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접근권①] 말뚝 박고 노후된 점자블록 방치…'위험천만' 대형마트

국내 주요 대형마트 3사가 점포를 방문하는 장애인들의 접근성을 고려하지 않은 각종 장애물로 빈축을 사고 있다. 사진은 홈플러스 문래점 출입구 앞에 설치된 볼라드. 볼라드는 쇼핑카트 진출입을 막기 위해 설치됐지만 장애인 보행에 지장을 준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영등포=안옥희 기자

롯데마트‧이마트‧홈플러스, 화재 발생 때 속수무책…장애인 고객 안전 책임 '뒷짐'

[더팩트ㅣ서울역‧영등포=안옥희 기자] 주요 대형마트가 장애인들의 접근성과 편의를 고려하지 않은 각종 시설물을 설치해 빈축을 사고 있다.

일부 점포는 출입구 앞에 볼라드(차량 진입 방지용 말뚝)를 심어놓는가 하면 노후화된 점자블록을 그대로 방치하고 있다. 점자 표지판이 없는 화장실과 비상구로 인해 장애인들의 매장 방문을 어렵게 하고 안전문제에도 손을 놓고 있었다.

지난 18일 <더팩트>가 서울 시내 롯데마트(서울역점)‧이마트(타임스퀘어점)‧홈플러스(문래점) 등 대형마트 3곳의 출입문 문턱과 점자블록 등 장애인 이동권을 위한 대표적인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 여부를 취재한 결과 상당히 열악한 것으로 확인됐다. 화장실을 안내하는 점자 표지판도 미비하고 음성 안내장치도 찾아볼 수 없어 장애인들의 소비자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세 점포 모두 장애인뿐 아니라 유모차·핸드카트 고객을 위해 출입문 문턱은 제거하고 있었지만 시각장애인에게 방향을 알려주는 점자블록과 화장실을 찾게 해주는 점자 표지판 설치 점포는 일부에 그쳤다. 모든 점포 출입구에 점자블록이 일부 설치돼 있었으나 실내에는 대부분 설치되지 않았다. 시각장애인이 다른 사람 도움 없이 쇼핑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이날 찾은 홈플러스 문래점은 출입구 부근에 장애인뿐 아니라 비장애인 통행도 방해하는 볼라드가 빼곡하게 설치돼 있어 위험천만한 모습이었다. 유모차나 핸드카트를 가지고 온 고객들은 하나같이 "말뚝이 촘촘하게 박혀 있어 지나다니기도 불편하고 넘어 질까 겁난다"고 입을 모았다. 점포 안에서도 몇 가지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무빙워크 앞에 깔린 점자블록은 노후화해 닳은 채로 방치돼 있었고 미끄럼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깔아둔 카펫은 점자블록을 가리고 있었다.

장애인을 위한 점자블록 대부분이 노후된 채로 방치되거나 카펫으로 가려져 있는 등 사실상 유명무실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홈플러스 문래점 무빙워크 앞 노후된 점자블록(왼쪽)과 카펫에 가려진 점자블록. /안옥희 기자

롯데마트 서울역점은 매장이 비좁은 데다 사람과 물품까지 빼곡하게 들어차 있어 휠체어가 다닐 수 있는 공간이 없었다. 매장 곳곳에 각종 판매대와 카트가 즐비해 시각장애인 통행뿐 아니라 안전도 위협하고 있었다. 2층 장애인 주차 전용구역에는 관리 직원이 따로 없어 보행장애인 탑승 없이 불법 주차한 차량이 취재진을 확인하고 재빨리 주차장을 빠져나가는 모습도 포착할 수 있었다. 해당 차량은 장애인 주차표지를 부착했으나 보행장애인이 탑승하지 않아 '장애인 등 편의법' 상 과태료 10만 원에 표지 회수 및 재발급 제한 규정이 적용된다.

이마트 타임스퀘어점도 매장 곳곳에 판매대가 놓여 있어 보행에 지장을 주고 있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화장실 점자 표지판은 갖추고 있었지만 매장과 연결돼 있지 않아 쇼핑 중 화장실을 곧바로 이용할 수 없다.

시각장애인들은 직원 도움을 받는 서비스 없이 직접 매장을 방문해 상품을 구매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더 심각한 문제는 장애인을 위한 직원이 따로 있지도 않다는 것이다. 앞을 볼 수 없는 전맹 시각장애인은 혼자 마트 이용이 불가능해 활동 보조자나 마트 직원 등 다른 사람 도움이 필요하다. 샴푸 등 일부 생활용품이 점자를 표기하고 있지만 해당 상품을 찾는 것 역시 혼자는 불가능하다. 저시력 장애인도 시력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상품명과 가격 등 정보가 매우 작은 글씨로 적혀 있어 독서확대기나 스마트폰 앱 없이 혼자 쇼핑하기가 어렵다는 설명이다.

이들은 또한 마트를 방문할 때 화장실 이용이 불편하다고 호소한다. 마트 직원의 성별이 같다면 화장실 안쪽까지 안내를 부탁할 수 있지만 성별이 다를 경우 입구에서부터 혼자 벽면을 더듬고 다니며 소변기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시각장애인 이 모 씨는 "화장실 이용이 진짜 곤혹스럽다"며 "소변기를 찾기 위해 여기저기 더듬고 다니다 변기 안에 손을 집어넣게 되는 것도 부지기수다. 이럴 때 비참함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일부 점포는 재난 발생 때 필요한 소방시설인 휴대용 손전등 앞에 물품을 쌓아놓고 있다. 또한 매장 곳곳 판매대를 설치해 장애인 통행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 화장실을 알려주는 점자 표지판이 있어도 매장과 연결돼 있지 않아 다른 사람 도움 없이는 갈 수가 없다. /안옥희 기자

상품 구매와 편의시설 문제뿐 아니라 재해, 재난 등 위급한 상황이 생겼을 때 장애인들의 신체적 특성을 고려한 매뉴얼과 대피시설이 전무한 것도 문제다. 대형마트를 이용하는 비장애인은 비상구 위치와 방향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시각장애인을 위한 음성안내 장치가 따로 없어 화재라도 일어난다면 대피 한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이 씨는 "최근 일어난 제천‧밀양화재 참사 때 비장애인도 속수무책으로 사고를 당했는데 비슷한 일이 마트에서 일어난다면 시각장애인은 대피 시도조차 못 할 것"이라며 "기업이 법적 의무 여부를 따지기 전에 생명권 문제인 만큼 비장애인을 위한 안전조치에 장애인 특성에 맞는 안전조치를 추가로 갖춰야한다"고 말했다.

김훈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정책연구원은 "대형마트가 장애인들과 협의해 실현 가능한 것부터 하나씩 개선하며 장애인 배려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ahnoh05@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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