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서민지Ⅱ 기자] 주요 시중은행들이 소멸시효가 완성된 이른바 '죽은 채권'을 잇달아 소각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민생 금융 공약 기조에 맞춰 죽은 채권 소각에 더욱 적극 나서고 있는 가운데 NH농협은행은 아직 현황조차 파악하지 못해 더딘 형국이다.
최근 우리은행은 2013년 이후 소멸시효 기일이 도래한 개인채무자 1만8835명의 연체대출 원금 및 이자 등 특수채권 1868억 원 전액을 소각했다고 밝혔다. 2012년 이전 소멸시효가 완성된 특수채권은 이미 소각 처리한 바 있다.
소멸시효 완성 채권은 채권자가 돈 받을 권리를 소멸시효 기간 안에 행사하지 않아 채무자의 갚을 의무가 사라진 것을 말한다. 통상 금융사의 채권은 5년이 지나면 소멸시효가 완성돼 변제 의무가 사라진다.
하지만 채권 자체는 그대로 남아 금융사들이 임의로 매각했고, 채권을 사들인 대부업체와 추심업체 등이 편법을 쓰면서 문제가 됐다. 이들은 채무자에게 소액을 갚게 한 뒤 변제의무를 되살려 잔여 채무를 받는 방식 등으로 악용해왔다. 채무자가 변제의사를 내비치면 소멸시효가 부활한다는 점을 이용한 것이다.
앞서 KB국민은행과 신한은행도 각각 3월과 4월 소멸시효가 완료한 특수채권 9800억 원(9만7000명), 4400억 원(1만9424명)을 소각했다. KEB하나은행은 지난해 4월 전산 통합 과정에서 특수채권 1462억 원을 소각했고, IBK기업은행의 경우 매월 소멸시효가 완료된 채권 현황을 파악해 소각 처리하고 있다.
하지만 주요 시중은행 중 한 곳인 농협은행은 타 은행과 달리 지지부진한 흐름이다. 시중은행이 앞다퉈 죽은 채권 소각에 나서고 있지만 농협은행은 소멸시효가 끝난 채권 규모도 파악하지 못한 상태다.
농협은행 관계자는 "현재 시효가 완료된 채권 규모 등 현황을 파악하고 있으며 소각 여부나 진행 시기 등 정해진 것은 없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농협은행이 '소비자 보호'에 힘써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특히 은행 입장에서는 소멸시효 완료 채권이 회수 불가능 채권으로 분류돼 소각 처리해도 추가 손실이 없는 만큼 적극 나서야 한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또한 문재인 대통령이 소액·장기 연체채권 소각에 대해 강한 의지를 나타내고 있기도 하다. 정부가 1000만 원 이하의 소액·장기 연체 채권 소각을 추진하고 있는 데다 금융 당국도 관련 사안을 검토하는 중이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현황조차 파악하지 않았다는 것은 그동안 채권 소각을 고려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새 정부의 정책 기조에 따르는 것은 물론 소비자의 정상적인 금융 거래를 위해서라도 은행권이 적극 노력해야 할 부분"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