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화성=권오철 기자] '원청업체의 갑질'은 영원히 막을 수 없는 숙제인가. 현대모비스와 현대엔지니어링이 관련 하청업체 근로자의 근로계약서 조작 및 부당해고 정황을 묵인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근로자가 해고되는 부당한 피해를 입었다는 주장이 제기돼 논란이 일고 있다.
25일 경기도 화성시 현대모비스 이화공장에서 경비 업무를 담당했던 오 모(44)씨는 "현대모비스와 현대엔지니어링이 하청업체 대덕휴비즈의 근로계약서 조작과 부당해고 민원을 고지받았으면서도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아 결국 해고됐다"면서 부당해고 관련 법적 투쟁을 외롭게 펼치고 있다.
노사관계를 전문으로 하는 한 노무사는 이와 관련 "대기업이 하청에 재하청을 주는 목적은 하청업체에서 발생하는 문제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것"이라면서 "원청에 직접적인 책임을 묻기는 어렵지만 도의적으로는 문제가 된다"고 지적했다. 이에 현대모비스 측은 "현대엔지니어링에 문의하라"고 책임을 떠넘기고 현대엔지니어링 측은 "하청업체의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계약 종료 날짜 없는데 '계약 종료 해직 통보'
현대모비스는 자사 공장의 경비 업무를 현대엔지니어링 자산관리실에 일임했다. 현대엔지니어링은 이를 다시 경비업체인 대덕휴비즈에 맡겼다. <더팩트>가 입수한 녹취록에 따르면 대덕휴비즈 관계자는 지난해 12월 30일 오 씨에게 "계약 기간이 만료됐다"면서 "다음 날 해직된다"고 통보했다.
하지만 오 씨는 현대모비스 보안팀과 현대엔지니어링 자산관리실 관계자에게 "근로계약서에 끝나는 날짜를 쓰지 않았는데 (대덕휴비즈 ㅇㅇㅇ차장은) 퇴직일이 12월 31일까지라며 재계약이 없다고 한다"라며 "알아봐 달라"고 도움을 요청했다. 이어 오 씨는 "만약 사실이 아니거나 근로계약서를 위·변조할 경우 부당해고에 해당하지 않느냐"고 묻기도 했다.
오 씨는 "근로계약서에 근로 시작일은 기입했지만 퇴직일은 쓰지 않았다"면서 "대덕휴비즈가 노동부에 제출한 근로계약서에 쓰인 퇴직일은 조작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현대모비스와 현대엔지니어링 관계자는 오 씨의 질의를 받고도 어떠한 대응도 하지 않아 문제를 키웠다고 한다. 결국 오 씨는 다음 날인 지난해 12월 31일 해고됐다. 오 씨는 "대덕휴비즈가 근로계약서 조작을 해서까지 해고를 추진한 사실상의 이유는 내가 지난해 11월 노동부에 회사의 임금체불 문제를 노동부에 진정서를 넣은 것과 이와 비슷한 시기에 내부비리를 제보를 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오 씨는 지난해 11월 직원의 비리 등을 현대모비스 보안팀에 제보했으며, 이후 오 씨가 제보한 사실이 현대엔지니어링과 대덕휴비즈 측에 공개된 것으로 나타났다.
오 씨는 올해 3월 중앙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관련 진정서를 제출했지만 4개월 후인 지난 7월 증거 불충분 등의 이유로 기각됐다. 이때 대덕휴비즈가 노동위원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회사는 오 씨의 해고 사유를 '(내부비리 제보 당시)보고 절차를 어겼기 때문'이라고 밝힌다.
이후 4개월이 흐른 올해 11월 4일 오 씨는 정보공개 신청을 통해 지난해 9월 대덕휴비즈가 노동부에 제출한 근로계약서 사본을 입수했다. 해당 근로계약서에는 근로계약기간 기입란에 근로 시작일은 있으나 퇴직일은 공란으로 돼 있다. 근로계약서 작성 시 퇴직일을 쓰지 않았다는 오 씨의 주장을 뒷바침하는 증거가 확보된 셈이다.
대덕휴비즈는 지난해 9월과 12월 두 차례 오 씨의 근로계약서를 노동부에 제출했다. 9월 제출한 오 씨의 근로계약서는 대덕휴비즈가 '감시·단속적 근로종사자 사업' 인가신청을 위해 다른 직원들의 근로계약서와 함께 제출한 것이다. 해당 사업은 근로기준법의 일부가 적용되지 않아 주휴수당 및 연장·휴일 근로에 대한 가산수당을 지급하지 않아도 돼서 사업자의 임금부담이 경감된다. 대덕휴비즈는 이 같은 이점을 적용받기 위해 직원들의 근로형태가 변경될 때마다 직원들의 근로계약서를 새롭게 작성해 노동부에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대덕휴비즈는 3개월 후인 지난해 12월쯤 근로계약서를 또 한 번 노동부에 제출한다. 이는 오 씨가 지난해 11월 대덕휴비즈의 임금체불 문제로 노동부에 진정서를 넣은 것과 관련한 제출이다. 오 씨는 임금 문제와 관련해 노동부의 조사를 받으면서 대덕휴비즈가 제출한 자신의 근로계약서 사본을 지난해 12월 입수했다. 여기에는 근로계약 종료 날짜가 기입돼 있다.
◆대덕휴비즈도 계약서 조작 '시인'
대덕휴비즈 측은 노동부에 제출한 두 근로계약서 중 하나가 조작됐다는 사실을 시인했다. 다만 지난해 12월에 제출한 근로계약서가 원본이라고 주장했다. 대덕휴비즈 관계자는 "종료일자가 적혀 있는 근로계약서가 원본이다"면서 "감시단속적 근로사업장의 승인을 받기 위해서 제출한 것인데 종료 일자가 있으면 문제의 소지가 있을 것 같아서 지워서 제출했다"고 말했다.
오 씨 외의 다른 대덕휴비즈 직원들 6명도 지난해 9월 작성한 근로계약서에 근로계약 종료일을 기입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은 지난해 9월 이전부터 대덕휴비즈에서 근무하고 있었지만 9월 1일부터 시작하는 근로계약서를 다시 작성하고 근무종료일은 공란으로 비워뒀기 때문에 특별한 계약해지 사유가 없는 한 이듬해 자동으로 계약이 연장된다. 노동부는 이들 대덕휴비즈 직원들을 정규직 근로자로 이해했다.
노동부 관계자는 "(오 씨와 함께 근무했던 근로자들의) 근로계약서에 입사일자는 나오고 퇴사일자는 기재돼 있지 않았다"면서 "이들은 근로계약서상 정규직 근로자다"고 말했다. 또 이 관계자는 "무기계약직을 기간제로 변경한 것은 문제가 있다"면서 "이를 적용하지 않았다면 모를까"라고 말했다.
하청업체에서 이 같은 근로계약서 조작과 부당해고 의혹이 일고 있는데도 원청인 현대엔지니어링과 현대모비스 측은 이를 묵인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지만 이들 원청업체들은 하청업체인 대덕휴비즈의 일에 일체 개입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현대엔지니어링 현대모비스 '모르쇠'
지난해 12월 오 씨로부터 부당해고 민원을 받은 현대모비스 보안팀 관계자는 <더팩트>와 통화에서 당시 오 씨로부터 받은 문자에 대해 "잘 모르겠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른 현대모비스 관계자는 "현대엔지니어링에 문의해달라"고 말했다. 현대엔지니어링 관계자는 "이는 업체(대덕휴비즈)가 책임져야 할 문제다"면서 "우리의 소관은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이 관계자는 하청업체에서 근로계약서 위조가 발생하더라도 현대엔지니어링이 개입할 수 없는 것이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민주노총의 한 관계자는 오 씨가 처한 상황에 대해 "계약 당사자 일방의 동의 없이 계약서를 수정하거나 추가하게 되면 계약서 자체가 효력이 없다"면서 "이 경우 근로계약 종료에 따른 해고처분은 무효가 된다"고 말했다. 이어 "회사가 근로계약서 내용을 임의로 지운 죄는 따로 두더라도 회사는 계약 종료일이 기재된 계약서가 원본이라는 주장을 객관적으로 입증해야 한다"면서 "입증을 못 하게 되면 지금 나타난 자료로는 지난해 9월 제출한 계약서가 원본이고 나중에 회사가 기재를 했다고 보는 게 순서상 맞다. 따라서 부당해고가 성립된다"고 말했다.
한 노무사는 "대기업들이 불법파견 문제가 불거지니까 회사를 이 같은 문제와 철저하게 분리를 하고 법적인 문제를 회피하기 위해 하청에 재하청을 주는 것이다"면서 "하청 업체의 해고 및 임금 문제를 원청에 책임을 묻는 것은 표면적으로는 어렵지만 도의적으로는 충분히 문제가 된다"고 말했다.
대한법률구조공단 측 역시 현대모비스와 현대엔지니어링의 도의적 책임을 지적했다. 법률구조공단 관계자는 "원청 업체가 비리 제보자의 신원을 외부로 공개한 것에 대해 법적으로 책임을 묻는 것은 쉽지 않겠지만 도의적인 책임을 묻는 것은 가능하다"고 말했다.
오 씨는 행정법원에 부당해고와 관련 항소장을 제출한 상태다. 새롭게 입수한 근로계약서 사본을 증거물로 제출했다. 오 씨의 부당해고 주장에 대해 법원이 어떤 판결을 내릴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