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서재근 기자] 삼성전자의 '리더십 공백'이 '우려'를 넘어 시급한 현안으로 급부상했다.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태 여파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최지성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부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데 이어 13일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대표이사)까지 자진 사퇴를 선언하면서 사실상 경영 정점에 선 컨트롤타워가 공실 사태에 빠졌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와병 중인 것을 고려하면, 회사 창립 이후 '회장'과 '부회장' 모두가 부재에 빠지는 사상 초유의 사태에 직면한 까닭에 삼성 안팎에서는 예년보다 한 템포 빠른 조기 인사 단행 가능성을 점치는 목소리가 나온다.
13일 권 부회장은 이날 오전 "사퇴는 이미 오래전부터 고민해 왔던 것으로 더는 미룰 수 없다고 판단했다"며 "급격하게 변하고 있는 IT 산업의 속성을 생각해 볼 때 지금이 바로 후배 경영진이 나서 비상한 각오로 경영을 쇄신해 새 출발할 때라고 판단했다"며 돌연 자진 사퇴를 선언했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이 부회장의 항소심 첫 재판이 치러진 지 하루만이자 삼성전자가 올 3분기 잠정 실적으로 역대 최대치를 발표한 날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권 부회장의 용퇴 선언에 업계 안팎의 관심이 쏠리는 데는 그룹 경영 정점이 모두 지워진 삼성의 현주소 때문이다. 특히, 권 부회장은 삼성전자 호실적의 일등공신인 부품(DS)부문에서 수장이자 이 부회장과 최 전 부회장을 대신해 그룹의 '얼굴'로써 총수 대행 역할을 맡고 있다. 실제로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8월 취임 후 처음으로 마련한 '주요 기업인과의 호프미팅'에서도 삼성의 대표로 참석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 주인공은 권 부회장이었다.
이사회 이사와 의장직 역시 임기가 끝나는 2018년 3월까지는 회사 등기이사 등을 유지한다는 게 권 회장의 의중이지만, 어떤식으로든 이른 시일 내 후속 인사 조치에 나설 것이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권 부회장과 더불어 '삼성전자 빅3'로 불리는 윤부근 삼성전자 소비자가전(CE)부문 사장, 신종균 삼성전자 IT·모바일(IM)부문 사장 가운데 한 명이 공석을 메울 가능성이다.
각자 부문별로 성격의 차이가 크지만, 권 부회장이 국정농단 사태 이후 사실상 '총수 대행' 역할을 해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각 부문에서 '리더'로서의 대외활동 경험이 풍부한 윤 사장과 신 사장을 유력 후임자로 낙점할 가능성도 충분하다. DS부문장의 공석은 김기남 DS부문 반도체사업총괄 사장이 권 부회장에게 바통을 이어받을 것이라는 데 무게가 실린다.
'새로운 인물'을 후임자로 점치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재용 체제 전환 이후 '글로벌 스탠다드'를 강조하며 지배구조와 기업문화 전반을 혁신하겠다는 움직임을 보였던 만큼 이번 권 부회장의 자진 사퇴를 변곡점으로 삼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지난 4월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거버넌스위원회를 신설하고 기존 CSR과 더불어 '주주가치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경영사항 심의'를 핵심 역할로 규정한 바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삼성전자는 그간 글로벌 기업으로서의 외형을 갖췄지만, 기업지배구조 측면에서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을 피하지 못했다"면서 "그러나 이 부회장 체제 전환 이후 수평적 조직문화, 주주친화정책 추진 등 변화에 속도를 낸 만큼 전자 업계에 정통한 외국인 CEO 출신 또는 여성 경영인이 후임자 후보에 오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권 부회장의 자진 사퇴 선언이 공론화하면서 업계에서는 삼성전자 때 이른 사장단 인사 시나리오도 고개를 들고 있다. 삼성그룹은 지난 2015년 12월 사장단 인사와 임원인사를 시행한 이후 2년여 동안 사장단 인사를 치르지 못하고 있다. 지난 5월 삼성전자가 IM과 CE 등 세트(완제품) 부문에서 부사장 승진자 6명, 전무 승진자와 상무 승진의 경우 각각 11명, 40명씩 인사를 단행한 바 있지만, 예년과 비교해 절반 수준에 그치면서 내부에서 인사 적체에 대한 볼멘소리도 적지 않다는 얘기도 흘러나왔다.
때문에 업계에서는 이번 권 부회장의 사퇴를 계기로 삼성전자에서 예년보다 시기를 앞당겨 각 사업파트별로 대대적인 사장단 인사가 치러질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한 삼성전자 관계자는 "권 부회장이 사퇴를 선언한 만큼 경영 공백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후임 인사를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며 "예년보다 시기적으로 사장단 인사 시기가 조금 빨라질 수도 있겠지만, 그 시점이 언제가 될지, 그 규모가 어떻게될지는 현재로서 알 수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