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박대웅 기자] 그 남자와 그 여자 사이에 어떤 사정(事情·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일의 형편)이 있어서 천륜이라는 부정(父情)보다 강한 사정(私情·개인의 사사로운 정)을 이뤘을까.
롯데그룹 창업주 신격호 총괄회장과 그와 사실혼 관계인 서미경 씨 모녀를 두고 하는 말이다. 신 총괄회장은 두 아들인 신동주·동빈 형제보다 더 많은 롯데그룹 지주회사 지분을 서미경·신유미 모녀에게 준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과 재계에 따르면 서 씨와 딸 신유미 씨는 각각 개인 지분과 모녀 소유회사(경유물산) 지분을 합쳐 모두 6.8%의 일본 롯데홀딩스 지분을 갖고 있다. 이 지분은 애초 신 총괄회장 소유분이었지만, 검찰은 신 총괄회장이 1997년 이후 서 씨 모녀에게 양도, 편법 상속을 통해 지분을 넘긴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롯데그룹 오너 일가 중 가장 많은 지분이다. 서 씨 모녀의 지분은 롯데가 장남인 신동주 SDJ코퍼레이션 회장 1.6%와 차남인 신동주 롯데그룹 회장의 1.4%보다도 압도적으로 많다. 신 총괄회장은 0.4%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
본론에 앞서 이 대목에서 드는 궁금증부터 해결하고 가자.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3.55%의 지분으로 재계 서열 1위 삼성전자를 좌지우지한다. 때문에 7%에 육박하는 지주사의 지분을 가진 서미경 씨가 롯데그룹 경영 전반에 나설 수 있지 않느냐는 의문이 든다.
결론부터 말해 서 씨가 롯데그룹 경영 전반에 나서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이유는 롯데그룹의 독특한 지배구조 때문이다. 앞서 '왕자의 난' 과정에서 진행된 세 차례 일본 롯데홀딩스 주주총회에서 볼 수 있듯 롯데그룹은 일반 주식회사와 달리 의결권 있는 주식이 여러 분파로 쪼개져 있다.
일본 롯데홀딩스 주식은 과장급 이상 직원 130명으로 구성된 종업원지주회가 27.8%로 가장 많은 지분을 소유하고 있고, 미도리상사·그린서비스 등 롯데홀딩스 관계사 협의체 공영회가 13.9%로 뒤를 잇고 있다. 이어 롯데홀딩스 임원 그룹인 임원지주회가 6%를 소유하는 등 주요 주주 집단이 대표를 두고 구성원의 뜻을 취합해 주주총회에서 의결권을 행사한다. 더욱이 임원그룹이 종업원을 이끌고, 다시 이들이 관계사를 견인하는 유기적 관계를 맺고 있는 만큼 이들 3곳의 주요 주주집단 지지없이는 롯데그룹을 장악할 수 없다. 임원과 직원 그리고 관계사 집단의 지분율은 47.8%에 달한다.
실제로 신동주 회장은 롯데홀딩스 지분 28.1%를 보유한 광윤사의 최대주주에 올라섰음에도 임·직원, 관계사 주주군의 지지를 얻은 신동빈 회장에게 3전 3패했다. 사실상 서 씨가 롯데그룹 경영에 나서는 것은 '미션 임파서블'에 가깝다는 게 롯데그룹 안팎의 공통된 견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신 총괄회장은 왜 서 씨 모녀에게 두 자녀보다 많은 지분을 넘겼을까.
재계는 물론 일반 대중들 사이에서도 갖가지 추측이 난무하고 있지만, 대체로 신 총괄회장이 자신의 '샤롯데' 서 씨와 신유미 씨를 보호하기 위해 일종의 안전장치를 둔 것이라는 관측이 통념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단적으로 신 총괄회장의 두 번째 부인 시게미쓰 하츠코 여사는 광윤사 지분 10%를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츠코 여사는 롯데그룹 내 핵심 관계사의 지분을 보유함으로서 신 총괄회장 변고 시에도 총수일가 내에서 영향력과 금전적 안정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같은 맥락에서 신 총괄회장이 일본 롯데홀딩스 지분을 서 씨 모녀에게 넘긴 것으로 보인다. 하츠코 여사보다 총수 일가 내 지지기반이 약한 서 씨 모녀에게 그룹 지주사 지분을 넘김으로서 가족 구성원으로서 영향력과 경제적 안정을 주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롯데 사정에 밝은 재계 관계자는 "신 총괄회장이 일신상 문제가 발생할 경우 그룹 내 자신의 영향력을 유지하는 것은 물론 서 씨 모녀를 보호하기 위한 차원에서 지분을 넘긴 것으로 보인다"면서 "여기에 서 씨를 향한 애틋한 마음도 한몫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1977년 당시 연예계 등용문으로 통용되던 미스롯데 1회 대회에서 미스롯데로 선발된 서 씨는 1978년 TBC 드라마 '상노'에서 용녀 역을 맡으며 일약 톱스타 반열에 올랐다. 절정의 인기를 누리던 서 씨는 1981년 돌연 연예계에서 은퇴했다. 이후 '강력한 스폰서'설이 나돌았고, 1983년 낳은 신유미 씨를 5년 뒤인 1988년 신 총괄회장 호적에 입적하며 소문은 사실로 밝혀졌다. 무려 37살의 나이 차이를 뛰어 넘은 로맨스(?)인 셈이다. 이후 서 씨는 2006년 말 롯데시네마에 팝콘 등을 공급하는 '유기개발'과 롯데백화점에 음식점을 입점해 운영하는 '유원실업' 등으로 사업가로 변신했다. 신유미 씨 또한 호텔롯데 고문을 역임하기도 했다.
번외로 롯데라는 사명은 젊은 시절 독일의 대문호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탐독했던 신 총괄회장이 소설 속 여주인공 '샤롯데'의 이름에서 따왔다는 설이 유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