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서울중앙지법=서재근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재판에서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증인으로 채택되면서 법조계는 물론 재계 안팎에서 그가 어떤 방향으로 증언에 나설지에 관심이 쏠린다.
김 위원장의 경우 한때 '삼성의 저격수'로 불리며 지난해 재벌 총수들의 국회 청문회 때에도 삼성을 향한 날 선 지적에 열을 올렸던 과거 이력은 물론 현재 '재벌 개혁'에 시동을 걸고 있는 공정위 수장이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특검과 변호인단 양측 간 균형 있는 신문 자체가 불가능하지 않겠느냐는 우려도 나온다.
13일 서울중앙지법에 따르면 내일(14일) 오전 10시 서울 서초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판사 김진동) 심리로 열리는 이 부회장의 39번째 재판에서 김 위원장이 증인으로 출석한다.
이번 신문에서 특검과 변호인단은 뇌물공여 혐의와 관련한 핵심 쟁점 가운데 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과 그에 따른 순환출자고리 해소 부분과 관련해 집중적으로 신문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지난 2월 한성대학교 교수였던 김 위원장은 당시 참고인 신분으로 박영수 특별검사사무실에서 조사를 받으면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당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및 공정위의 순환출자해소 관련 유권해석을 내리는 과정에서 청와대의 외압이 있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검에서는 김 위원장의 신문을 앞두고 만전을 기하는 분위기다. 특검은 지금까지 핵심 증인이라고 강조해 왔던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에 대한 신문에서도 '업무 수첩'의 직접 증거 효력을 인정받지 못했고, 전날 최순실의 딸 정유라의 신문에서도 '말 세탁' 의혹이 불거진 말들의 소유권이 삼성에 있었다는 취지의 진술이 나오는 등 혐의 입증을 위한 증거나 진술은 확보하지 못했다. 그만큼 특검으로서는 김 위원장의 신문이 분위기 반전을 위해 중요할 수밖에 없다고 안팎에서는 입을 모은다.
특검에 따르면 이번 김 위원장에 대한 신문에서 박영수 특별검사가 직접 법정에 나오기로 결정했다. 박 특검이 이 부회장 재판에 출석하는 것은 지난 4월 7일 열린 첫 재판 이후 처음이다. 박 특검의 이례적인 행보는 김 위원장의 진술이 상대적으로 특검의 공소사실에 힘을 실을 가능성이 큰 만큼 '총력전'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특검은 앞서 진행된 재판에서도 김 위원장의 발언을 재판에서 활용하거나 참고인 조사 때 진술을 법정 증거로 채택할 것을 요구하는 등 그의 발언과 주장 내용에 상당 부분 공을 들여 왔다.
특히, 지난 4월 21일에 진행된 이 부회장의 6번째 재판에서는 특검은 "수사를 진행하면서 김 교수(위원장)의 발언이 생각났다"라며 "그는 삼성 미래전략실에 대해 '커튼 뒤에 숨어있는 조직'이라고 표현하며 '삼성은 우리 사회 모든 사람을 회유할 수 있는 유일한 주체다. 그 힘을 오남용하는 삼성의 후진적 지배구조를 개혁하는 게 우리 사회의 과제'라고 논평했다"라면서 김 위원장의 발언을 인용했다가 재판부로부터 "불필요한 발언을 삼가라"고 지적을 받기도 했다.
반면, 다른 쪽에서는 김 위원장의 신문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한 재계 관계자는 "김 위원장은 공정위 사령탑에 오른 이후 줄곧 재벌개혁을 주장해 온 인물"이라며 "특검에서 조사를 받았을 때 신분이 교수이자 시민단체를 대변하는 위치에 있었다고 하지만 공정위원장이 법정에서 뱉는 말 한마디가 직간접적으로 적지 않은 파급력을 행사할 가능성도 충분하다"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신문 과정을 지켜봐야 하겠지만, 이번 김 위원장에 대한 신문은 증인과 변호인, 특검 모두에게 부담이 되는 자리일 것으로 보인다. 특검은 협의 입증을 위한 확실한 무언가가 절실하고, 변호인 측에서는 논란이 되는 쟁점 자체가 '경영 승계' 문제라는 점에서 공정위원장과 신문이 껄끄러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라며 "김 위원장 역시 신임 위원장으로서 본인의 말 한마디가 예상치 못한 혼란과 잡음으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그 어느 때보다 신중한 태도로 신문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