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이성로 기자] 법원이 세간의 관심을 모았던 '기아자동차(이하 기아차) 통상임금 소송'에서 노조의 손을 들어준 가운데 국내 완성차 업계는 하나같이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이번 판례가 기아차뿐 아니라 작게는 완성차 업계, 크게는 타 산업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내다봤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1부(권혁중 부장판사)는 지난달 31일 오전 10시 기아차 생산직 근로자 2만7000여 명이 회사를 상대로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해 달라'고 낸 임금 청구 소송 1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기아차가 당기순이익을 거뒀고, 경영 상태도 나쁘지 않다. 정기상여금, 중식비 등을 통상임금에 포함하는 것이 맞다'며 노조 청구 금액 가운데 원금(3126억 원), 이자(1097억 원) 등 총 4000여억 원(4223억 원)을 인정했다. 이는 노조가 청구한 금액 1조926억원의 40%에 모자란다.
사측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기아차 관계자는 판결 직후 "아직 공식 입장과 관련해선 아무런 준비도 하지 못한 상황이다. 회사의 경영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법원의 결정을 이해하기 어렵다"면서 "즉시 항소해 법리적 판단을 다시 구하고, 1심 판결이 회사에 미치는 영향을 면밀히 분석해 대응방안을 강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노조는 재판부의 판시에 만족감을 드러냈다. 기아차 노조 측은 "현대기아자동차 그룹은 이번 법원 판결 결과에 따라 통상임금 해결 방안을 즉각 제시하고 더불어 불법파견 비정규직 문제, 일감몰아주기, 원하청불공정 거래, 협력업체 노사관계 지배개입등 문제를 해결하는 재벌개혁에 나서야 한다"면서 "재판부에서 '판결을 계기로 노사 갈등이 봉합되는 출발점이 되기를 노사양측에 주문'하였듯이 사측에서 통상임금 문제 해결을 위한 전향적인 안을 제시할것을 촉구하며 이를 계기로 미래지향적인 노사관계로 산업평화가 이루어지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노사의 반응이 극명하게 엇갈린 가운데 김필수 대림대학교 자동차학과 교수는 재판 결과에 대해선 '적당하다'라는 뜻을 보였지만, '국내 자동차 산업엔 분명 좋지 않은 결과'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는 <더팩트>와 전화 통화에서 "재판부도 어느 한쪽의 편을 100% 들어주기는 부담이 있었을 것이다.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중간자 입장에서 적당한 판결을 한 것 같다. 하지만, 이번 판결은 기아차로만 끝나는 게 아니다. 판례가 되기 때문에 임금과 관련된 줄소송이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이어서 "현재 한국 자동차 시장은 자동차 업계는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로 인한 중국의 보복 무역과 더불어 한미 FTA, 노조 파업까지 악재가 겹친 최악의 상황이다. 자동차뿐 아니라 다른 산업까지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위기 상황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현대 기아차 그룹을 제외한 국내 완성차 업체 관계자들은 모두 익명을 전제로 이번 판결에 대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최악의 상황은 피했지만, 업계에선 '파장효과는 만만치 않을 것이다'고 입을 모았다.
한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한국 자동차산업으로 봤을 때 인건비는 분명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실제로 국내 완성차 제조업체에서 느끼는 체감은 부담스럽기만 하다"며 "저희 쪽만 보더라도 인건비가 국내 업계에 70%밖에 안 되지만, 세계 시장에선 높은 편에 속한다. 기술과 품질이 좋지만, 인건비가 올라가는 것에 대해선 부담일 수밖에 없다"며 우려를 표명했다.
이어서 조심스럽게 "이번 판결로 현대 기아차그룹으로선 해외로 생산 거처를 옮기는 명분으로 삼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법원의 판결은 당연히 존중 받아야되는 부분이다"라고 말하면서도 "원론적인 부분에선 기아차 하나의 문제라고 보기엔 어렵다. 재계 산업 전체적으로 이번 판결을 기준 삼아서 소송이 이어질 수 있다. 업계로선 부담스러울 수 있는 판결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한 완성차 업체 관계자는 법원의 판결을 인정하고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최근 기아차 통상임금 소송이 뜨거운 감자였다.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자동차 산업이 붕괴될 것 같은 분위기가 조성됐다. 소비자 구매 심리 또한 크게 위축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면서 "전반적으로 자동차 산업의 선순환 구조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상황이었다고 생각한다. 항소를 할 수 있으나 어쨌거나 1심 판결이 나왔다. 이제 노사가 자동차 산업 발전을 위해 서로가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으면 좋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