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증금제도 재도입 시 가격상승 불가피…소비자 반발·업계 혼선 '속 타는' 커피점업계
[더팩트│을지로=안옥희 기자] "일회용 컵 보증금 제도가 다시 시행되면 가격이 또 오를 텐데 앞으로 카페 이용이 부담스러워지겠죠."(직장인 이 모 씨)
커피 인구가 늘면서 커피전문점이 해마다 증가하는 가운데 일회용 컵 사용량이 급증하면서 자원낭비와 환경오염 문제가 대두하고 있다. 버려진 일회용 컵 쓰레기로 인해 지하철역과 거리 곳곳이 몸살을 앓고 있다.
일회용 컵은 하루 평균 약 7000만 개가 사용되고 있으며, 연간 사용규모는 약 260억 개에 달한다. 자원낭비와 환경오염 우려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면서 정부는 커피전문점에서의 테이크아웃을 포함해 일회용 컵에 담긴 음료를 살 때 50~100원을 더 냈다가 컵을 가져가면 돌려받는 보증금 제도의 부활안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환경부는 2008년 폐지된 '일회용 컵 보증금 제도' 부활안을 담은 일회용품 관리 종합대책을 이달 중 마련할 방침이다.
지난 13일 <더팩트>가 서울 중구 을지로 일대 커피전문점들을 취재한 결과 매장 안 고객 대다수가 일회용 컵을 사용하고 있었다. 이 중 절반은 직원이 주문을 받으면서 매장 이용 고객에게 머그잔 사용 여부를 확인했다. 나머지 절반은 따로 묻지 않고 일회용 컵에 음료를 담았다. 고객 상당수는 매장에 머물면서도 머그잔보다 일회용 컵 사용을 더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했다.
이날 A 커피전문점에서 만난 직장인 김 모 씨는 "평소 거래처 사람과 카페를 자주 오는데 대화가 끝난 뒤 남은 커피를 다시 들고 가는 경우가 많아 머그잔보다는 일회용 컵을 선호한다"면서 "위생적으로도 더 안심이 된다"고 말했다.
근처 B 커피전문점은 텀블러, 개인잔 등 다회용컵을 가져가면 음료 가격에서 300원을 할인해주고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정 모 씨는 "텀블러를 자주 사용하는데 가격 할인 혜택이 주어져서 좋다"며 "일회용컵은 음료 온도 유지에 취약한데 텀블러는 일정시간 온도 유지가 가능하고 무엇보다 환경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보증금 제도 시행에 대해선 소비자 반응이 엇갈렸다. 무엇보다 가격 인상을 우려하는 입장이 주를 이뤘다. 직장인 이 모 씨는 "지금 4000원이 넘는 커피값도 부담되는데 일회용 컵 보증금제가 시행되면 가격이 또 오를 것이다"며 "100원을 돌려받기 위해 다 쓴 컵을 다시 돌려주는 것도 번거롭다"고 말했다.
반면 대학생 유 모 씨는 "환경을 위하는 취지에는 공감하고 반납 및 환불 절차를 간소화한다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날 만난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을 운영하는 박 모 씨는 보증금제 시행으로 가격이 올라 손님이 떨어질까 고민이라고 토로했다. 박 씨는 "편의점들이 비닐봉지를 20원에 판매하고 있는데 단돈 20원 때문에 단골이 떠난다고 한다. 보증금제가 시행되면 손님들이 비닐봉지 값 20원보다 더 높은 100원, 200원 정도를 더 내고 커피를 사야한다. 물론 다시 돌려받을 수 있지만, 손님들이 반발할까봐 걱정이다"고 말했다.
일회용 컵 보증금제가 폐지 10년 만에 부활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업계는 '벙어리 냉가슴'을 앓고 있다. 가격인상에 따른 소비자 혼란은 물론이고 수많은 업체들이 보증금제 이행에 맞게 포스시스템을 바꿔야하므로 부가 비용 발생 등 각종 혼란이 빚어질 것이란 관측에서다. 하지만 정부 정책인 만큼 결정 되는대로 따를 수밖에 없어 업계가 전전긍긍하고 있다.
제도 도입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본격 도입에 앞서 업계와의 충분한 의견 수렴 과정이 필요하다는 게 커피점업계의 중론이다.
업계 관계자는 "일회용 컵 보증금제 법제화 내용이 아직 구체적으로 확정되진 않았으나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많은 게 사실이다"며 "고객·업체·시스템의 혼선을 최소화하기 위한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거친 후 시행돼야한다"고 강조했다.
일회용 컵 보증금제는 도입 당시 패스트푸드 업체, 커피전문점 등과의 자발적 협약을 통해 시행됐으나 법적 근거가 없어 실효성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2002년 제도 도입 때도 반납률이 30% 수준에 그쳤고 미환불 보증금 관리 등 보증금 사용 내용이 불투명하다는 지적에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면서 도입 6년 만인 2008년 폐지된 바 있다.
하지만 보증금 제도 폐지 이후 일회용컵 사용량이 급증하면서 정부가 재도입을 결정하게 됐다.
환경부가 스타벅스, 커피빈 등 주요 커피전문점 12곳과 패스트푸드점 5곳 등 국내 주요 프랜차이즈 업체 17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일회용 컵 연간 사용량은 한해 7억2000만 개(2015년 기준)에 달했다. 특히 일회용 컵 보증금제 폐지 직후인 2009년에는 4억3246만 개였던 사용량이 6년 새 66.3%(2억 8754만 개) 폭증했다.
정부는 업계와 시민단체 의견을 수렴해 연말까지 일회용컵 보증금제를 포함해 일회용품 사용 감량과 재활용 촉진을 위한 종합대책을 마련할 예정이다. 보증금은 지난번과 비슷한 50~100원 수준이 될 전망이다. 정부는 보증금제 효과 높이기 위한 대안으로 일회용컵 재질 단일화, '생산자책임 재활용제도'(EPR)를 일회용컵으로 확대 하는 등의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일각에선 보증금제가 정책과 엇박자를 낼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보증금제가 도입되면 각 업체가 동전으로 환불하게 되는데 금융당국이 현재 추진 중인 '동전 없는 사회' 정책과 상충된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다른 사람이 버린 컵을 수거해 이익을 편취하는 부정반환 사례 등 제도 도입에 따른 부작용도 충분히 살펴봐야한다"며 "규제보다는 할인 혜택 제공 등으로 일회용컵 사용 줄이기를 장려하는 방향이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