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서재근 기자] 뇌물공여 혐의 등으로 구속 수감된 지 50일 만에 첫 재판에 출석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8시간이 넘도록 이어지는 '마라톤 재판'에서 시종일관 곧은 자세를 유지하며 특검과 변호인단 양측의 진술을 경청하고 있다.
7일 오전 10시 서울 서초 서울중앙지방법원 청사 417호 대법정에서 형사합의27부(김진동 부장판사)의 심리로 이 부회장의 첫 공판이 진행됐다. '뇌물죄' 협의 적용 여부를 두고 특검과 삼성 측은 지난달 9일부터 세 차례에 걸쳐 진행된 공판준비기일 때와 마찬가지로 이날 재판에서도 치열한 법리 다툼을 벌이며 기선제압에 열을 올렸다.
반면, '날 선' 법정공방 속에서도 이 부회장이 앉아 있는 '피고인석'의 분위기만큼은 시종일관 차분했다. 이날 오전 9시 50분께 호송 차량을 타고 법원 청사에 도착한 이 부회장은 10분 뒤인 오전 10시 서울구치소 첫 수감 당시 때보다 다소 짧아진 머리 스타일을 유지한 채 회색 정장 차림으로 재판정에 들어섰다.
특히, 이 부회장은 재판 전부터 긴장한 기색을 감추지 못할 것이란 일각의 관측과 달리 재판정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검찰석에 앉아 있는 7명의 특별검사팀 한 명 한 명과 눈을 맞추고 묵례하며 차분한 태도를 유지했다.
특히, 재판 시작 전 직업을 묻는 재판부의 질문에 "삼성전자 부회장입니다"라며 덤덤하게 대답을 마친 이 부회장은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시종일관 정면을 응시한 채 곧은 자세를 유지했다. 함께 기소된 회사 수뇌부는 물론 변호인단과도 별다른 대화를 나누지 않은 채 오직 재판에만 집중했다. 수 시간 동안 이어진 재판 과정에서 이 부회장이 보여준 움직임은 두세 번의 '자세 고침'과 안경을 닦고 립밤을 바르는 행위가 전부였다.
오후 재판에서 특검이 공개한 박상진 전 삼성전자 대외부문 사장(전 승마협회장)의 진술 조서 내용 가운데 '박근혜 전 대통령이 삼성의 승마지원이 부실하다며 이 부회장을 호되게 꾸짖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 부회장이) 신문 등을 통해 박 전 대통령이 가끔 눈빛에서 레이저빔이 나온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다고 얘기했다' 등 다소 민감한 진술내용이 공개됐을 때도 이 부회장은 조금의 표정 변화도 보이지 않았다.
한편, 이날 재판에서 특검과 변호인단 양측은 이 부회장에게 적용된 뇌물공여와 횡령, 재산국외도피, 범죄수익은닉, 국회증언감정법 위반 혐의 적용 여부를 두고 설전을 벌였다.
특검은 "이 부회장이 경영권 승계를 비롯한 각종 현안에 대한 부정한 청탁의 대가로 박근혜 전 대통령의 '비선 실세' 최순실과 그의 딸 정유라 씨 등에 명마 구매 비용 등으로 298억 원에 달하는 뇌물을 제공했다"라며 삼성그룹 관련 뇌물사건을 '최순실 국정개입 사건'의 핵심으로 규정했다.
반면, 삼성 측은 특검의 주장과 관련, 공소내용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조목조목 반박했다. 우선 뇌물공여 혐의에 대해서는 "특검은 (삼성의) 정상적인 사업활동을 승계작업으로 매도했다. 특검이 주장하는 승계작업은 대가관계가 있는 것처럼 보이기 위한 '가공의 틀'에 불과하다"며 부인했고, 나머지 혐의에 대해서도 "혐의 적용의 근거가 되는 뇌물공여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 만큼 모든 범죄혐의도 인정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한편, 이날 재판에는 이 부회장 외에도 뇌물공여 혐의로 불구속기소 된 최지성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부회장), 장충기 전 미래전략실 차장(사장), 박상진 전 사장, 황성수 전 삼성전자 전무(승마협회 부회장) 등 삼성 수뇌부 4명도 출석했다.
이 부회장을 비롯한 삼성 수뇌부 다섯 명에 대한 2차 공판은 오는 13일 오전 10시 서울중앙지법 대법정에서 진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