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서민지 기자] 정부가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에 대한 투기를 막기 위해 칼을 빼들었다. 이번 규제안이 광풍 현상을 보이고 있는 가상화폐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정부는 1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홍남기 국무조정실장 주재로 가상통화 관련 관계부처 긴급회의를 열었다. 이날 회의에서 가상통화 투기과열과 이를 이용한 범죄행위를 막기 위한 대책을 논의했다.
우선 신규 투자자의 무분별한 진입을 막기 위해 이용자 본인 확인 의무가 강화되고, 본인 계좌에서만 입출금이 이뤄지도록 관리할 방침이다. 고교생 이하 미성년자와 비거주자(외국인)의 경우 계좌개설과 거래가 금지된다.
금융기관은 가상통화를 보유하거나 매입할 수 없도록 금지했다. 지분 투자 또한 불가능하다. 투자상품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매출액 100억 원 이상 또는 일평균 방문자 수 100만 명 이상인 가상화폐 거래소는 내년부터 정부에게 정보보호관리체계(ISMS) 인증을 받아야 한다.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가상화폐 관련 범죄에 대한 단속과 처벌은 한층 강화하기로 했다.
정부는 조속한 시일 내에 입법 조치를 거쳐 투자자보호와 거래투명성 확보 등을 의무화하고, 이를 갖추지 못할 경우 가상화폐 거래를 금지할 계획이다. 아울러 가상통화 투자수익에 대한 과세 여부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의 규제 강화 흐름에 맞게 금융권 또한 움직이고 있다. 우리은행과 산업은행이 올해 안에 가상화폐 거래소 가상계좌를 폐쇄하기로 했다. 신한은행과 기업은행은 현재 운영 중인 가상계좌는 그대로 운영하되 추가로 늘리지 않을 계획이다.
국민은행의 경우 지난 7월 빗썸에서 고객 정보 해킹 사고가 발생한 뒤 가상계좌 제공을 중단했다. 하나은행은 처음부터 거래소와 가상계좌 제공 계약을 맺지 않았다.
이번 가상통화 규제안이 강력함에도 예상보다는 수위가 낮다는 평가가 나온다. 당초 정부가 가상화폐에 대해 선물거래 도입은 물론 거래 자체를 전면 금지하는 방안까지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최종구 금융위원장 또한 "비트코인 거래를 금융거래로 인식하지 않는다"며 "금융거래로 인정할 때 여러 문제로 파생될 수 있어 거래소 인가나 선물거래 도입 등을 추진하지 않을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실제 이날 비트코인 시장은 예상보다 잠잠한 모습을 보였다. 국내 가상화폐 거래소 빗썸에 따르면 이날 1900만 원대에서 거래되던 비트코인은 정부가 긴급회의를 소집했다는 소식에 1700만 원선까지 떨어지기도 했지만, 막상 규제안이 발표되자 1800만 원대를 회복했다.
정부 규제안에 따른 불안감은 선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 8일 2499만 원대까지 오르며 사상 최고가를 찍었던 비트코인 시세는 10일 1391만 원까지 떨어지며 이틀 만에 40% 급락했다. 미국 시카고옵션거래소(CBOE) 선물거래 개시를 앞둔 경계감과 우리나라 정부의 규제 도입에 대한 우려가 맞물렸기 때문이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규제안 발표에 따른 변동폭이 생각보다 크진 않지만, 추후 규제 적용이 본격화되면서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며 "흐름을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현재 비트코인 광풍이 불면서 변동성이 커지자 규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이어지고 있다. 가상화폐는 주식시장과 달리 상·하한 가격 제한폭이 없고, 24시간 전 세계에서 거래되기 때문에 안전장치가 없어 위험성이 크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특히 최근 가격이 급등락하면서 투자자들이 피해를 보기도 했다.
빗썸은 최근 가상화폐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암호화폐는 정부가 보증하는 법정화폐가 아니다"라며 "규제나 시장 환경 변화에 따라 암호화폐 가치에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공지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