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명재곤 기자]삼성그룹이 지난달 28일 이른바 ‘5대 쇄신안’을 발표하기 하루 전, 지인들 모임에서 '삼성의 대관(對官)조직 해체여부'가 화제로 떠올랐다. 삼성이 그룹 컨트롤타워격인 미래전략실에서 수행하고 있는 대관업무를 로펌 같은 외부기관에 위탁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와서다.
대관업무란 대체로 기업 경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정책·정치적 변수가 자사에 유리한 방향으로 형성될 수 있게끔 특정의 채널을 가동해 기업 입장을 피력하는 걸 말한다. 예컨대 정부가 모 사업권 면허를 추가로 발급할 때, 면허권 획득을 위해 요로와 접촉하고 이해를 구하고 우호적 환경을 만드는 행위 등이다. 반대로 부정적 경영 환경을 희석하고 방어하는 역할 또한 대관조직의 몫이기도 하다.
삼성 대관업무 가치를 이러쿵저러쿵 따지다 "대관업무를 로펌에 맡긴다는 것은 그룹의 핵심 관심사와 사안에 따라 치부를 외부에 드러낸다는 것인데 말이 되느냐"는 주장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좌중은 다음 입길로 넘어갔다. 대관업무 만큼은 삼성이 고유 조직체계에서 ‘조용히’ 활동할 것으로 판단했던 것이다.
기업의 명운이 인·허가와 규제로 엇갈리는 경우가 적지 않은 한국적 상황에서 대관조직이 기업의 또 다른 경쟁력으로 평가돼온 현실에 본의아니게 익숙해진 결과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삼성은 '대관업무 조직 해체'를 전격적으로 발표했다. 삼성그룹은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최순실 게이트’수사 종료 발표직후 미래전략실 해체와 대표이사·이사회중심의 자율경영, 대관조직 해체 등을 공식화했다. 삼성 내부는 물론 경제계가 크게 술렁였다.
구속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단호한 결심이 반영된 '쇄신안'으로 그룹안팎에서는 평가들 한다. 무엇보다도 대관업무 조직 해체를 명문화한 것은 정경유착 고리를 시스템적으로 완전히 끊겠다는 의지 표명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라 눈길을 끌었다. 그룹 기능으로서 대관업무 자체를 하지 않겠다는 게 삼성측 설명이다. 삼성 창사이후 첫 총수 구속이라는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특단의 조치를 취한 것이다.
이같은 삼성 쇄신안은 시대흐름과 맞물리면서 재계 전반에 걸쳐 다양한 변화와 새로운 문화를 형성할 단초가 될 것으로 보여진다. '삼성발 후폭풍'에 따른 기대와 우려가 공존한다는 게 재계 관계자들 일반적인 진단이다.
자의반 타의반 재계 향도 역할을 해 온 삼성의 탈바꿈이 여타 그룹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정치·경제적 역학구조때문이다.
연매출 400조 원, 임직원 50만 명의 글로벌 기업집단인 삼성이 ‘그룹’ 명패를 내리고 ‘각 사 자율경영’으로 진화 혹은 분화의 길로 들어섰다. 이 시대적 ‘팩트’가 경제에 던지는 파장은 상당기간 지속되면서 더불어 시행착오 비용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여 현명한 대처가 요구되기도 한다.
궁극적으로 정경유착에서 탈피해 투명하고 공정한 경영환경을 구축하겠다는 게 삼성 쇄신안의 시작이고 끝이다. 하지만 소기의 성과를 내기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고 사회적 이해와 공조도 때에 따라서는 요구될 수도 있다는 게 재계내부 시각이다.
단적으로 삼성내 회사별 자율경영이 '각자도생(各自圖生)'으로 치달을 경우에 기업집단의 장점인 합리적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는 없다. 각 사별 자사 우선·이기주의가 부딪힐 때 조정자격인 컨트롤타워가 없다면 마이너스 효과가 나올 수도 있다. 전문가들은 수직 계열화의 이점도 각자도생 자율경영 체제에서는 그 힘을 발휘하지 못할 소지가 적지 않다고 경계한다.
가령 정부의 고용창출 정책에 있어서도, 그룹단위에서 논의할 때와 개별 기업 차원에서 검토할 때 규모의 차이가 발생할 여지가 많다. 오너 체제의 그룹은 정부의 시선을 한번 더 의식하지만 전문 경영인이 이끄는 기업은 상대적으로 그렇지 않다. 이 때 사회 전체적인 '합(合)'의 크기를 최대화 하는 지혜를 도출하는 게 당연하지만 그룹 공채가 사라지는 삼성은 그 길을 찾는 태도와 결과가 아마 예전과 다를 공산이 크다.
고용외에 대형투자 및 인수합병, 각종 사회공헌 사업, 당국과의 정책공조, 시민단체와 갈등 등 전문경영인과 이사회가 선뜻 결정하기 힘든 그룹 공동격의 현안에 봉착했을때 조율의 사령탑 역할을 어디에서 맡을지도 삼성은 고민해야 한다.
삼성외의 여타 그룹들도 현 시점에서 그룹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기존 조직체를 어떻게 꾸려야 할지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 삼성의 쇄신안은 삼성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일부 시민단체가 지적하는 삼성 미전실의 주 문제점은 비공식적으로 그룹 주요 경영정책 의사결정과정에 관여하면서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시스템적 한계였다. 책임의 주체에서 벗어나 특정 오너 경영체제를 지탱하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담당하는 게 비판의 요체였다. 이 또한 삼성만의 개혁대상이 아님은 물론이다.
"그룹이 존재하는 한 컨트롤타워 기능은 필수불가결하다." 재벌체제 저격수인 경제개혁연대(소장 김상조 한성대교수)의 주장이다. 그룹전체의 시너지 효과를 위한 컨트롤타워 기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컨트롤타워를 숨기지 말고 투명하게 드러내라"고 요구한다. 컨트롤타워의 투명성 확보를 위한 장치로 외부 주주가 추천하는 독립적 사외이사의 활성화를 주문한다.
그동안 '거수기'오명을 쓰고있는 국내 사외이사제 실상을 따져볼때 유의미한 지적이나 이 또한 공감과 실현의 시간이 요구되는 대목이다. 일각에서는 권한과 책임을 양 손에 쥔 컨트롤타워의 기능적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삼성의 다음 행보를 기다린다.
삼성이 일대 대변혁의 한복판에 섰다.
삼성의 컨트롤타워 해체가 국내 오너 경영체제에 어떤 변화를 바람을 일으킬지 주목된다.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쇄신안이 재벌체제 적폐를 씻는 데에 일조를 한다고 판단된다면 주위에서는 조금은 여유를 갖고 삼성의 새 길을 지켜봤으면 한다. '사즉생(死卽生)'경영에 나선 이 부회장이 많은 이가 바라는 삼성의 새로운 미래를 성공적으로 그려나가길 지금은 지켜볼 시간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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