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구의 상암토크] ‘땅콩 회항’과 ‘1 : 10 : 100의 법칙’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땅콩 회항 사건이 발생한 지 3년 4개월이 지나면서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경영 일선 복귀 여부가 관심을 끌고 있다. /더팩트 DB

갑질 논란 속 가려진 ‘서비스 완벽주의’ ...‘노블리스 오블리주’ 보여줘야

[더팩트ㅣ김민구 기자] 한진그룹의 최근 행보는 원초적 궁금증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해마다 연초에 발표한 임원인사가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3월이 돼도 한진그룹 인사가 나오지 않자 호사가들은 그 배경을 놓고 입방아를 찧기 시작했다. 일각에서는 2014년 12월 5일 이른바 ‘땅콩 회항’ 사건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조현아 전(前) 대한항공 부사장의 경영 복귀 설(說)을 조심스럽게 점치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 16일 발표된 한진그룹 임원인사에서 조현아 전 부사장 이름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다. 조 전 부사장의 경영 복귀에 따른 사회적 반발을 고려한 그룹의 고육지책(苦肉之策)이란 평가도 나왔다. 아무튼 죗값을 다 치르며 자숙의 시간을 가진 조 전 부사장의 경영 복귀는 한진그룹의 '뜨거운 감자'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사실 조 전 부사장이 3년 4개월 만에 다시 경영 일선에 돌아올 지 여부는 법적으로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는 2014년 12월 항공보안법상 항공기 항로변경 혐의 등으로 구속된 후 2017년 12월 대법원에서 집행유예를 확정했다. 이미 자신의 죗값(징역 10개월 집행유예 2년)을 충분히 치른 셈이다. 이제 그룹 이사회가 최종 결정만 하면 그의 경영 복귀는 문제 될 게 없다는 얘기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은 2017년 12월 대법원에서 집행유예를 확정지어 법적으로 경영일선 복귀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더팩트DB

조 전 부사장 논란을 지켜보면서 경영학 이론인 ‘1 : 10 : 100의 법칙’을 생각하게 됐다. 이른바 ‘페덱스 이론’으로도 알려진 이 법칙은 제품 불량이 생기면 즉시 고치는 데는 1의 원가(原價)가 든다. 그러나 제조업체가 책임 소재를 규명하거나 문책을 당할 것을 두려워해 제품 불량 사실을 숨기고 제품을 판매하면 10의 비용이 든다. 이 불량 제품이 고객 손에 들어가 손해 배상 청구로 이어지면 100의 비용이 든다는 것이다.

쉽게 설명하면 회사가 작은 실수를 그대로 내버려 뒀을 경우 그 비용이 적게는 10배, 많게는 100배까지 불어나는 큰 문제가 된다는 뜻이다.

'땅콩 회항'이라는 거대한 태풍 앞에 우리가 제대로 보지 못한 진실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당시 기내에 있던 사무장이 조 부사장의 거침없는 요구에 한 치 머뭇거림 없이 대처했다면 한국 사회를 뒤흔든 항공기 회항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오해하지 말길 바란다. 기자가 조 전 부사장 행태를 옹호할 생각은 손톱만큼도 없다. 그러나 당시 사무장은 항공기내 미흡한 서비스가 고객 불만으로 이어진다는 점을 충분히 고려했어야 했다. 기내 서비스에 문제가 생기면 조 전 부사장이 아닌 다른 승객들도 같은 불만을 털어놨을 게 불을 보듯 뻔하다.

기내 서비스에 대한 불만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면 기존 고객뿐 아니라 잠재고객까지 잃게 될 수도 있다. 가뜩이나 저비용항공사(LCC)들이 우후죽순처럼 등장한 가운데 유력 항공사의 서비스 품질이 떨어진다면 그 회사는 승객들로부터 외면받기 십상이다. 이는 갑질 논란에 그치지 않고 자칫 항공사 존망까지 위협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조 전 부사장도 우선순위를 정한 후 그 순서를 따르는 ‘사전편집식 의사결정(lexicographic decision)’을 제대로 하지 못한 실책을 범했다. 당시 상항에서 최우선 순위는 사무장을 항공기에서 강제로 내리게 하는 것이 아니었다. 기내 서비스 품질에 대한 문제점은 항공기가 목적지에 도착한 후 충분히 얘기할 수 있는 사안이었다.

국내 대기업 1~2세대들은 한국경제 초석을 닦은 주인공이다. 1세대가 불굴의 의지로 기업을 일으켜 2세대가 사업 영토를 넓혔다. 1~2세대가 피땀으로 일궈낸 기업은 해외 유학을 통해 얻은 국제적 감각과 선진 경영기업으로 무장한 3~4세대가 발전시켜야 하는 시대적 사명을 안고 있다.

물론 한국에서 대기업 자녀로 살아가기는 쉽지 않다. 대기업 자녀들은 유리 진열장 마네킹처럼 일거수일투족이 감시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잊을 만하면 불거지는 일부 대기업의 탈세 등 불법행위로 반(反)기업 정서가 팽배한 가운데 대기업 자녀들은 일탈이 알려지는 순간 파렴치한 집단으로 매도된다.

결국 이들 3~4세대들은 기업가 정신과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을 통해 사회에 대한 도덕적 책무를 실천하는 ‘노블리스 오블리주’ 정신을 발휘해야 한다. 반(反)기업정서에 대한 1차 책임이 일부 기업 총수에게 있는 만큼 신세대 대기업 자녀들은 이에 대한 해법을 마련해야 한다.

13~17세기 피렌체공화국에서 340여 년 동안 부(富)와 명예를 누리며 르네상스 문화를 꽃피운 명문 메디치(Medici)가문이 쇠락의 길을 걷게 된 원인이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하지 못한 오만한 후손 탓이라는 교훈을 다시 한 번 상기할 필요가 있다.

조 전 부사장에게 지난 3년여는 외로움과 굴욕으로 점철된 순간임에 틀림없다. 자신에게 쏟아지는 온갖 비난과 욕설에 세상에 대한 야속함을 감추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굴욕은 한국경제호(號)를 이끄는 기업인들의 도덕률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일깨우게 하는 계기로 삼기를 바란다.

조 전 부사장은 다시 경영 일선에 나서는 순간을 맞이하고 있다. 옛말에 ‘한 번 실수는 병가지상사(兵家之常事)’라고 했다. 인간은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같은 실수를 되풀이해서는 곤란하다.

그는 자신의 잘못을 깨끗이 인정하고 회사 구성원을 섬기며 솔선수범하는 '서번트 리더십'을 보여야 한다는 얘기다. 그가 진정으로 변화된 모습으로 국민들에게 다가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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