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장병문 기자] '부자는 망해도 삼 년 먹을 것이 있다'는 속담이 있다. 이 말을 들여다보면 부자가 망한 것은 실제로 망한 것이 아니라 겉으로만 망했다는 의미에 가깝다. 뒤로 실속을 챙겼다는 뜻이다. 우리 사회에서 망한 부자들이 여전히 잘살고 있는 모습을 흔하지 않게 볼 수 있어 어느 정도 맞는 말이다.
대규모 사기성 기업어음(CP) 발행으로 수많은 피해자를 낸 현재현 전 동양그룹 회장이 수감된 지 3년이 됐다. 그사이 법원은 채권자들이 낸 현재현 전 회장의 개인파산 신청을 받아들이기도 했다. 한때 재계서열 10위권에 있던 동양그룹이 무너진 이후 오너가 일가에게는 무엇이 남았는지 <더팩트>에서 살펴봤다.·
◆ 3년의 시간 흐른 '동양사태'
서울대 법대 3학년 때 사법고시에 합격한 현재현 전 회장은 1976년 이양구 동양그룹 창업주의 장녀 이혜경 동양그룹 부회장과 결혼하면서 사업가의 길로 들어섰다. 현재현 전 회장은 우리나라 재계 최초로 사위경영을 열었던 인물로 동양그룹을 종합금융기업으로 키웠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와 건설경기 부진 여파로 흔들리면서 자금 차입과 자산 매각으로 그룹의 회생을 노렸지만 결국 '동양사태'를 불렀다.
동양사태는 동양그룹이 발행한 회사채와 기업어음의 상환 실패로 주요 계열사의 법정관리를 신청한 사건이다. 부도 직전 상환능력이 없는 기업어음과 회사채 등을 판매해 4만 명의 피해자가 발생했다. 피해 규모는 1조7000억 원에 달했다.
검찰의 수사에서 불완전판매와 계열사 부당지원, 주가조작 정황 등이 드러났고 현재현 전 회장은 2015년 10월 대법원에서 징역 7년형을 확정받아 현재 3년가량 수감 생활을 하고 있다. 법원은 지난해 9월 채권자들이 현재현 전 회장에 대해 신청한 개인파산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현재현 전 회장은 법원 결정에 불복해 항고했다.
현재현 전 회장의 개인파산이 인정되면 법원이 나서서 재산을 파악하고 피해자들에게 배당 하게된다. 하지만 개인파산 신청이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피해자들이 직접 현재현 전 회장의 재산을 파악해야 하는데 쉬운 일이 아니다.
현재 현재현 전 회장 명의 재산으로는 서울 성북동 주택과 미술품 경매 대금 공탁금, 티와이머니대부 주식 16만 주, 강원도 부동산 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위에서는 현재현 전 회장 일가의 재산 규모를 1000억 원 수준으로 추정하고 있다.
◆ 이혜경 전 부회장의 한옥 주택 가보니...
부호들의 마을로 불리는 성북동 330번지 일대에 위치한 현재현 전 회장의 자택은 아내 이혜경 전 동양그룹 부회장과 공동 소유다. 토지면적 1478㎡에 지하 2층~지상 3층 단독주택으로 지난해 1월 국토교통부 조사 기준 주택은 16억2000만 원, 토지는 55억 원으로 총 71억2000만 원에 달한다. 성북동 부동산 관계자는 현재현 전 회장 자택 시세가 100억 원을 훌쩍 넘을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현 전 회장의 자택과 부지 가격은 2010년 이후 매년 오름세다.
현재현 전 회장의 성북동 자택 바로 옆집은 손아래 동서인 오리온그룹 담철곤 회장의 집이며, 이곳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장모인 이관희 여사의 자택이 있다. 이관희 여사의 자택은 공시지가 23억9000만 원, 토지는 17억 원이다.
현재현 전 회장의 자택 내부에는 빨간 '압류 딱지'가 부착되어 있으며 현재 아무도 살고 있지 않다. 이혜경 전 부회장은 지난해 성북동 자택에서 약 3km 떨어진 북촌 한옥마을 한 주택에 최근까지 거주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혜경 전 부회장이 살았던 한옥마을 자택은 목조 기와지붕의 단층 주택으로 토지면적 79.33㎡이다. 성북동 자택과 비교했을 때 소박한 수준이다. 해당 주택은 이혜경 전 부회장의 모친 이관희 여사가 지난해 1월 보증금 5억 원으로 4년간 전세 계약을 맺은 것으로 확인됐다.
북촌 한옥마을은 서울의 주요 관광지로 하루에도 4000~5000명의 내외국인 관광객이 찾는 등 북적이는 곳이다. 목조와 기와로 만들어진 이혜경 전 부회장 자택 출입문은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사진 찍기 좋은 장소가 되기도 한다.
이혜경 전 부회장의 한옥 주택을 관리한다고 밝힌 한 남성은 "이혜경 전 부회장이 이곳에 혼자 거주 중"이라고 말했지만, 동양그룹 전 직원은 "이혜경 부회장이 최근 북촌 한옥마을을 떠나 성북동에 살고 있는 딸의 집으로 들어갔다"고 말했다.
현재현 전 회장과 이혜경 전 부회장은 현정담, 현승담, 현경담, 현행담 씨 등 1남 3녀를 두고 있다. 장녀 현정담 씨는 이모부 회사인 오리온에서 일하고 있으며, 외아들인 현승담 씨는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정담 씨와 현승담 씨는 함께 동양그룹 경영에 참여했지만 회사가 공중분해 된 후 다른 길을 걷고 있다.
현재 동양사태 피해자들은 현재현 전 회장과 함께 이혜경 전 부회장의 처벌도 요구하고 있는 상태다. 동양피해자대책협의회는 "동양사태로 현재현 전 회장과 임원들이 처벌을 받았지만 이혜경 전 부회장은 처벌을 피했다"면서 "법조비리로 감옥에 간 홍만표 변호사가 불법로비를 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혜경 전 부회장은 동양사태 때 고가의 그림을 빼돌려 매각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혜경 전 부회장이 항소하면서 2심이 진행되고 있다.
동양사태피해자대책협의회에 따르면 현재현 전 회장은 5353억 원 채무를 지고 있다. 현재현 전 회장과 이혜경 전 부회장의 재산인 성북동 자택과 티와이머니대부 주식, 미술품, 강원도 부동산 등을 모두 더해도 1000억 원 수준으로 피해자들을 모두 구제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법원은 동양사태로 이혜경 전 부회장을 처벌하지 않았지만 피해자들은 그가 경영에 참여한 것을 이유로 일부 책임이 있다면서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또 이들은 "이혜경 전 부회장이 오리온 계열사인 아이팩에 대한 1000억 원 이상의 소유권이 있다"면서 "피해자 구제에 쓰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동양사태가 3년이 지났지만 피해자 대책 마련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현재현 전 회장과 이혜경 전 부회장은 여전히 논란의 중심에 서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