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화폐 실명전환하는 신한·기업은행 제외…'법인계좌'에 초점
[더팩트ㅣ이지선 기자] 금융위원회 금융정보분석원(FIU)과 금융감독원이 가상통화와 관련해 은행 현장을 살핀다. 당국은 가상화폐 거래소의 법인계좌 예치금이 많은 농협·국민·하나은행을 중심으로 자금세탁 방지 가이드라인을 잘 이행하고 있는지 들여다볼 전망이다.
FIU와 금융감독원은 19일부터 25일까지 가상통화 관련 은행권 현장 점검에 나선다. 지난 1월 30일부터 시행된 가상통화 관련 자금세탁방지 가이드라인 이행실태를 점검하고 수정 보완사항을 발굴하기 위해서다.
점검 대상은 농협·국민·하나은행이며 이 가운데 국민·하나은행은 실명확인 입출금계정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실명확인 입출금계정 서비스 제공 여부, 취급업소 거래 규모(보유계좌 수, 예치금 규모)등을 감안해 점검 대상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가상화폐 거래소 규모 1위인 업비트와 제휴를 맺은 기업은행과 빗썸·코빗과 제휴를 맺은 신한은행은 이번 점검 대상에서 제외됐다. 기업·신한은행이 가상화폐 거래소와 실명계좌 전환 제휴를 맺고 있어 고객 개인 계좌 보다는 거래소 법인의 예치금 계좌 점검에 중점을 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금융권에 따르면 가상통화 거래가 활발한 농협은 3400억 원 규모의 가상화폐 법인 계좌 예치금을 가지고 있다. 국민은행과 하나은행은 3010억 원, 1000억 원 수준의 법인 계좌 예금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는 이번 조사로 당국이 '벌집 계좌'를 세밀하게 들여다 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벌집계좌는 법인계좌 아래 여러 사람의 차명계좌를 개설한 것이다. 쉽게 말하면 '가상계좌 묶음'이다.
이는 최근 국내 가상화폐 거래소 코인네스트 대표와 임직원들이 고객 돈을 빼돌린 혐의로 검찰에 구속된 사건과 관련이 있다. 신규 가상거래 계좌 발급이 요원해지자 중소형 거래소는 법인계좌를 통해 개인 거래 장부를 관리하는 이른바 '벌집 계좌'로 거래소를 운영해왔다. 코인네스트는 이런 '벌집 계좌'에서 고객 자금 수백억 원을 대표와 임원들의 개인 계좌로 빼돌렸다.
점검 대상이 된 은행 관계자들도 이번 조사가 실명 거래 시스템 등 가상화폐 계좌 자체보다는 거래소 법인 계좌 적정성에 초점을 맞춘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이번 점검은 벌집 계좌 관련해서 문제가 생겼던 만큼 가상화폐 거래소 법인 계좌 상황을 들여다본다는 것 같다"며 "현재 예탁된 자금들은 초기에 운영자금을 맡긴 형태라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하나은행 측은 현재 확실한 가상화폐 거래소 법인이 계좌에 예치한 금액은 550억 원 정도고, 나머지는 가상화폐 거래소로 추정되는 업체의 계좌라고 설명했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현재 실명 계좌 등 가상화폐와 관련된 어떠한 거래도 하고 있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자세한 조사 보다는 시스템 점검 차원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고 말했다.
농협은행 측도 현재 실명 전환은 거래소 재량으로 하고 있는 상황이고 법인 계좌도 대규모 거래소와 제휴를 맺고 있어 특별한 사항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는 입장을 밝혔다.
업계에서는 금융당국의 이런 점검이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가상화폐 거래가 활발하지 않은 은행에 예치된 자금을 검사해 실제로 거래소들과 제휴를 맺은 은행들은 자체 점검을 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이번 조사는 최근에 불거진 몇 가상화폐 거래소들의 사기 사건으로 촉발된 것으로 보인다"며 "하지만 지난 1월에 모든 은행을 대상으로 계좌 등을 검사했는데 가상화폐 거래가 활발하지 않은 은행으로 현장점검 대상을 줄여 추가 점검하는 셈이라 크게 의미가 있을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현장점검 대상이 아닌 금융회사에 대해서도 가이드라인 준수 여부에 대한 자체점검을 실시하도록 요구했다"며 "중점사항은 기존 현장점검 결과 미흡 사항 개선·가이드라인 준수 여부와 일반법인·개인계좌를 통한 자금세탁방지 의무 이행의 적정성"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