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명재곤 기자] 주식시장은 다음 대통령을 알고 있을까. 투자자들은 특정기업의 주가 흐름에서 차기 대통령을 짚어낼 수 있을까. 이른바 '정치(대선) 테마주'뉴스를 접할때 문득문득 드는 의문점이다.
한국거래소가 이상급등세를 보이는 정치 테마주에 대해 집중 감시에 나섰다. 거래소는 지난 9일 올해 사업계획 설명회에서 "탄핵 정국과 조기 대선으로 어느 때보다 정치 테마주가 기승을 부릴 것"이라며 "예방활동을 강화하고 불건전 투자자에게는 강도높은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정치의 계절을 맞아 비상식적인 재료를 앞세워 시세 조종이나 주가 조작을 하려는 세력들에게 경고장을 날렸다.
거래소의 이같은 정책집행은 한편으로는 대통령 선거전후 정치 테마주들이 활개를 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걸 역설적으로 내비추고 있어 씁쓸하기도 하다. 특정 대선 후보의 등장과 사퇴, 지지율 추세에 따라 큰 폭의 롤러코스터 주가를 연출하는 테마주의 출몰이 낯설지 않은게 우리 증시의 민낯이기 때문이다.
지금 증시는 3개월여 뒤의 대선 결과를 카지노의 룰렛판으로 삼고 있다.
주식시장은 실물경기보다 앞서서 움직인다고 한다. 상장기업의 미래가치를 보고 투자자들이 손을 내밀기 때문이다. 주식시장은 사회 제반 현상을 반영하기도 한다. 기업 경영성적 뿐만 아니라 경제외적인 정치·사회·문화 요소가 주가의 등락 재료로 활용돼서다. 증시는 공인된 도박장이라는 말도 들린다. 돈으로 돈을 추구하는 '머니 게임'의 성격이 짙어서다. 투자와 투기의 경계선이 모호하다.
요즘 코스피·코스닥 주식시장의 하루 총 거래대금은 10조 원을 훌쩍 넘는다. 개인 및 기관, 외국인 투자자들이 매일 10조 원대의 유동성을 창출하면서 주가 등락에 따른 희비 쌍곡선을 그리고 있다.
개미 투자자인 개인들도 나름 자기 투자원칙을 잡고 황소(상승)와 곰(하락)의 가면을 쓰고 포지션을 취한다. 주식투자를 생업으로 삼는 전업투자자들도 주위에서 쉽게 찾아 볼수 있다. 하루에도 같은 종목을 두 세번이나 사고파는 초단타 투자자들은 기업의 가치를 보고 투자하라는 교과서적인 투자 권유는 귀에 들어 오지도 않는다.
단타매매 위주의 투자문화는 '테마주'의 온상이 된다. 단기차익이 성행하는 시장에서는 각종 테마주들이 뜨고 진다. 우리 증시의 부정할 수 없는 한 단면이다. 이러다보니 기업 펀드멘탈 중심의 중·장기 투자가 바람직한 것이라고 강권하는 전문가나 이를 따르는 개인 투자자들이 많지 않은 게 우리 현실이다.
증시는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 결과와는 상관없이 이미 대선정국에 들어섰다.
문재인·안희정·이재명·안철수 등 대선후보출마선언을 한 잠룡들을 포털에서 찾으면 연관 검색어로 '000테마주'가 따라 붙는다. 보수진영의 유력 후보로 거론되지만 심중을 드러내지 않는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을 검색해도 마찬가지이다. 주가는 대선을 선행하고 있다.
주식 투자 속성상 정치 테마주가 필요악으로 치부할 수는 있겠지만 그에 앞서 당국은 선의의 피해자가 나오지 않게끔 시장 감시체계를 십분 가동해야 한다. 주가의 급등락 과정에서 불공정 작전세력이 부당한 이득을 얻는다면 그만큼의 손실자가 속출할 수 밖에 없는게 증시 구조다. 한탕주의 투자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는 투자 문화를 형성하는 시장 안팎의 노력이 절실하다.
더불어 올해 정치 테마주는 시장 외적인 부작용을 일으킬 소지도 안고 있어 당국의 별도 대책마련이 요구된다.
단적으로 주식 작전세력이 정당의 대선후보 경선에 영향을 미칠수 있는 루머를 조작하거나 경선과정에 변칙적으로 참여해 증시 흐름을 왜곡시킬수 있어서다.
지금까지 각종 여론조사를 감안할때 이번 대선은 정권교체 열망이 큰 것으로 보이고, 정당 지지율의 경우 더불어민주당이 크게 앞서고 있다. 일각에서는 민주당 대통령 후보경선이 대선 본선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이런 가운데 특정의 정치 테마주 투자자들은 민주당 후보 경선에 참여해 테마주 관련 경선후보를 지지하자는 글들을 증권전문사이트에 올리면서 물의을 빚고 있다.
" '000테마주'를 보유한 투자자들은 민주당 후보경선 선거인단으로 참여해 '000후보'를 선택하자"며 정당의 후보경선을 주가관리에 이용하는 행태마저 나오는 실정이다. 반대로 상대방 후보를 악의적으로 비방하고 근거없는 악성 루머를 유포하는 사례들도 적지 않다.
문재인 전 당 대표, 안희정 충남지사, 이재명 성남시장 등 민주당 후보군에 대한 지지 및 반대 여론이 테마주와 연계돼 어느때 보다 요란스럽고 상식적으로 수용하기 힘든 일방적 주장들도 적지 않다. 투자자가 아니더라도 사이트에 등록하면 자신의 정치적 주장을 펼수 있어 세상의 다양한 정보가 유통되는 주식시장이 정치 교란장으로 흐려질 우려가 있다.
민주당이 후보 경선과정에서 다른 당 지지자들의 역선택을 경계하고 있는 상황에서 특정 테마주 투자자들의 선거인단 참여독려 행위가 증권거래법 등에 저촉되지 않는지 당국은 특히 따져봐야할 것이다.
증시는 지금 어느 잠룡을 지지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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