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이철영 기자] '내 사전에 불가능이란 없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Napoléon Bonaparte) 프랑스 황제를 기억하는 이들이 가장 많이 언급하는 말이다. 지중해 코르시카섬 아작시오 작은 섬에서 태어나 프랑스 황제에 즉위한 나폴레옹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지도자 중 한 명으로 꼽히기도 한다.
나폴레옹의 '내 사전에 불가능이란 없다'는 말은 많은 사람의 좌우명처럼 종종 거론되기도 한다. 기업을 경영하는 이들도 가끔 신사업에 뛰어든다거나 사업을 확장할 때 종종 버릇처럼 되뇌인다. 그런데 많은 기업인 중 나폴레옹을 유독 사랑하고 존경하는 오너를 꼽자면 하림그룹의 김홍국 회장이 단연 최고라 할 수 있다.
김홍국 회장의 나폴레옹 사랑은 이미 유명하다. 김 회장은 2014년 11월 188만4000유로(당시 환율 약 26억 원)에 나폴레옹의 '이각모(바이콘)'를 낙찰받았다. 당시 김 회장은 "어린 시절부터 나폴레옹의 긍정적 생각에 감명을 받았고, 모자에 담겨있는 '나의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는 도전정신을 산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김 회장은 이후에도 나폴레옹과 관련한 물건들을 사들였다. 김 회장은 그동안 수집한 나폴레옹 관련 자료들을 모아 지난 3월 16일 경기도 성남시 NS홈쇼핑 별관에 나폴레옹 갤러리를 오픈했다. 갤러리엔 나폴레옹 초상화, 덴마크 국장으로 받은 훈장, 원정 시 사용하던 은잔, 당시에 사용되던 도검류, 이각모에 대한 증빙문서 등을 전시 중이다.
나폴레옹을 사랑한 김 회장은 팬오션 벌크선 이름도 '팬 바이콘(Pan Bicorn)'으로, 올해 출범한 하림그룹의 외식 브랜드 이름도 '엔바이콘'으로 정했다.
김 회장의 나폴레옹 사랑은 하림그룹을 만든 과정을 볼 때 어느 정도 이해되는 부분이 있다. 김 회장은 전라북도 익산의 작은 마을에서 병아리 10마리를 시작으로 현재 재계 30위, 자산규모 10조 원에 달하는 하림그룹을 만들었다. 나폴레옹은 코르시카 작은 섬에서 태어나 프랑스 황제에 올랐다. 아마도 김 회장은 자신의 성공이나 나폴레옹의 황제 등극 과정 등을 투영한 것으로 보인다.
나폴레옹은 프랑스 황제에 즉위한 후 사회 대변혁을 추구하며 존경을 받았지만, 이후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김 회장도 자산규모 10조 원 규모의 하림그룹을 키우며 성공의 아이콘이 됐지만, 최근 25세 아들 준영 씨에게 경영승계를 한 사실이 알려지며 논란의 중심에 섰다.
하림그룹의 지배구조는 '올품→제일홀딩스→하림'으로 이어진다. 준영 씨가 지분을 100% 보유하고 있는 올품이 지주사인 제일홀딩스의 지배기업이다. 김 회장은 2012년 자산규모 3조5000억 원인 올품을 당시 20세인 준영 씨에게 증여했다. 준영 씨는 회사를 넘겨받으며 100억 원대의 증여세를 냈다. 현재 자산 10조5000억 원인 그룹의 지분 44.6%를 보유하기 위해 낸 증여세는 이 금액이 전부다.
논란이 이어지는 것은 최소한 검증 과정을 거치지 않은 25세 아들이 자산 10조 원대 회사를 물려받으며 100억 원에 불과한 증여세를 낸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김 회장의 성공은 많은 사람에게 귀감이 된다. 롤모델이기도 하다. 그러나 김 회장 본인이 '불가능은 없다'는 도전정신을 강조하면서 정작 자기 아들에게 회사를 승계했으니 배신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나폴레옹 역시 프랑스 황제에 즉위하기 전 프랑스 국민의 영웅이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베토벤도 나폴레옹을 영웅으로 여겼지만, 그가 황제에 즉위하자 속았다며 이런 생각을 버렸다. 나폴레옹은 1815년 6월 22일 세인트헬레나 섬으로 유배를 떠나기 전 4살 난 아들 나폴레옹 2세(나폴레옹 프랑수아 샤를 조제프 보나파르트)를 황위 계승자로 지명했다.
하지만 프랑스는 나폴레옹 2세를 황제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나폴레옹 2세는 결국, 어머니의 나라인 오스트리아에서 성장했다. 하지만 아버지 나폴레옹 1세와 달리 그는 이렇다 할 무엇도 남기지 못했다.
김 회장은 나폴레옹 이각모를 수집할 정도이니 누구보다 그의 생을 잘 알고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또, 나폴레옹 2세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을 것 같다. 그는 최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2세 승계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다는 것은 알지만, 창업자인 나의 경영철학을 이어가려면 어릴 때부터 교육해 온 아들이 회사를 물려받았으면 하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20년 안에 아들에게 경영권을 넘겨줄 생각이 없고 경영 능력이 없다면 전문 경영인을 세울 것"이라고 밝혔다.
20년 안에 물려줄 생각이 없다는 김 회장은 왜 그렇게 급히 아들에게 승계를 진행했는지 의문이다. 김 회장은 나폴레옹의 이각모를 사면서 '도전정신을 샀다'고 했다. 그리고 지난 4월 나폴레옹갤러리는 오픈하며 "나폴레옹 바이콘을 긍정과 도전의 공감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되어 기쁘다. 청소년들에게 주는 작은 선물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흙수저에서 금수저로 성공한 김 회장이 정작 자기 아들에겐 금수저를 물려주는 것이 나폴레옹의 도전정신이고 자신이 말한 "청소년에게 주는 작은 선물"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