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프리즘] '기계는 돌아간다' 한국타이어 공장은 현대판 '사계'?

지난 22일 한국타이어 공장에서 근로자가 컨베이어 벨트에 몸이 끼어 목숨을 잃는 등 사망 사고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타이어 노조, 산재협의회는 보다 엄정한 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더팩트 DB

[더팩트ㅣ이성로 기자] '빨간 꽃 노란 꽃 꽃밭 가득 피어도, 하얀나비 꽃나비 담장위에 날아도, 따스한 봄바람이 불고 또 불어도,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지난 1989년 '노래를 찾는 사람들'이 처음 불렀고, 2001년 혼성그룹 '거북이'가 리메이크한 노래 '사계'의 가사 일부분이다. 1970~80년대 고속 경제성장을 이루던 시기에 공장 근로자들의 고된 삶을 이야기한 노래다. 열악한 환경에서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노동 착취를 당하는 모습을 그리며 산업혁명과 자본주의 사회의 어두운 면을 고발했다.

세계 경제 강국으로 성장한 한국이지만 아직도 노동자 인권은 물론 기본적인 안전 시설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곳에서 가족의 생계를 위해 목숨을 담보로 컨베이어 벨트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바로 타이어업계 국내 1위, 세계 7위라는 타이틀을 짊어지고 있는 한국타이어 공장 근로자들의 이야기다.

지난 22일 오후 7시 15분께 한국타이어 금산공장 정련공정에서 근무하고 있는 최 모 씨가 작업 도중 컨베이어 벨트에 몸이 끼어 현장에서 목숨을 잃었다. 한국타이어 노조 관계자에 따르면 최 씨는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끊어진 고무 원단을 끄집어내는 과정에서 사고를 당했다.

본래 기계 자동화로 이루어지는 작업이지만, 장치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아 사람이 직접 수동으로 작업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사고 당시 위험을 감지하면 작동을 멈추는 자동 안전장치는 작동하지 않았고, 수동으로 멈춰야 하는 로프 역시 작업자가 도달할 수 없는 곳에 위치했다. 더군다나 2인 1조로 이루어지는 작업이지만, 계속된 인력 구조조정으로 혼자서 두 사람 몫을 하다 참변을 당했다는 게 한국타이어 노조 관계자와 전직 근로자의 이야기다.

사고 이후 대전지방고용노동청(이하 노동청)은 해당 사업장에 대해 전면 작업중지를 명령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제대로 실행되지 않았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과거 한국타이어 공장에서 근무했던 A 씨는 "대전공장, 금산공장 모두 위험 자동센서는 작동하지 않는다. 기계가 시도 때도 없이 멈추면 생산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수동으로 작동해야 하는 안전장치 역시 작업자의 손에 닿을 수 없는 곳에 있다. 전쟁이 나도 기계가 돌아가는 곳이 바로 한국타이어 공장이다"고 말한다.

한국타이어와 대전고용노동청은 지난 22일 발생한 금산공장 사망 사고와 관련해 사업장 작업 중지 명령을 내리고 경찰,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등과 함께 사고 원인을 밝히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밝혔지만, 노조에 따르면 해당 사업장 곳곳에선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더팩트 DB

◆ 한국타이어·노동청, 무늬만 '면밀 조사?'

한국타이어와 노동청은 지난 22일 발생한 금산공장 사망 사고와 관련해 해당 사업장 작업 중지 명령을 내리고, 경찰,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등과 함께 사고 원인을 밝히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밝혔다.

오복수 대전지방고용노동청장은 "최대한 신속하고 면밀하게 사고 조사를 진행하고,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실이 확인될 경우 사업주를 엄중히 처벌하겠다"고 밝혔다. 노동청 측은 '안전보건공단, 경찰 등과 함께 정확한 사고원인을 밝히는 한편, 현장조사가 마무리되면 사업장 관련자를 소환해 관련 법 위반 여부도 조사할 예정이다'며 엄정 조사를 약속한 상황이다.

한국타이어 측 역시 '현재 정부 기관과 함께 사고 경위를 집중적으로 조사하고 있다. 아직 어떠한 것도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아 이번 사고에 대해 구체적인 것은 말하기 곤란한 상황이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직에서 근무하는 한국타이어 근로자는 '허울뿐인 조사'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 노조 관계자는 "사고 이후 작업중지 명령이 있었다. 현재 사고 조사도 진행 중이다. 하지만 회사에선 군데군데 작업을 종용하고 있다. 실제로 몇몇 근로자들은 작업을 하기도 했다"면서 "노동청에 항의를 하면 작업은 중단되지만, 다시 조용해지면 작업 명령이 떨어지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또 다른 근로자 역시 "사고 이후 노동청에서 전면 작업중지 명령이 떨어졌지만,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다"고 폭로했다.

노동자들의 이런 주장에 한국타이어 측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현재 금산공장은 철저히 작업이 중단된 상황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타이어 관계자는 "사실무근이다. 공장은 전부 멈춰있다"고 강조했다.

노동청 관계자는 "모든 사업장에 산업안전보건법이 위반되는지 자세히 조사하고 있다"며 말을 아꼈다.

노조 관계자에 따르면 유족은 제대로 된 진상규명을 해주길 호소하고 있다고 한다. 노조 관계자는 "유족은 어떻게, 왜 죽었는지 등 제대로 된 조사가 이루어지길 바라고 있다"면서 "사측은 재해자의 잘못으로 몰아가고 있는 분위기다"고 설명했다.

한국타이어 산재협의회는 26일 광화문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금산공장 사고 이전부터 협착 사고를 비롯해 여러 안전사고가 발생했다며 조양래 회장, 조현범 사장, 서승화 대표이사를 즉각 구속 수사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타이어 산재협의회 제공

◆ 계속된 압사사고…한국타이어 "확인 조사 중"

한국타이어 노조, 산재협의회 등은 지난 22일 발생한 최 모 씨의 사건 이전에도 많은 압사 재해가 발생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산재협의회는 지난 26일 광화문 광장에서 종교단체 예수살기, 정의평과기독연대, 촛불교회, 평화누리, 향린교회, 희년사회 관계자들과 함께 한국타이어 노동탄압 및 집단사망 사태 해결을 위한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타이어 노동자 집단사망 사건과 고 최홍원 흡착사망사건의 책임자인 '조양래 회장, 조현범 사장, 서승화 대표이사를 즉각 구속 수사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양장훈 전국금속노조 한국타이어 지회장은 "공장 환경은 매우 열악하다. 비상 안전 시스템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협착 사고가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다. 또한, 인력이 부족해 두 명이 해야 되는 작업은 한 명이 해야 하는 경우도 다반사다"라고 밝혔다.

이어 "또한, 작업장 내에는 유해물질이 가득 차 있다. 공장 내부엔 기본적인 시설만 갖춰져 있을 뿐이다. 창문을 열어 환기 시키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다. 지난 20년 동안 계속해서 노동자들이 죽어나고 있지만, 노동청이나 회사에선 제대로 된 개선 사항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타이어 산재협의회가 종교단체와 함께 지난 26일 광화문 광장에서 한국타이어 노동탄압 및 집단사망 사태 해결을 위한 공동행동 기자회견을 열었다. /광화문=이성로 기자

끊임없이 이어진 한국타이어 근로자 사망 사고에 업계 관계자 역시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다.

한 타이어업계 관계자는 "최근 이슈가 계속되고 있는데 공장 환경 개선을 위해 수백억 원을 들여 개선했다고 알고 있다. 한국타이어 내부 사정을 정확히 알진 못하지만, 투자를 많이 한 상황에서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것은 분명 일반적인 상황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러면서 "보통 공장 내 기계들은 자동 안전 센서가 있어 위험이 감지되면 자동으로 중지 되는데…"라며 최근 일어난 최 씨 사망 사고에 대해서 의문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 현직 근로자가 말하는 '끔찍한' 한국타이어 공장 실태

지난 1992년부터 대전공장에서 근무하고 있는 한 근로자는 <더팩트> 취재진에 기계에 손이 끼는 두 번의 사고를 겪었고, 한 번은 절단으로 이어져 봉합 수술까지 받았다고 했다. 사고 원인은 모두 낙후된 설비 탓이었다고 주장했다. 자동화로 이루어져야 하는 작업을 모두 수작업으로 하던 도중 참변을 당했고, 안전 센서 역시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타이어 공장에선 본인 스스로 안전사고를 철저하게 대비해야 한다. 기계는 낙후돼 안전장치는 없다고 봐야 한다. 사측에선 생산량 늘리기에 급급해 근로자의 안전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타이어는 공장 생산량을 최대화하기 위해 기계에 있는 안전 센서를 수동으로 바꾸고 심지어 위치 역시 근로자 손에 닿지 못하는 곳으로 개조했다고 한국타이어 산재협의회, 노조 관계자 등이 말했다. /한국타이어 산재협의회 제공

지난 22일 사망한 최 씨의 사고에 대해서도 열악한 근무 환경이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최 씨가 약 한 달 전쯤 팀을 옮기고 사고를 당했다고 들었다. 보통 인사 발령을 받으면 3개월간 교육이 이루어진 뒤 작업이 능숙해지면 현장에 투입된다. 당시 최 씨는 식사 교대 시간에 혼자서 작업을 하다 사고를 당했는데 일반적으로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고 흥분된 어조로 말했다.

그는 "지난 2008년 노동자 집단사망 사건과 관련해 대대적인 역학조사가 이루어졌고, 사측에선 큰돈을 들여 작업환경을 개선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제대로 바뀌었다고 느끼는 것이 전혀 없다. 사측에서 홍보한 '개선'이 피부로 와닿는 게 전무한 실정이었다"며 "안전장치 없는 기계는 여전하고, 공장 내부에 가득한 분진, 흄 등도 그대로다. 근로자는 일반 마스크 하나에 의지해야 하는 실정이다"고 토로했다.

그는 과거 끔찍한 경험을 했다며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기계에 머리가 압착돼 사망하는 사고를 목격했다. 사람이 목숨을 잃는 큰 사고였지만, 작업 중지는커녕 사고 직후에도 기계는 멈추지 않고 계속 돌아가고 있었다."

sungro51@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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