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서민지Ⅱ 기자] 생각해 보니 갈수록 현금 만질 일이 줄어드는 것 같다. 식당이나 카페는 물론 편의점 등 소액결제를 할 때도 현금보다는 카드를 꺼내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의 카드 사용이 늘어나면서 이젠 '껌 한 통'도 카드로 결제하는 시대가 됐다.
가맹점은 소액결제를 거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여신전문금융업법상 신용카드 가맹점이 카드결제를 거부하거나 수수료를 소비자에게 전가하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
하지만 보험업계에서는 카드 가맹점 계약을 아예 맺지 않는 등 카드결제 거부가 확산되는 모양새다. 동부생명은 12월부터 일부 전화판매(TM) 상품을 제외한 나머지 보험상품의 보험료 카드결제를 중단키로 했다.
올 하반기 들어 생보사들의 카드납부 중단 행렬은 줄줄이 이어지고 있다. AIA생명은 지난 7월부터 보장성보험을 제외한 상품의 카드납부를 중지했고, 지난 8월 KDB생명은 모든 상품에, 9월 신한생명은 TM과 인터넷 전용상품을 제외한 보험상품에 대한 카드납부를 중단했다.
저금리·저성장 기조가 장기화되자 생명보험사(생보사)들이 불황을 이겨내기 위해 이같은 방안을 결정한 것이다. 이전부터 교보·한화·알리안츠·ING·푸르덴셜생명 등은 모든 상품에, 삼성·농협·흥국·미래에셋생명 등은 일부 상품을 제외하고 카드납부를 받고 있지 않는 상태다.
생보사 측은 저금리로 인한 수익 악화와 과거 판매한 고금리 확정형 상품 때문에 발생하는 역마진 비용을 줄이기 위한 방안이라고 설명한다. 실제 보험사들이 신용카드사에 내는 카드수수료는 납입보험료의 2%를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1%대 초저금리 속 매달 보험 가입자들이 내는 보험료에 2% 이상의 수수료를 부과한다니 부담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수익성을 이유로 보험료의 카드납부를 거부하는 것은 소비자들의 편의성을 무시하는 행태라는 비판이 나온다. 해마다 수조 원의 당기순이익을 남기는 생보사가 불황으로 인한 부담을 소비자에게 떠넘기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또한 몇 년 전부터 중소형보험사에 앞서 대형보험사가 먼저 카드결제 거부에 나선 점을 보면 단순히 수익성 악화에 대한 대처로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수익 부풀리기'라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한다.
생보사들은 최근 소비자들에게 신뢰감을 깨뜨리는 행보를 걷는 듯하다. 자살보험금이 불신감을 심어준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자살을 '재해'로 인정하느냐에는 의견이 나뉠 수 있지만, 보험사가 약관에 포함한 사항이라면 인정해주는 것이 마땅하다. 자살보험금 미지급은 단순히 '재해를 인정하지 않았다'가 아닌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인식을 심어주기도 했다.
카드납부도 마찬가지다. 고객의 편의성을 위해 보험료 카드 수납을 도입했던 보험사들이 갑작스레 서비스를 중단한 데서 고객과 교류는 찾아볼 수 없다.
보험산업은 신뢰도 제고가 매우 중요하다. 다수의 고객을 상대하는 보험사에 수수료가 큰 부담일 수 있으나 소비자들 입장에서는 돈 몇 푼 때문에 선택권이 제한되고 '손해 본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