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이성로 기자] 국내 주류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소주와 맥주가 나란히 변화의 길을 걷고 있다. 지난해 국내 맥주는 저가 마케팅으로 무장한 수입 맥주 공세에 좀처럼 기를 펴지 못했는데 올해엔 관세마저 철폐되면서 안방을 빼앗길 위기에 처했다. 국내 시장에선 폭발적인 성장세를 기대하기 힘든 소주는 국내를 넘어 아시아 지역을 필두로 세계를 향해 뻗어 나가고 있다.
관세청 수출입 무역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맥주 연간 수입액은 전년(1억8155만 달러·약 1966억 원)보다 44.9% 상승한 2억6309만 달러(약 2811억 원)로 집계됐다. 맥주 수출액(1억1245만 달러·약 1217억 원)의 2배 수준이다. 맥주 무역적자 규모는 전년보다 66.1% 급증한 1억5065만 달러(약 1610억 원)다. 적자 규모가 1억 달러를 넘어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수입 맥주의 공세는 올해 더 거세질 전망이다. 맥주 수입에 대한 관세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지난달부터 한·미 FTA(자유무역협정)에 따라 미국 맥주에 대한 수입 관세가 사라졌으며, 오는 7월부터는 EU(유럽연합) 맥주에 대해서도 관세가 철폐될 예정이다. 업계에서는 주요 수입 맥주 브랜드들이 더 낮은 가격과 다양한 맛을 앞세워 공격적으로 국내 시장 공략에 나설 것으로 내다봤다.
국내 주류 업계는 수입 맥주의 관세 철폐와 함께 혼술·홈술 문화가 확산됨에 따라 보다 저렴한 수입 맥주를 선호하는 '대세'를 따르는 모양새다. 너나 할 것 없이 수입 맥주 라인업 확대에 열을 올리고 있다.
'싱하', '기린', '크로넨버그 1664블랑(이하 1664블랑)'을 수입 판매하고 있는 하이트진로는 지난해 11월 호주 맥주 판매 1위 기업인 '라이온'과 '포엑스 골드'의 정식 수입 계약을 체결하고 국내 판매에 들어간 데 이어 무술년 시작과 함께 덴마크 맥주 1위 기업인 칼스버그와 손을 잡았다.
칼스버그와 일명 '알코올 사이다'인 써머스비의 정식 수입 계약을 체결하고 지난 1월부터 본격 판매하고 있다. '써머스비'는 알코올 도수 4.5%로 사과 발효주 베이스에 탄산을 첨가한 제품이다. 타이틀은 '알코올 사이다'이지만, '과일향을 첨가한 맥주'라는 게 하이트진로 측의 설명이다. 60여 개국에서 판매되고 있는 '써머스비'는 최근 4년간 약 150%의 성장률을 보일 정도로 전 세계적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하이트진로 관계자는 "국내 제조사다 보니 수입 맥주에 적극적으로 치중하는 것은 사실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공격적으로 마케팅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 다만 시장 흐름은 무시하지 못한다. 계속해서 소비자 니즈를 지켜보고 있다"면서 "지난해 수입맥주에 대응하기 위해 필라이트를 출시해 가정용 시장을 겨냥하고 있다. 소비자 반응 역시 뜨거운 상황이다"고 설명했다.
롯데주류 역시 지난해 12월 '몰슨 쿠어스 인터내셔날'과 올 1월 '밀러 라이트'와 '밀러 제뉴인 드래프트' 국내 유통·판매 계약을 체결했다. 밀러를 시작으로 몰슨 쿠어스 인터내셔날 브랜드인 블루문, 쿠어스 라이트 등을 순차적으로 수입·판매할 예정이다.
롯데주류 관계자는 "몰슨 쿠어스 인터내셔날은 좋은 라인업을 가지고 있다. 롯데주류에선 밀러만 수입하는건 아니다. 점차적으로 '블루문'과 '쿠어스 라이트' 등도 수입·판매할 계획이다"고 밝혔다.
버드와이저, 스텔라 아르투아, 호가든, 산토리 등 19개 맥주를 수입하고 있는 오비맥주는 아직까지 수입 맥주 라인업 확대 계획은 없지만 시장 상황을 꾸준히 모니터링하겠다는 심산이다. 오비맥주 관계자는 "이미 많은 브랜드를 판매하고 있다. 추가 판매는 아직 결정된 것은 없다"면서 "다만, 소비자들이 새로운 것을 찾는다면 고려할 순 있다"고 밝혔다.
한 주류업계 관계자는 "최근 혼술족, 홈술족이 늘어나면서 가정채널에서 가성비를 앞세운 수입 맥주가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여러 종류의 맥주를 싼값에 구입할 수 있어 소비자들의 만족도가 높은 편이다. 올해 관세 철폐로 수입맥주의 공세는 더욱 심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맥주시장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한국을 대표하는 '소주'는 국내를 넘어 국외에서도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특히, 동남아시아에선 과일 소주의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국내 소주 업계 1위 하이트진로는 이미 지난 2016년부터 '소주 세계화'를 천명했다. 특히, 동남아시아에선 수주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하이트진로의 동남아시아 소주 판매는 2015년 490만 달러(약 53억 원)였으나 소주세계화를 선포한 2016년은 600만 달러(약 65억 원), 2017년은 880만 달러(약 95억 원)로 2015년 대비 180% 가까이 성장했다. 현지 식당에서 소주 한 병이 평균 6~7달러 선으로 동남아시장의 구매력을 감안할 때 놀라운 성장수치다.
하이트진로는 2015년 10월 태국에 자몽에이슬 수출을 시작한 하이트진로의 2016년 과일리큐르 제품 수출 물량은 217만병이었다. 지난해 1월에서 11월까지의 수출 물량은 전년 대비 두 배 가까이 늘어난 429만병을 기록했다. 지난해 '청포도에 이슬' 수출 물량은 175만병으로 지난해 20만병에 비해 8배가 넘는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황정호 하이트진로 해외사업본부장은 "동남아시장은 성장가능성이 매우 높은 시장이자 소주 세계화의 시작점"이라면서 "자두에이슬 등 현지특화 상품을 개발하는 등 다양한 현지화 전략을 통해 한국 주류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려 나갈 것이다"고 밝혔다.
순하리를 앞세운 롯데주류는 수출 전용 제품을 출시하는 등 소주 세계화에 앞장서고 있다. 롯데주류는 수출 전용 제품 '순하리 딸기'를 올 1월부터 해외에서 판매하고 있다. 출시 이전부터 초도 10만병 물량 판매처가 확보되는 등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초도 물량은 태국, 베트남, 싱가포르, 호주, 뉴질랜드 등 12개국 현지 대형 마트와 업소에서 판매됐다.
순하리는 소주 특유의 알코올 향에 익숙하지 않은 외국 소비자들이 비교적 음용하기 쉬운 과일맛 주류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지난 2015년 첫 수출 이후 2년 만에 수출 실적이 4배 이상 증가하는 등 해외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는 게 롯데주류 측의 설명이다.
롯데주류 관계자는 "동남아 지역에 불고 있는 한류 열풍으로 맥주와 소주 등 한국 술에 대한 호기심이 높은 편이다. 현재 국내에선 과일 소주가 정체기를 걷고 있지만, 동남아 쪽에선 소주 자체 아이템이 없고, 딸기 역시 귀한 과일이다 보니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이트진로 관계자는 "과일 소주가 한국에선 정체현상을 겪고 있지만, 동남아에선 선주문이 들어올 정도로 뜨거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동남아 지역 같은 경우는 소비 연령대도 어리고 소주에 대한 거부 반응도 덜해 매년 성장하고 있는 시장이다. 특히, 과일 소주에 대한 호감도가 높아 선주문이 들어올 정도다"고 밝혔다.
국내 소주 시장은 참이슬, 처음처럼을 비롯해 각종 지역 소주들이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주류 업체로선 국내에서 큰 성장폭을 기대하긴 어려운 실정이다. 국내 시장에서 먹을 수 있는 '파이'는 그리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소주 시장에서 독보적인 점유율을 보이고 있는 하이트진로와 롯데주류가 국내를 넘어 해외시장으로 눈을 돌리는 이유이다.
한 소주 업계 관계자는 "국내 주류 시장은 레드오션에 정체되어 있다. 국내 기업들끼리 막연한 출혈 경쟁을 하는 것보다 해외 시장을 공략해 모두가 같이 성장하는 것이 옳은 방향인 것 같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