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서민지 기자] '수저 계급론'은 2015년쯤부터 나오기 시작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부모의 직업·경제력 등 이른바 '빽'이 좋은 이들은 '금수저'로, 아무런 '빽'이 없는 이들은 '흙수저'로 불리기 시작했다. '특혜 채용'은 관행처럼 여겨졌고, 눈에 보이지 않는 '계급'은 여전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수저 계급론'은 세간에서 급격히 공감대를 형성하며 확산됐다.
최근 우리은행이 특혜 채용을 했다는 의혹을 받으면서 금융업계 안팎이 시끄럽다. 우리은행은 2016년 신입행원 공채에서 국가정보원, 금융감독원, 전·현직 우리은행 임직원, 주요 고객 등의 부탁을 받고 16여 명을 특혜 채용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당시 지원자들의 이름, 성별, 학교 등은 물론 추천인과 이들의 배경, 이른바 '빽'이 명시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특히 '고용절벽' 속 채용비리가 알려지면서 취업준비생들의 박탈감과 상실감은 배가 됐다. "빽 없는 흙수저는 서러워서 살겠나"라며 본인의 처지를 비관하는 이들까지 있었으니 말이다.
논란이 커지자 우리은행은 지난달 27일 채용비리 의혹과 관련된 내부 인사 3명을 직위 해제했고, 이광구 행장은 지난 2일 도의적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 지난 7일에는 검찰이 우리은행을 압수수색하기도 했다.
그런데 우리은행의 '특혜채용' 논란이 때아닌 '계파 갈등'으로 번지는 모양새다. 채용비리가 불거진 데는 한일은행과 상업은행 계파 간 갈등이 자리 잡고 있다는 추측이 나오면서다. 사연인즉슨, 상업은행 출신인 이광구 행장 및 내부 인사를 압박하기 위해 한일은행 출신이 채용비리 관련 문건을 국회 측에 넘겼다는 것이다.
우리은행은 지난 1999년 상업은행과 한일은행이 합병하면서 출범했다. 첫 통합 은행(옛 한빛은행) 수장은 상업은행 출신인 김진만 행장이 맡았고, 이후 2008년까지 이덕훈·황영기·박해춘 등 외부인사가 임명됐다. 이후 한일은행 출신인 이종휘 행장(2008~2011년)을 시작으로 내부 인사가 행장을 맡아왔다.
하지만 이순우 행장(2011~2014년)과 이광구 행장(2014년~) 등 연이어 상업은행 출신이 선임되면서 한일·상업은행 간 묘한 긴장감이 형성됐다. 특히 이 행장이 올해 초 연임하자 한일은행 출신의 불만이 커졌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관측이다. 한일·상업은행 출신이 행장을 번갈아 맡고, 임원도 양쪽을 5대5로 비슷한 비중을 유지하는 게 '불문율'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실제 특혜채용 의혹으로 직위 해제된 남기명 전 국내 부문 부문장(수석 부행장)과 이대진 전 검사실장 모두 상업은행 출신이다. 특히 남 전 부행장은 유력한 차기 행장 후보로 떠올랐던 인물이기도 하다. 이 전 실장의 경우 지난 2012년 이 행장이 개인고객 부행장으로 있을 당시 개인영업전략부장을 맡아 이 행장과 가까운 사이로 알려져 있다. 또한 현재 행장 대행을 맡고 있는 손태승 부행장이 한일은행 출신이라는 점 또한 계파 갈등을 감안한 조치라는 해석이 많다.
우리은행은 갑작스러운 행장 사임으로 인해 침체될 수 있는 조직을 추스르고, 고객 신뢰회복을 위해 내부 혁신 태스크포스팀(TFT)을 운영하기로 했다. 인사시스템 혁신, 기업문화 혁신, 고객중심의 윤리경영 등이 TFT 구성의 주요 골자다. 제대로 된 인사시스템을 마련해 특혜채용을 막는 것은 당연하다.
여기에 채용비리 내막에 담긴 파벌 다툼 또한 뿌리를 뽑아야 한다. 우리은행 전체 직원 80%가 합병 이후 들어왔지만, 상업·한일은행 출신인 20%의 자존심 경쟁이 조직을 혼란에 빠트릴 수 있기 때문이다. 더 이상 행장을 두고 상업·한일은행 출신이라는 '뿌리'가 영향을 줘서는 안 되며, '그들만의 경쟁'에서 벗어나야 조직도 정상화 될 수 있다.
이번에 발생한 우리은행의 '특혜 채용', '계파 갈등' 의혹은 취업준비생은 물론 조직 내부에도 많은 상처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