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서민지Ⅱ 기자] 오랫동안 보험업계의 화두로 자리 잡은 '자살보험금 지급' 논란이 생명보험사(생보사)들의 지급 결정으로 매듭을 짓는 듯하다. 하지만 삼성·한화·교보 등 생보사 '빅3'의 자살보험금 지급 기준을 두고 다시금 잡음이 새어 나오고 있다.
16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빅3' 생보사들은 자살보험금 미지급 건에 대해 일부 지급을 결정했다. 가장 먼저 자살보험금 일부 지급을 결정한 곳은 교보생명이다. 교보생명은 보험금이 아닌 '위로금' 명목으로 자살보험금을 지급하기로 했고, 뒤따라 한화생명이 자살보험금 일부 지급에 동참했다. 삼성생명의 경우 자살보험금과 함께 금액 일부를 자살예방사업에 쓰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관건은 자살보험금 지급 기준 시점에 있다. 교보·한화생명은 2011년 1월 24일 이후 청구된 자살보험금 미지급 건에 대해 보험금을 지급할 계획이다. 이를 기점으로 삼은 이유는 이때부터 보험업법 개정으로 '기초서류(약관) 준수 위반' 규정이 법제화되면서 보험사들이 약관을 준수해야 할 의무가 생겼기 때문이다.
삼성생명의 경우 2012년 9월 6일 이후 미지급 건에 대해 자살보험금을 지급하고, 2011년 1월 24일부터 2012년 9월 5일 사이의 미지급 건에 해당하는 자살보험금은 자살예방사업에 쓸 계획이다. 금융 당국이 자살보험금 지급을 권고한 2014년 9월 5일에서 소멸시효인 2년 전부터를 지급 대상으로 결정한 것이다.
삼성생명은 미지급 보험금 1608억 원 가운데 400억 원, 교보생명과 한화생명은 각각 미지급 보험금 1134억 원, 1050억 원 중 200억 원씩을 지급할 것으로 보인다. 미지급 자살보험금 중 실제 지급액은 많게는 25%에서 적게는 15% 내의 수준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자살보험금 일부 지급이 금융 당국의 제재를 피하기 위한 '꼼수'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 12월 금융감독원(금감원)은 대법원 판결과 별개로 자살보험금 미지급은 보험업법 위반이라며 보험금 지급을 지시했다. 자살보험 미지급 생보사에는 영업 일부 정지부터 영업권 반납까지, 보험사 대표에는 문책경고에서 해임권고 조치 등 중징계를 내리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라 최고경영자(CEO) 교체까지 일어날 수 있어 생보사들이 이를 막기 위해 뒤늦은 결정을 내렸다는 게 업계의 지적이다. 특히 '전부'가 아니라 금감원의 권고나 조치에 맞게 '일부'를 지급하는 만큼 소비자의 권리가 아닌 당국의 제재를 피하기 위한 것이라는 지적에 힘이 실린다.
소멸시효와 상관없이 전액을 지급하기로 한 ING·신한·메트라이프·흥국·하나·알리안츠·동부생명 등 중소형생보사들의 행보와 비교하는 의견도 나온다. 이들 중소형생보사들은 "자살보험금을 지급하되 소멸시효가 지났으면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는 대법원 판결에도 금감원의 권고에 따라 전액 지급을 결정한 바 있다.
금융소비자연맹 관계자는 "보험사가 자살보험금 지급을 약관에 포함시켰다가 말을 바꿨기 때문에 소멸시효는 의미가 없다"며 "소멸시효와 상관없이 모두 지급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반면 일각에서는 자살보험금 지급을 두고 다양한 관점을 고려해야 하는 만큼 어쩔 수 없는 결정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보험사의 한 관계자는 "소멸시효를 두고 대법과 금융 당국의 시각이 다른 상황 속 배임 등의 문제를 고려해 시점을 나눌 수밖에 없었다"며 "소비자들의 비판은 피할 수 없겠지만,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라 생각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