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지의 경제in] 주진형 '사이다' 증언이 되레 씁쓸한 '최순실 청문회'

지난 6일 국회에서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1차 청문회가 열렸다. 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사장(위)과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배정한 기자

[더팩트ㅣ서민지Ⅱ 기자] "양심에 따라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하고 만일 거짓말이 있으면 위증의 벌을 받기로 맹세합니다"

나라를 혼란 속에 빠뜨린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해 국회 국정조사 청문회가 진행되고 있다. 청문회에 들어서는 증인들은 위 내용을 담은 선서문을 바탕으로 증인 선서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증인들은 감추기 급급했고, 선서문에 충실한 이는 주목을 받았다.

'청문회 스타'로 떠오른 인물이 있다. 1차 청문회에 참고인으로 출석한 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사장이 그 주인공이다. 그는 특조위원들의 질문에 당황하거나 지체되는 것 없이 즉답하며 답답한 국민들의 속을 뻥 뚫어줬다. 고구마 같은 청문회에 시쳇말로 '사이다' 역할을 해준 것이다.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비롯해 커뮤니티에서는 '주진형'이라는 이름이 수시로 거론될 정도로 온라인에서 큰 화제가 되고 있다. 청문회가 끝난 뒤 수많은 총수들을 제치고 포털사이트 인기검색어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이날 청문회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가운데)을 비롯해 9개 그룹의 총수가 한자리에 불려 나왔다. /배정한 기자

주 전 사장이 '청문회 사이다'로 떠오르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주 전 사장은 청문회에서 지난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한화그룹의 개입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대해 부정적인 보고서를 쓰지 말라는 압력이 있었고,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또다시 연락이 왔다"며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물러나야 할 것이라고 압박했다"고 주장했다.

삼성그룹의 압력도 인정했다. 그는 "삼성그룹의 지인들로부터 연락을 받았다"며 "당시 한화증권이 보유한 제일모직 주식 3만9000주(0.02%)에 대해 의결권을 위임해달라고 요청했고, 이 역시 거부하자 그룹에서 다시 부르더라"라고 말했다.

이처럼 주 전 사장은 내로라하는 재벌총수들 앞에서 기죽은 모습 없이 당당하게 발언을 이어가며 소신 있는 모습을 보여줬다. 특히 "잘 모르겠다",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앞으로 노력하겠다" 등으로 질의를 피해가던 총수들과 대조돼 더욱 부각될 수밖에 없었다.

주 전 사장에 쏠린 관심에 한편으론 씁쓸함마저 든다. 진상 규명을 위한 청문회에서 사실 그대로 증언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모두가 당연한 일을 하지 않으니 당연한 일을 한 사람이 주목받는 세상이 된 것 같다.

"20년 후에도 거긴 그럽니까. 그래도 20년이 흘렀는데 뭐라도 달라졌겠죠?"

올해 초 인기리에 방영됐던 tvN 드라마 '시그널'에서 각종 비리에 답답해하던 과거의 이재한(조진웅)이 현재의 박해영(이제훈)에게 던진 질문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청문회를 보고 있자니 1988년 일해재단 청문회와 달라진 점이 무엇인지 필자 역시 묻고 싶어진다.

jisseo@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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