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이철영 기자] 용산 화상경마장 폐쇄가 길거리 농성 1580일 만인 27일 결정됐습니다. 4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학부모들과 시민단체들이 거리에서 반대 시위를 한 결과입니다. 용산 화상경마장 폐쇄가 결정되자 여기저기서 환영 분위기가 역력합니다. 한국마사회 처지에서는 씁쓸한 뒷맛이 남겠지만 말입니다.
용산 화상경마장 문제는 이미 수년간 국회 국정감사 등에서 지적된 부분입니다. 국회에서는 폐쇄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지만, 당시 현명관 마사회 회장은 뜨거운 반대 여론에도 개장을 강행했고, 그 후폭풍이 여간 거세지 않았습니다.
문제의 발단은 용산 화상경마장 주변으로 학교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용산 화상경마장은 건물 완공 후 우여곡절 끝에 1년 8개월여가 지난 2014년 7월 28일 시범개장 형태로 문을 열었고 2015년 1월 정식 개장했습니다. 용산 화상경마장을 기준, 직선으로 235m 거리에 성심여중과 성심여고가 있고, 불과 500m 내에 6개의 초·중·고교가 밀집해 있습니다.
하지만 현 회장과 마사회 측은 학교보건법을 위반하지 않아 문제될 것이 없다는 태도로 일관했습니다. 당시 마사회는 "학교보건법은 학교 200m이내에서는 학습권을 침해할 시설이 들어설 수 없는데 경마장은 200m밖에 있다"는 주장을 내세운 것입니다.
주민과 시민단체들의 교육권과 생활권 보호 주장을 뒤로한 채 개장을 강행한 것입니다. 사실 현 전 회장은 대표적인 친박(친 박근혜)으로 분류됩니다. 현 전 회장은 박 전 대통령의 2012년 대선 당시 싱크탱크인 국가미래연구원 멤버였습니다. 박 전 대통령의 주요 공약이었던 '줄푸세(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질서 세우자)'를 기획한 인물입니다.
이런 이유로 현 전 회장이 마사회장직에 오르자 '낙하산' 논란이 불거졌습니다. 용산 화상경마장 개장으로 논란을 일으킨 것도 현 전 회장입니다. 그러나 현 전 회장은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지면서 지난해 12월, 3년 임기만 채우고 물러났습니다. 당초 최순실국정농단사태가 벌어지기 전까지만 해도 연임이 무난할 것으로 보여 박근혜 정부와 나란히 임기를 유지할 것으로 관측됐지만, 연임 불가 통보로 씁쓸히 물러났습니다.
현 전 회장이 물러난 자리엔 이양호 전 농촌진흥원장이 마사회장으로 취임하게 됐습니다. 이 회장은 박 전 대통령 탄핵으로 황교안 전 국무총리 대통령 권한대행 당시 임명됐습니다. 역시나 '낙하산' 논란이 불거졌습니다. 또, 혼란한 틈을 탄 '알박기' 인사라는 비난이 일었습니다.
황 전 총리가 이 회장을 인선하자 더불어민주당은 즉각 철회를 요구했습니다. 당시 최인호 민주당 최고위원은 "황 권한대행은 마사회장 내정 결정을 즉각 철회하고, 여타 공기업에 대한 인사권 행사도 중단하라"고 촉구했습니다.
용산 주민·학부모·교사·성직자 모임인 용산화상경마도박장추방대책위원회와 참여연대민생희망본부, 전국도박규제네크워크, 화상도박장문제해결전국연대는 지난 13일 성명을 통해 이 회장의 사퇴를 촉구하고 나섰습니다.
이들은 "이 회장은 지난해 12월 대통령 권한대행을 하던 황교안 국무총리가 행사하지 말았어야 할 인사권을 행사해 마사회장에 취임한 대표적인 '친박 낙하산' 인사"라면서 "지금까지 경과만으로도 이 마사회장은 공기업 수장의 자격이 없는 인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라며 즉각적 자진 퇴진을 촉구했습니다.
그러면서 "각계각층에서 이 마사회장 사퇴 요구가 잇따르고 있다. 마사회장의 사퇴와 함께 마사회의 전면적인 개혁이 필요하다는 국민의 목소리가 매우 높다는 점을 농림부는 명심해야 할 것"이라며 즉각적 이 회장 경질을 요구했습니다.
용산 화상경마장은 이명박 정부부터 박근혜 정부까지 이어지다 문재인 정부에서 폐쇄가 결정된 것입니다. 아무리 공기업이라 해도 사업 추진은 타당성 평가와 함께 일관성이 필요하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부가 바뀌고 돌연 사업을 취소한 것은 분명 문제의 소지가 있었다고밖에 볼 수 없습니다. 지난 정부의 잘못된 사업, 그리고 '낙하산' 논란 기관장의 태도 변화는 단순하게 볼 수 없습니다.
용산 화상경마장의 폐쇄는 애초 잘못된 사업의 정상화일 수도 있고, 지난 정부와 관련한 회자정리 성격도 분명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회장은 본인을 둘러싼 '낙하산' 인사 논란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용산 화상경마장 폐쇄의 결정이 본인과 무관할 수 없다는 점도 모르지 않을 것입니다. 용산 화상경마장 폐쇄 결정으로 끝날 사안은 아니라는 목소리에 설득력이 실리는 상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