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서재근 기자] 재계 전반에 퍼진 불안 심리가 좀처럼 사그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실세' 최순실 씨 국정 농단 사태를 수사하는 검찰이 연일 청와대를 향해 강경 대응에 나서고 있는 가운데 지난해 7월 박 대통령과 기업 총수와 독대 과정에서 미심쩍은 부분에 대해 대면조사가 필요하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업계 안팎에서 검찰이 사실상 박 대통령의 '뇌물죄' 적용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란 관측에 무게가 실리자 '피해자'에서 '피의자'로 처지가 바뀔지 모른다는 불안이 확산하고 있는 분위기다.
22일 '최순실 게이트'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는 "(박 대통령과 재벌 총수 간 독대 과정에서) 미심쩍은 부분과 관련해 대통령 대면조사가 필요하다"며 23일 박 대통령의 대면조사 일정을 변호인 측에 통보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검찰의 강경 대응에 재계가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는 박 대통령에 대한 '뇌물죄' 성립 여부 때문이다. 재벌 총수와 대통령 사이의 부정청탁 정황을 수사하는 검찰이 '미심쩍다'고 밝힌 내용에 대한 해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우선 박 대통령이 기업 총수들에게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 지원을 노골적으로 강요했는지 살피려는 조치라는 것이다.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강요 등 혐의로 최순실 씨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을 구속기소 한 검찰은 최근 중간 수사 결과 발표에서 이미 박 대통령이 이들과 공모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때문에 독대 관련 대면조사가 '대가성' 여부가 아닌 '강요에 의한 상납' 쪽에 초점을 맞추고 진행될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또 다른 하나는 기업과 청와대 사이에 모종의 거래가 있었는지를 살피기 위해 대면 조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검찰은 일부 기업에 불거진 '대가성 로비' 의혹에 대해서 아직 수사를 진행 중이다. 만일 재단 출연금 지원을 비롯한 추가 지원의 대가로 정부가 그룹 경영에 일정 부분 개입한 정황이 드러날 경우 관련 기업은 하루아침에 공모자 신세가 될 수도 있다.
제3자 뇌물제공은 '쌍벌죄'로 말 그대로 받은 쪽과 준 쪽 모두 처벌 대상이 되는 만큼 검찰이 박 대통령에 뇌물수수 혐의를 적용할 경우 직간접적으로 자금을 지원한 기업도 형사 책임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최순실 게이트' 여파가 재계 쪽으로 확산하고 있는 것과 관련해 재계는 "사태를 지켜보겠다"는 반응을 보이면서도 기업 이미지 실추 등 부작용에 대한 우려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총수들이 직접 검찰에 출석해 참고인 조사를 받는 등 기업마다 검찰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있지만, 이번 사태로 대기업을 바라보는 세간의 시선이 부정적으로 바뀌지 않을까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나온다"라며 "사실상 피해를 본 것은 기업인데 마치 (기업 총수가) '정경 유착'의 공범인 것 같은 분위기가 조성되는 것 자체가 부담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10대 그룹 관계자는 "삼성 압수수색에 이어 기업 총수들에 대한 줄소환에 이어 진상규명 국정조사특별위원회의 청문회 증인 채택까지 하루가 멀다고 총수 이슈가 터져 나오고 있다"라며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운 시기에 직면한 재계에 정부가 힘을 실어주기보다 오히려 발목을 잡는 형국"이라며 안타까운 반응을 보였다.
한편, 국정 농단 사태 진상규명 국정조사특별위원회는 전날 지난해 7월 박 대통령과 독대한 것으로 알려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본무 LG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손경식 CJ그룹 회장을 비롯해 20여 명의 증인을 채택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