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서재근 기자] "법원은 공평하고 공정해야 한다. 검사의 공소사실과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들에서 보이는 여러 불일치, 모순, 의문에는 애써 눈감으면서, 오히려 피고인의 주장과 증거에는 불신의 전제에서 현미경의 잣대를 들이대며 엄격한 증명을 요구하는 것은 형사법원이 취할 태도가 아니다. 형사재판을 담당하는 법원은 심리과정에서 선입견 없는 태도로 검사와 피고인 양편의 주장을 경청하고 증거를 조사해야 하며, 그 결과를 바탕으로 헌법상 요구되는 형사재판의 원리인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유·무죄를 판단해야 한다." (송우철 변호사 최후변론 中)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7일 뇌물공여 사건 결심공판에서 박영수 특별검사팀으로부터 징역 12년을 구형받았다. 착잡한 표정으로 최후변론에 나선 송우철 변호사는 대법원의 판결을 인용하는 것으로 변론을 마무리했다. 지난 6개월여 동안 전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국정농단 사건' 관련 재판 가운데 유일하게 '세기의 재판'이라는 타이틀까지 얻었던 이 부회장의 재판은 법조계뿐만 아니라 재계에서도 그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큰일'이 돼버린 지 오래다.
공판준비기일부터 결심공판까지 단 한 기일도 빠짐없이 현장을 취재한 기자이자, 일련의 모든 진행 과정을 지켜본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이번 재판을 바라보는 내내 불편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특히, 사실상 재판의 마지막 단계라고 할 수 있는 결심공판 때까지도 결정적 증거 제시가 없이 어찌보면 '석연찮은' 의혹 제기와 주장만이 재판부를 향한 호소의 소재로 등장했다는 점에서는 불편함을 넘어 허탈했다.
박영수 특별검사는 이날 결심공판에서 재판부에 "정의가 살아있음을 보여주기를 바란다"라고 엄벌을 호소했다. 그러면서 본사건 수사의 동기가 '국정농단 사건'의 실체적 진실이 밝혀지기를 바라는 국민적 여망에서 비롯됐다는 점을 강조하며 "사안을 확인하고 판단하면서 법률가로서 품격을 지키면서 편향된 가치와 시각을 갖지 않으려고 스스로 경계하면서 공소유지에 최선을 다했다"라고 말했다.
변호인이 제시한 대법원의 판결문 내용도, 박 특검의 발언 모두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아 공평하고 사사로움이 없다는 '공평무사'를 강조한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 그런데도 재판의 말미까지 많은 의혹과 억울함을 호소하는 항변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특검은 재판 초기부터 "혐의를 입증할 수 있는 증거가 차고 넘친다"고 호언장담했다. 그러나 52번에 걸쳐 진행된 재판과정에서 특검이 주장하는 공소내용을 입증할 수 있는 직접 증거는 단 한 개도 나오지 않았다는 게 법조계 안팎의 일반적인 지적이다. 되레 결심을 앞두고 특검은 공소장 내용을 변호인 측이 주장한 대로 일부 변경하기까지 했다. 삼성과 같이 재단 출연금을 수십 수백억 원씩 지원한 다수 대기업 총수들이 수사 대상에서 제외된 이유도, 특검 측에 유리한 진술을 한 모 청와대 비서관에 대해서 뇌물을 받았음에도 기소하지 않은 이유 등 변호인 측에서 제기한 의문과 질문에 특검은 마지막까지 명확한 해답을 내놓지 않았다.
헌법 제27조 4항은 형사 피고인은 유죄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무죄로 추정된다고 규정한다. 명확한 증거를 토대로 피고인의 혐의를 입증하는 것은 기소권을 가진 검찰의 몫이다. 4개월 여 동안 법정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 가운데 하나는 "상식적으로 봤을 때"라는 표현이다. '상식'의 사전적 의미는 '사람들이 보통 알고 있거나 알아야 하는 지식'이다. 그러나 재판과정에서 재판부가 "특검의 '의견'을 말하지 말고 '질문'을 하라"며 수차례 지적한 것만 보더라도 재판과정에서 특검이 사용한 '상식'의 의미가 과연 대중이 공감하는 통상적인 지식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일말의 의구심이 든다.
'경제민주화', '헌법 가치 수호'를 목적으로 삼성그룹 전현직 수뇌부에 대해 중형을 구형했다는 게 특검의 논리다. 박영수 특검의 말대로 정의가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그전에 혐의를 입증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 명확한 증거가 반드시 뒷받침돼야 한다. 재판 과정에서 '차고 넘쳐야 하는 것'이 증거가 아닌 '일방적인 추측'이 돼서는 안 된다.
이제 이 부회장을 비롯한 삼성 전직 경영진 4명의 1심 재판 결과는 재판부의 판단에 달렸다. 재판부는 사회적 분위기가 아닌 오직 재판에서 다뤄진 법리와 증거만을 토대로 '공평무사'한 판결을 내려야 한다. 그것이 진정으로 헌법 가치를 지키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