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장병문 기자] 담철곤(62) 오리온그룹 회장이 처형인 이혜경 전 동양그룹 부회장에게 고소당했다.
이혜경 전 동양그룹 부회장은 지난달 24일 제부인 담철곤 오리온그룹 회장을 특가법상 횡령혐의 등을 이유로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고소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혜경 전 부회장의 법률대리인은 2일 <더팩트> 취재진과 만나 "오리온 계열사인 아이팩은 이양구 동양그룹 창업주의 재산으로 원래 법적 상속인은 이관희 여사와 이혜경, 이화경 등에게 돌아가야 한다"며 "담철곤 회장은 상속인에게 동의를 구하지 않고 아이팩을 불법 횡령했다"면서 고소 이유를 밝혔다. 또 "이혜경 전 부회장은 아이팩 지분을 찾아 동양사태 피해자들의 손해를 복구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뜻을 강하게 내비쳤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오리온 관계자는 "아이팩은 담철곤 회장이 1988년 4월에 2억7000만 원에 인수한 개인회사이기 때문에 상속의 대상이 될 수 없다"며 이혜경 전 부회장 측의 주장을 반박했다.
그동안 이혜경 전 부회장은 아이팩 소유권 주장에 대해 소극적인 모습을 보여왔는데 이번 고소로 인해 담 회장의 아내이자 친동생인 이화경 오리온 부회장 등 가족들 간 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졌다. 친동생과의 관계와 동양사태 피해자들의 압박 속에서 고심하다가 결국 소송을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
◆이혜경 전 부회장, 동양사태 피해자 구제 위해 '소송 결심'
지난 2013년 발생한 동양사태의 피해자들은 담 회장이 동양그룹의 재산을 은닉 횡령했다고 보고 피해 구제를 위해 지속적으로 압박하고 있다. 동양그룹 채권자 비상대책위원회와 시민단체 약탈경제반대행동은 지난해 11월 29일 동양그룹 은닉재산 횡령 등을 이유로 담철곤 회장을 경찰에 고발했다가 증거를 보완해 검찰에 고발하기 위해 취하했다. 이후 동양그룹 채권자 비대위는 지난달 15일 조세포탈 혐의로 담철곤 회장과 아들 담서원 씨를 검찰에 고발했다. 이혜경 전 부회장도 고발 명단에 포함됐다. 동양사태 피해자 구제를 위해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김대성 동양그룹 채권자 비대위 수석대표는 "이혜경 전 부회장이 동양사태 피해자들의 강제 집행을 면탈하기 위해 재산을 은닉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이 전 부회장를 구속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아이팩이 현재 3000억 원 이상의 가치가 있다"며 "이혜경 전 부회장의 몫으로 1000억 원 이상 돌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혜경 전 부회장의 아이팩 지분을 동양사태 피해자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게 동양사태 피해자들의 논리다.
이에 따라 이혜경 전 부회장은 동양사태 피해자들의 주장을 수용, 피해 구제를 위한 방법으로 아이팩 상속 지분에 대한 소송에 나서게 됐다.
◆아이팩은 어떤 회사?
아이팩은 오리온에 포장지를 납품하는 회사다. 동양그룹 채권자 비대위가 제공한 고발장에 따르면 고 이양구 동양그룹 전 회장은 1988년 부도 상태였던 신영화성공업을 박병정 씨 명의로 차명 인수했다. 이양구 전 회장은 신영화성공업 지분 76.67%를 차명으로 보유했다. 당시 포장지 사업은 중소기업 고유 업종으로 지정돼 있어 이양구 전 회장이 실명으로 소유할 수 없었다. 이후 신영화성공업은 신농, 아이팩으로 사명을 변경했다.
이양구 전 회장이 1989년 타계하자 담철곤 회장이 아이팩을 관리했다. 2006년 중소기업 고유 업종 제도가 폐지되면서 아이팩의 실명전환이 가능했지만 담철곤 회장은 그대로 유지했다.
담철곤 회장은 2006년 홍콩에 자본금 119만 원의 '뉴 스텝 아시아'라는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했다. 이 회사는 2년 뒤 'PLI'(Prime Linked Investment)로 사명을 바꿨다. PLI는 2011년까지 아이팩 지분 46.67%를 사들였다. 담철곤 회장은 아이팩 지분 23.33%를 자사주로 매입하고 차명 지분 30%를 인수했다. 담철곤 회장은 아이팩 53.3% 지분으로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이후 담철곤 회장은 아이팩으로부터 2011년 201억 원, 2013년 151억 원 등 총 352억 원의 현금 배당을 받았다. 담철곤 회장은 2013년 아이팩이 거둔 순이익의 6배가 넘는 배당금을 챙겨 '황제배당'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오리온은 2015년 3월 아이팩을 흡수 합병했다.
오리온 측은 "1988년엔 이양구 전 회장이 의사결정을 할 수 없을 만큼 몸이 불편해서 경영에 물러서 있던 상황"이라며 이 전 회장이 아이팩을 차명 보유하지 않았다고 반박하고 있다.
◆왜 이제 와서 아이팩 소유권 주장하나?
이혜경 전 부회장은 자신의 변호인을 통해 "그동안 아이팩 소유권에 대해 알지 못하고 있다가 이번 일을 통해 확인하게 됐다"면서 "동양사태 피해자 구제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아이팩 소유권 논란은 지난해 11월 동양사태 피해자 모임과 약탈경제반대행동이 담철곤 회장을 경찰에 고발하면서 불거졌다. 당시 고발장에는 이혜경 전 부회장의 증언이 활용됐지만 이혜경 전 부회장이 직접 나서 고발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팩 소유권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당사자가 직접 나서야 하기 때문에 이혜경 전 부회장이 직접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이혜경 전 부회장은 동양사태 때 고가의 미술품을 빼돌려 매각한 혐의(강제집행면탈)로 2015년 12월 1심에서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현재 2심이 진행되고 있다. 이혜경 전 부회장으로서는 동양사태 피해자를 위한 구제 활동을 해야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동양사태 피해자들은 이혜경 전 부회장의 소극적인 대처에 분노하며 지난달 이 전 부회장을 강제집행 면탈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홍성준 약탈경제반대행동 사무국장은 "이혜경 전 부회장은 지난해 은닉재산을 스스로 고백하는 자필 자백서를 동양그룹 사기피해자에게 제공하고, 자신의 은닉재산이 환수되어 피해배상으로 쓰이길 바란다고도 밝혔으면서도 지금까지 그 어떤 조치도 하지 않았다"고 고발 이유를 밝혔다. 현재 재판을 받고 있는 이혜경 전 부회장으로써는 추가 고발이 부담되는 상황이다.
진퇴양난 상황에서도 이혜경 전 부회장은 고소를 망설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혜경 전 부회장의 장녀 현정담 씨가 오리온에서 근무하고 있다는 점도 이 전 부회장에게는 부담이 될 수 있다. 동양사태 피해자 모임의 한 관계자는 "이혜경 전 부회장은 아이팩 소유권 문제가 가족끼리 다투는 모습으로 비춰질까 우려하기도 했지만, 피해자 구제를 위해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결국 이혜경 전 부회장은 동양사태 수습을 위해 제부인 담철곤 회장, 동생 이화경 부회장과 등을 돌리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