설치해 경미한 질환을 가지고 보존적인 치료를 시행하며 반복적인 입원을 하는 경우 등 의심 수준에 따라 철저한 조사 이후 소 제기를 결정하고 있으며 소 제기를 줄여가고 있는 추세다"라고 덧붙였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최근 보험사기방지 특별법이 시행될 정도로 보험 사기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견제하려는 제도로 '소송'이 활용 되는 것"이라며 "소송이 소비자 권익을 침해한다고 볼 수도 있지만 부정 지급 등을 방지하는 측면에서는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라고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