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초점] '주범 or 피해자' 이재용 '엉킨 실타래' 누가 만들었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비롯한 삼성 전현직 임원 5명의 뇌물공여 사건 항소심이 27일 결심공판을 끝으로 내년 2월 5일 재판부의 선고만을 남겨두게 됐다. /서울고등법원=남용희 기자

[더팩트 | 서재근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비롯한 삼성 전현직 임원 5명의 뇌물공여 사건 항소심 결심재판이 27일 마무리되면서 지난 4월부터 시작된 박영수 특별검사팀과 삼성의 법정 다툼도 재판부의 선고만을 남겨두게 됐다.

'피고인 이재용'에 대한 뇌물죄 성립 여부를 두고 특검은 정경유착의 전형이라며 엄벌을 촉구하는 반면, 변호인단은 마지막까지 이 부회장은 '주범'이 아닌 '피해자'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이 부회장과 박근혜 전 대통령 간 단독면담이라는 하나의 사실을 둘러싼 양측의 주장이 첨예하게 엇갈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 삼성 "대통령 지시, '권고' 아닌 사실상 '명령'"

본건 재판에서 다뤄진 핵심 쟁점은 이 부회장이 '경영 승계'라는 경영현안 처리를 위해 박 전 대통령과 '비선 실세' 최순실 씨에게 부정한 청탁을 했는지 여부다. 특검은 '삼성→청와대→최순실'로 이어지는 청탁의 연결고리의 시발점이 '승계'라는 특정 현안에 대한 직무집행의 청탁에 있다고 본다.

그러나 삼성 측의 설명은 다르다. 우선 '대통령'이라는 존재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고려했을 때 국가 원수의 부탁은 곧 기업인에게 거절할 수 없는 사실상의 '명령'과 다름없다는 게 '대가합의 부존재'의 근거라는 견해다.

실제로 지난 3월 헌법재판소에서도 박 전 대통령의 탄핵심판 사건에서 "피청구인(박 전 대통령)의 요구는 단순한 의견 제사나 권고가 아닌 구속력 있는 행위라고 봐야 한다"며 "대통령의 요구를 받은 기업은 이를 따를 수밖에 없는 부담과 압박을 느꼈을 것이다"고 인정했다.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 제안을 거절한 일부 기업 관계자들의 증언 역시 이 같은 주장에 힘을 싣는다. 현대중공업과 함께 재단 출연금 지원을 거부한 것으로 알려진 신세계그룹의 모 부장은 "박 전 대통령이 직접 챙기면서 재단을 출범하도록 지시했다는 사실을 인지했다면, 거절하지 못했을 것이다"고 진술한 바 있다.

지난 3월 헌법재판소에서도 박 전 대통령의 탄핵심판 사건에서 대통령의 요구를 받은 기업은 이를 따를 수밖에 없는 부담과 압박을 느꼈을 것이다고 인정한 바 있다. /더팩트 DB

◆ 삼성 "승마·영재센터 시발점 '사익' 아닌 '공익'"

삼성의 승마지원과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이하 영재센터) 지원 성격에 대한 해석도 엇갈린다. 특검은 최 씨 개인의 사적 이익을 위한 경제적 지원에 목적이 있는 만큼 '뇌물죄'가 성립한다는 견해지만, 삼성은 두 가지 사안 모두 공익적인 목적으로 진행된 것이라고 반박한다.

승마지원의 경우 대한승마협회 회장사 지위에서 코어스포츠와 정식으로 용역계약을 체결해 이뤄진 것으로 '올림픽 출전을 위한 승마 선수들의 육성'에 목적이 있었고, 영제센터 지원은 대한빙상연맹 회장사 및 올림픽 후원사로서 '은퇴한 선수들의 지원 및 유망주 지원'이라는 공익적 목적으로 진행됐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문화·스포츠 융성을 강조한 박 전 대통령의 요청은 그 자체로 가장 강력한 동기로 직무집행과 무관한 다른 동기에 해당할 뿐만 아니라 삼성은 공익적인 측면을 고려해 지원을 결정한 만큼 '뇌물죄'가 성립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부회장 역시 본건 재판에서 "지난 2014년 9월 15일 1차 독대 당시 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삼성이 승마협회를 맡아, 올림픽을 대비해서 좋은 말도 사주고 해외 전지훈련도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았다"며 박 전 대통령의 요청을 사회공헌 활동의 일환으로 받아들였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 삼성,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혜택 있나?

특검은 1심 때부터 줄곧 삼성에서 사전에 '비선 실세'인 최 씨의 실체를 인지하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박 전 대통령과 총수가 독대한 다른 그룹과 달리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을 비롯한 각종 경제적 지원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 역시 박 전 대통령과 최 씨의 관계를 파악했기 때문이라는 논리다.

이런 논리는 특검이 항소심에서 변경한 공소장에도 고스란히 녹아 있다. 특검은 최근 공소장 변경 신청서를 제출, 1심에서 '단순뇌물죄'로 판단한 삼성의 승마지원에 관해 '제3자 뇌물죄'를 예비적으로 추가했다. 제3자뇌물죄는 공무원이 직무에 관해 '부정한 청탁'을 받고 제3자에게 뇌물을 공여했을 때 성립하는데 최 씨의 실체를 알고 있던 이 부회장이 2014년 9월 12일 청와대 안가에서 박 전 대통령을 만나 경영권 승계 등 현안에 관해 청탁하고 그 대가로 승마지원에 나섰다는 시나리오를 추가한 것이다.

그러나 재판 과정에서 박 전 대통령이 삼성에 직접 혜택을 준 것으로 볼 수 있는 직접적인 정황 근거는 나오지 않았다. 삼성중공업과 엔지니어링 합병은 1차 독대 이후 국민연금관리공단의 반대로 무산됐고, 2015년 6월 삼성서울병원발 중동호흡기중후군(메르스) 사태의 경우 박 대통령과 독대 이후 되레 감사원으로부터 감사지시를 받았고, 같은 해 7월 구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건은 2차 독대(2015년 7월 25일) 이전에 성사돼 시기적으로도 맞지 않았다.

박 전 대통령과 독대 이후 재단 출연금을 지원한 다른 기업과 삼성의 차이 역시 1심과 2심 모두에서 팽팽히 대립한 논쟁거리다. 삼성 측은 지난 1심 때부터 "특검은 오로지 삼성에 대해서만 독대를 했다는 사실만으로 '부정한 청탁'이 인정된다고 주장한다"며 공소내용의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는 견해를 유지해왔다.

실제로 재판 과정에서 증거로 제출된 대통령 말씀참고자료 등을 살펴보면, 다수 대기업에서 내부적으로 '청와대 건의사항'을 준비한 반면, 삼성의 경우 자료 어디에도 별도의 건의사항이 기재돼 있지 않았다.

이재용 부회장의 항소심 15차 재판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최순실 씨는 승마 특혜 의혹에 관해 마필과 마필운송차량의 소유권은 처음부터 삼성에 있었다며 특검이 제기한 말 세탁 의혹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더팩트 DB

◆ '최순실 or 삼성' 마필은 누구 겁니까?

1심 재판부는 지난 2015년 8월 삼성이 코어스포츠와 체결한 용역계약 및 마필 매매·교환 계약이 허위라고 판단, 이 부회장에게 '범죄수익 은닉' 혐의에 관해 유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최근 진행된 항소심 15차 재판에서 증인으로 법정에 나온 최 씨가 '승마 특혜' 의혹에 관해 "마필과 마필운송차량의 소유권은 처음부터 삼성에 있었다"며 특검이 제기한 '말 세탁' 의혹을 정면으로 반박하면서 '마필 소유권' 논란은 새 국면을 맞게 됐다.

삼성 측은 지난 6월에도 마필 소유권 문제와 관련해 마필 소유권 해제 확인서를 공개, 독일의 말 중개상 헬그스트란드와 말 '라우싱' 매매계약을 해제하고 삼성이 국내로 해당 말을 들여온 사실을 공개하며 특검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한 바 있다.

이 외에도 코어스포츠와 체결한 용역계약의 실체에 대한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특검은 지난 2015년 삼성이 코어스포츠와 맺은 용역계약은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부정한 대가합의 이행을 위한 수단으로 합법을 가장하기 위한 위장 계약이라는 주장이지만, 삼성 측은 정식 계약이라고 반박한다. 다시 말해 실체가 있다는 계약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2016년 9월부터 같은 해 10월 12일까지 코어스포츠가 비덱 하나은행을 통해 사용한 자금 내역을 살펴보면, 전체 운영자금 가운데 93%, 57만8000유로(승마 관련 고정적 지출 18만 유로, 승마 일반 경비 지출 39만8000유로)가 승마 지원을 목적으로 사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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