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황원영 기자] 새 정부의 골목상권 보호 정책으로 복합쇼핑몰 출점에 잇따라 제동이 걸리면서 대형 유통기업은 냉가슴만 앓는 모양새다. 거기다 복합쇼핑몰 출점 무산 소식에, 기대했던 지역 주민들마저 정부의 규제를 이해할 수 없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최근 신세계는 경기 부천시 상동 신세계백화점 건립사업이 중소상인단체의 반발로 2년여 만에 백지화 됐다. 이는 새 정부가 골목상권 보호를 강조하고 나선 것과 궤를 같이한다는 분석이다. 유통업계는 이번 신세계의 백화점 건립 무산이 '골목상권 보호' 명목으로 연이어 일어날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 신세계백화점 부천점 건립사업, 중소상인단체 반발로 백지화
당초 신세계는 부천 상동 영상문화산업단지 7만6034㎡에 복합쇼핑몰을 건립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부천시와 협의해왔다. 하지만 부평·계양 등 인천 지역 중소상인들과 인천시가 "상권이 겹치는 데다 취급품목도 같다"고 반발하면서 차질을 빚게됐다.
신세계는 복합쇼핑몰을 백화점으로 축소 수정하고 부지 매매 계약을 5차례나 연기하는 등 '상생'에 나섰지만, 일부 정치권에서도 사업 철회를 지지하는 목소리를 내자 결국 백기를 들었다.
유통 업계는 신세계가 출점을 포기한 데 대해 우려의 시선을 보낸다. 골목상권 보호를 위한 규제가 강화되고 있는 가운데 향후 신세계 부천과 같은 사례가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유통산업발전법에 따라 매장면적 3000㎡ 이상인 대규모 점포는 주변 상권에 주는 영향과 상생방안 등을 지방자치단체장에 제출해야 한다. 정부가 골목상권 보호를 중점 과제로 두고 있는 만큼 대규모 점포 출점이 더욱 어려워 질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게다가 정부는 현재 대형 마트에 시행하는 대규모유통업법을 내년부터 복합쇼핑몰로 확대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다. 이에 따라 복합쇼핑몰도 월 2회 의무휴업과 영업시간 제한 등의 규제를 받는다. 각종 규제 내용을 담은 개정안이 24건이나 올라와 있는 상황에서 신세계 부천점 백지화는 향후 유통 업계 출점 제동의 '신호탄'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현 정권 기조도 전통시장과 소상공인 보호인데 굳이 중소상인단체의 반발을 무릅쓰면서까지 무리하게 사업을 추진할 필요가 없다"며 "향후 복합쇼핑몰이나 아웃렛 출점 시 제약이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한, 쇼핑몰 출점과 관련해 지역상권과 마찰을 빚는 광주, 부산 등에서 유사한 사례가 나올 가능성도 제기됐다. 롯데그룹의 경우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롯데마트를 열 예정이었으나 4년간 소상공인과 마찰을 빚으며 결국 서울시의 허가를 받지 못했다.
정부의 이런 규제로 인해 복합쇼핑몰 출점이 백지화되면서 소비자 선택권 침해라는 지적도 나온다. 한 유통기업 관계자는 "대규모 점포 출점을 막는다고 해서 전통시장 매출이 올라가는 건 아니다"며 "무조건적인 출점 제한은 오히려 소비자들에게 불편을 초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 일부 부천 주민들, 건립 무산 소식에 거센 반발 왜
실제 신세계 부천점의 경우 건립이 무산됐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부천 주민들의 거센 반발이 일었다. 부천 주민 커뮤니티 등에서는 "복합쇼핑몰이 들어오면 지역 주민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데 왜 타 지역 주민들이 반대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부천 사람들이 주말마다 광명, 김포, 송도, 고양 등 아웃렛을 찾아 떠난다는 데 부천에는 내세울 만한 명소가 없어서 씁쓸하다", "저런 대형 쇼핑몰이 들어와야 지역 발전도 이뤄지는 것으로 생각한다" 등 각종 비판이 이어졌다. 부천 시민들은 부천구청과 부천시청 앞에서 신세계백화점 입점 촉구 집회를 열기도 했다.
유통 업체들은 출점 및 투자 계획에도 주저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섣불리 출점 계획을 내놨다가 주변 소상공인과 정부의 압박을 받을 경우 어떤 것도 할 수 없게 된다"라며 신규 출점이나 투자 등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는 견해를 내비쳤다.
문제는 출점 포기가 포기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기업과 지자체의 계약을 전제로 사업이 추진되고 있어 출점 포기 시 소송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기업으로서는 출점 포기와 함께 법정 분쟁비용까지 발생하는 이중고를 떠안아야만 하기 때문이다. 실제 신세계도 신세계백화점 부천점 백지화에 따른 150억 원 규모 소송에 휘말렸다. 부천시는 사업협약 불이행에 따른 협약이행보증금 115억 원과 기회비용을 신세계 측에 청구한다는 계획이다.
신세계 측은 "중소상인단체, 인근 지자체 등 이해 당사간의 이견 및 갈등이 해소되지 않은 시점에서 토지매매계약 체결을 이행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유통 대기업과 지역 상권이 서로 윈윈할 수 있는 방법을 찾지 않고 무조건 적인 반목과 갈등만 조장하는 건 옳지 않다"며 "신규 투자가 상권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에 도움 되는 사례가 많기 때문에 (정부의) 유연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개선을 요구했다.
한편, 공정거래위원회는 형식상 임대업자라 하더라도 상품 판매에 실질적으로 관여하는 경우 대규모 유통업법 적용에 포함하는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복합쇼핑몰과 아웃렛이 대규모 유통업 규제 대상이 될 경우 출점·영업시간, 의무휴일 등의 규제를 받게 된다. 특히 대형마트와 같이 주말 의무휴업일이 지정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