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서재근 기자] 뇌물공여 혐의 등으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세 번째 공판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비선 실세 최순실이 설립을 주도한 사립재단 출연금 지원 경위와 관련해 "청와대의 암묵적 강요에 따른 불가피한 결정"이라는 취지의 재계 관계자들 다수의 진술 내용이 공개됐다.
14일 오전 10시 서울 서초 서울지방법원 형사합의27부(김진동 부장판사)의 심리로 이 부회장과 최지성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부회장), 장충기 전 미래전략실 차장(사장), 박상진 전 삼성전자 대외부문 사장(전 승마협회장), 황성수 전 삼성전자 전무(승마협회 부회장) 등 삼성 수뇌부 4명에 대한 세 번째 공판이 진행됐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전날(13일) 장충기 전 미래전략실 차장(사장)의 진술 조서를 공개한 데 이어 이날 오전 공판에서는 강우영 삼성물산 기획관리팀장과 권순범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 사회본부 사회협력팀장, 권오준 포스코 회장의 진술 조서를 공개했다.
특검과 삼성 양측은 최순실이 세운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 지원 경위를 두고 치열한 법정 공방을 벌였다. 특검은 삼성이 비선 실세 최순실이 배후에 있다는 사실을 사전에 인지하고 그룹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이하 미전실)의 주도로 각 계열사에 재단 출연금 지원을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변호인 측은 공개된 진술 조서 내용을 근거로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 지원 경위와 관련해 "청와대와 전경련의 주도로 진행된 것으로 삼성을 비롯한 다수 대기업에서는 막강한 권력을 쥐고 있는 청와대의 요구를 따를 수밖에 없었고, 출연금 지원 과정에서 최순실이 배후에 있다는 사실은 전혀 알지 못했다"며 삼성이 '피해자'라는 점을 강조했다.
실제로 권순범 팀장이 검찰 특수본 소환 조사 당시 진술한 내용에 따르면 전경련에서는 청와대의 지시를 받아 2015년 1월 10대 그룹 임원을 소집, 문화재단에 대한 자금 지원을 요청했다. 권 팀장은 "10대그룹에서 전경련에 매년 '사회협력비'를 낸다"라며 "2015년의 경우 250억 원가량을 냈고, 이번 재단 출연금 역시 10대 그룹이 사회협력회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해 할당액을 정했고, 삼성의 미전실, LG그룹의 지주사인 ㈜LG 등 그룹별로 그룹사나 총괄하는 부서에 이를 통보했다"고 밝혔다.
특히, 삼성은 특검에서 출연금을 지원한 다른 대기업과 구분해 이례적으로, 유일하게 뇌물을 공여했다고 판단한 채 편향된 수사에 나서고 있다고 지적했다. 권오준 회장의 지난해 검찰 조사 진술 내용에 따르면 권 회장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 수석으로부터 요청을 받고 지난 2015년 12월 22일 미르재단에 30억 원, 16년 4월 K스포츠재단에 19억 원을 출연했다.
당시 출연금 지원 경위에 대해 권 회장은 "대기업에서는 환경문제와 각종 인허가 문제를 비롯해 정부에 협조를 구해야 할 일이 많다. 무엇보다 세무조사와 같은 가장 염려되는 불이익에 발목을 잡혀 일이 추진 안 되거나 지연되는 경우 손해가 클 수밖에 없어 두 재단에 출연금을 지원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또한, 진술 조서에 따르면 권오준 회장은 "과거 ㈜포스코엠텍의 구리 거래와 관련해 특별 세무조사가 시행되면서 당시 435억 원의 과징금을 추징받았다. 조세불복 소송 통해 환급을 받기 했지만, 장기간 어려움을 겪었다"며 정부의 요구를 따를 수밖에 없는 고충을 토로하면서 "정부가 도와줄 사안이 있으면 (안종범 전 수석을 통해) 부탁을 드리기도 했고, 반대로 안 전 수석이 부탁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진술했다.
삼성 측 변호인은 "되려 삼성을 제외한 일부 기업에서는 특검이 제시한 진술 조서 등 각종 증거자료에서 정부 고위층과 대가관계를 전제로 출연금을 지원한 것으로 볼 수 있는 정황이 있음에도 삼성에 대해서만 기소를 단행했다"라며 "재단 출연금 지원과 관련해 뇌물죄를 적용하기 위해서는 대가관계가 합의에 따라 결정됐다는 점을 명확하게 밝혀내야 한다"라며 "단순히 출연금의 규모가 크다는 이유만으로 삼성에 대해서만 뇌물혐의를 적용한 것은 형평성에 어긋나는 결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