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현장] 지점 줄고 통장 사라지고…노인들 "모바일뱅킹? 젊은 사람이나 하지"

최근 은행권이 지점 축소 및 비대면 채널 확대에 나서고 있지만, 노인들은 이런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서민지 기자

[더팩트ㅣ서민지Ⅱ 기자] 은행권이 지점을 줄이고 모바일뱅킹을 확대하는 등 비대면 채널을 강화하면서 '통장 없는 시대'로 빠르게 접어들고 있다. 언제 어디서나 이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편의성이 커지고 있지만, 디지털과 거리가 먼 노인들은 금융 소외 계층이 되고 있다.

27일 오후 대표적인 노인 쉼터로 꼽히는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을 찾았다. 무더운 날씨에도 많은 노인들이 공원을 찾아 삼삼오오 모여 휴식을 즐기고 있었다. 대화를 나누고 있는 어르신들에게 다가가 은행 이용에 대해 물어보니 지점을 선호하며 모바일뱅킹은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지인과 함께 공원을 찾은 김 모(80) 씨는 "모바일뱅킹은 젊은 사람들이나 하는 것이지, 우리는 은행에 직접 방문하고 있다"면서 "주변에서도 스마트폰으로 은행 업무를 본다는 사람을 못 봤다. 휴대전화로는 전화나 문자만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함께 있던 강 모(77) 씨는 은행에 제때 가지 못하고 볼일을 모았다가 처리한다고 했다. 집 근처에 있던 은행 지점이 사라지면서 그나마 가까운 곳을 가려 해도 버스를 타야 하기 때문이다.

강 씨는 "최근에 동네에 있던 은행이 사라져서 요즘에는 은행을 방문하기 위해 버스까지 타야 한다"며 "통폐합됐다고 하던데, 근처에 있던 은행이 사라지니 불편하다. 그렇다고 인터넷으로는 할 줄도 모르고…"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김 씨 또한 "우리 집 근처에 있는 OO은행도 사라진다고 하던데"라며 말을 덧붙였다.

모바일뱅킹을 시도해봤지만 쉽지 않다는 게 노인 대부분의 의견이었다. 모바일뱅킹을 이용해봤다는 이 모(71·여) 씨는 "요즘 다리가 아프다 하니 딸이 모바일뱅킹을 깔아줬다. 이용법도 알려주고, 몇 번을 배웠는데 어려워서 못하겠더라"며 "힘들어도 직접 방문하는 게 편하다"고 말했다.

한국인터넷진흥원에 따르면 모바일·PC를 통한 인터넷뱅킹 이용률은 60대는 14.0%, 70세 이상은 4.3%에 그친다. /서민지 기자

디지털 혁신이 빠르게 진행되면서 세대 격차는 크게 벌어지고 있다. 한국인터넷진흥원이 발표한 지난해 '인터넷이용실태조사'에 따르면 모바일·PC를 통한 인터넷뱅킹 이용률은 20대와 30대가 각각 79.8%, 88.1%인 반면 60대는 14.0%, 70세 이상은 4.3%에 그쳤다. 우리나라 노인 기준이 만 65세인 점을 감안했을 때 노인 10명 중 1명 정도만이 인터넷뱅킹을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대부분의 노인들이 영업점 방문을 통해 은행 업무를 보고 있지만, 지점은 계속해서 줄고 있다. 신한·국민·우리·하나·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점포수는 올 3월말 기준 4955개로 전년 동월(5129개)보다 174개 줄었다.

비대면 채널이 확대되면서 점포 축소는 꾸준히 진행될 전망이다. 특히 외국계은행인 씨티은행의 경우 급격한 몸집 줄이기에 나서고 있다. 씨티은행은 운영하고 있는 133개 지점을 32개로 축소하기 위해 다음 달부터 본격적으로 점포 폐쇄를 시작한다.

은행 입장에서는 소비자들의 점포 이용이 줄고 있어 이에 맞춰 변화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소비자의 90% 이상이 비대면 채널을 이용하고 있고, 지점 이용 고객은 5%대에 불과하다"며 "수익성을 확보하고 디지털화에 대응하기 위한 선택"이라고 말했다.

금융감독원 금융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신한·국민·우리·하나·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점포수는 최근 1년새 174개 줄었다. /더팩트 DB

종이 통장도 점차 사라질 전망이다. 금융 당국은 오는 9월부터 종이통장 발급을 단계적으로 중단하기로 했다. 60세 이상이나 요청하는 고객의 경우 만들어주기는 하지만, 원칙적으로 발행하지 않는 것이다. 또한 오는 2020년에는 통장 발행을 위해 5000~1만8000원 정도의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시민단체는 '소비자 중심'의 서비스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강형구 금융소비자연맹 국장은 "최근 은행 서비스는 젊은층 위주로 진행되고 있어 전자금융에 익숙하지 않은 고령층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노인들은 처음 이용하는 서비스인 만큼 두려움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이어 "수익보다는 공공성에 집중해야 한다"면서 "지점 축소 및 비대면 확대 등을 계속해서 진행할 경우 고령층을 위한 교육 등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방안들을 모색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jisseo@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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