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프리즘] '애플빠'가 아이폰에 분노한 이유

애플 배터리 게이트를 둘러싼 국내 집단소송에 참여하기로 한 소비자는 국내 소비자를 무시하는 애플 태도가 개선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소송에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사진은 아이폰7 개통을 위해 서울 중구 명동 프리스비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소비자들. /남윤호 기자

'아이폰' 소송 6만5000명 참여…국내 최대 소송전 임박

[더팩트ㅣ이성락 기자] "소비자를 기만한 애플 태도에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애플이 구형 '아이폰' 성능을 고의로 떨어뜨린 이른바 '배터리 게이트'와 관련해 국내 집단소송에 참여한 조성훈(33) 씨 말이다. 그는 배터리 게이트에 대한 애플의 대응 방식에 "한마디로 배신감을 느꼈다"며 "'불통'으로 일관하는 애플 태도가 개선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번 소송에 참여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지난 15일 <더팩트> 취재진과 이야기를 나눈 조 씨는 자신을 '애플빠(애플 제품 충성 소비자)'라고 소개했다. 그는 '아이폰' '아이패드' '맥북' 등 애플 대표 제품을 다수 사용 중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소비자는 그 회사 가치를 믿고 제품을 선택한다"며 "저 역시도 애플에 대한 신뢰가 커 애플 제품을 구매했다"고 말문을 열었다.

믿음이 컸던 탓에 배신의 상처는 크고 쓰라렸다. 또한 조씨가 소송에 참여하기로 한 결정이 쉬운 것은 아니었다. 승소 가능성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문제를 제기하는 소비자가 있다는 점을 애플에 보여주기 위해 집단소송에 나선 것이다. 그렇게 조 씨는 시민단체 소비자주권시민회의(소비자주권)가 진행하는 1차 소송에 참여한 108명 소비자 중 한 명이 됐다.

조 씨와 같이 집단소송에 참여한 소비자는 국내에서만 6만5000여명에 달한다. 1·2차로 나눠 모집한 소비자주권 측에서 509명, 법무법인 한누리 측에서 6만4479명이 원고로 참여했다. 이는 국내 단일 사건 사상 최대 원고인단 규모다. 이달 말 또는 다음 달 초 한누리 측에서 소장을 제출하면 대규모 소송전(戰)의 막이 오른다. 이에 대해 애플코리아는 법적 책임이 없다며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이번 사태 발단은 구형 '아이폰' 전원이 갑자기 꺼지는 현상이었다. 애플이 운영체제(iOS)를 업데이트해 '꺼짐 현상'을 막았지만 이후 구동 속도가 느려졌다는 불만이 제기됐다. 애플 사용자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애플이 고의로 아이폰 성능을 떨어뜨렸다'는 문제가 제기되고 관련 증거들이 쏟아져 나오자 애플은 '고의 성능 저하' 사실을 인정했다. 다만 성능 저하를 목적으로 하지 않았고 배터리 효율을 유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고 해명하기에 급급했다.

해명의 후폭풍은 예상보다 거셌다. 소비자에게 전혀 알리지 않은 상태에서 소비자를 위해 성능 저하를 했다는 해명은 해명이 아니라 일방적 주장에 가깝기 때문이다. '배터리 게이트'와 관련된 제품은 '아이폰5'부터 '아이폰7플러스'까지 10여종에 달한다. 이 제품을 사용하는 소비자를 중심으로 비난이 쏟아졌다. 애플에 대한 비난 여론이 거세게 일자 집단소송 움직임이 확산되는 모습이다. 애플이 "다음에는 성능 저하를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게 하겠다"며 진화에 나섰지만 분노의 불꽃은 활활 타오르고 있다.

소비자주권시민회의 관계자들이 지난 8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애플의 아이폰 성능 고의 저하와 관련한 2차 집단손해배상 소송 소장을 접수하러 가고 있다. /김세정 인턴기자

조 씨는 이동통신사 KT가 국내에 처음 '아이폰'을 들여온 '아이폰3GS' 모델부터 애플 휴대전화를 사용했다. 그는 이후 '아이폰5S'를 거쳐 지금은 '아이폰6S'를 사용 중이다. 조 씨는 8년 넘게 '아이폰'을 사용했지만 불편한 점이 적지 않았다. 특히 품질이 저하되는 문제가 최대 골칫거리였다. 그는 처음엔 '그러려니' 했다. 배터리가 빨리 소모되고 성능이 급격히 저하되고 날씨가 추운 날 갑자기 전원이 꺼져도 그때마다 그러려니 했다고 한다.

조 씨는 "이번에는 정말 그러려니 할 수 없었다. 애플 서비스 정책을 보면 한국 소비자를 '호갱(호구 고객)'으로 여기는 것 같다"며 "이번에 애플이 소비자의 무서움을 제대로 느낀다면 서비스 정책이 개선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애플에 대한 애정은 남아 있다. 다만 애플의 태도 변화가 없다면 추후 비슷한 사태가 발생할 것이라고 조 씨는 목소리를 높인다. 그는 "애플 '태도'가 가장 문제다. 진정성 있는 사과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애플은 원래 '불통' 이미지가 강했지만 이번 사태를 계기로 또 한 번 느꼈다. 소비자 요구를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면 예전처럼 무조건 애플 제품을 선택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울에 사는 박 모(28) 씨도 국내 소비자를 대하는 애플 태도가 불만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애플이 다른 나라에 비해 한국에서 비싼 가격과 불성실한 사후 서비스(AS) 논란을 빚고 있다며 애플의 '한국 홀대론'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박 씨는 "애플 입장에서 볼 때 한국 시장이 크지 않으니까 국내 소비자를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며 "별다른 사과 없이 부인만 하고 있는 현재 애플코리아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박 씨 역시 이번 집단소송에 참여했다. '꺼짐 현상' '성능 저하' 등을 직접 경험하던 중 이번 사태가 터졌고 이후 성능 테스트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검사를 진행한 후 그 결과에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기사를 통해 '배터리 게이트' 소식을 접한 뒤 검사했더니 고작 1년 사용한 제품 성능이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걸 보고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밝혔다. 박 씨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제품은 '아이폰7'이다.

박 씨는 '배터리 게이트' 사태가 더욱 확산되더라도 애플이 기존 '불통' 방식을 그대로 유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아이폰' 판매량에도 큰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아직 충성도 높은 소비자가 너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만들었으니 너희는 그냥 써'라는 애플식 소비자 관리에 염증이 났다. 결국 박 씨는 소송 외에 소비자가 할 수 있는 가장 강한 표현 방식으로 불만을 드러내기로 했다. 그는 '아이폰7' 약정이 끝나는 데로 국내 삼성전자 등 다른 업체 제품을 구매하기로 결심했다.

rocky@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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