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명재곤 기자] ‘님을 위한 행진곡’ ‘단결 투쟁가’가 ‘돌아와요 부산항에’와 함께 지난 7일 오후 2시께 서울 시청 인근의 한진그룹(대항한공)본사 앞에서 울려 퍼졌다. '살리자 한진해운’구호가 선명하게 박힌 빨간 머리띠를 두른 500여 명의 부산지역 시민단체 및 해운기관 종사자들이 한껏 목청을 돋우면서 ‘조양호 회장’을 애타게 찾았다.
한진그룹 본관 통행로와 주차장 출입구는 방패를 세운 100여 명의 경찰 측이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포진했다. 오고가던 시민들은 다소 생경한 풍경에 걸음을 멈췄고 국내 취재진은 물론 외신기자도 현장을 기록하기에 바빴다. 한진해운 사태는 이미 국내를 넘어 세계적 이슈가 됐다. 미국 정부당국이 우리 정부와 한진해운발 물류차질 해소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급히 방한할 정도이니 말이다.
해운산업의 호황시절을 기억하는 많은 이들이 심히 당황하고 있다. 어쩌다가 경찰이 한진그룹 정문을 방어하는 사달마저 발생했는지, “할 말이 없다”는 게 해운업계 한 임원의 탄식이다. "정부와 금융권, 대주주가 설마설마하다가, 그리고 뒷짐만 지고 우왕좌왕하다가 세계 7위 해운사가 무너졌다"고 안타까워했다.
한진해운의 법정관리 가능성은 정부가 1년여 전 해운업 구조조정 문제를 다룰 때부터 하나의 시나리오로 충분히 예견됐다. 최악의 상황을 당장 모면할 방법 또한 대규모 유동성 공급(자금수혈)이 유일하다는 것도 이해관계자들은 십분 알고 있었을 게다.
하지만 유동성 보강 규모를 두고 많게는 1조 원 이상의 차이를 보이면서 당국(채권단)과 한진그룹이 치킨게임을 했고 와중에 우호 혹은 책임 회피 여론 조성 입씨름만 하다가 회생의 골든타임을 놓치고 침몰직전 위기상황에 내몰린 게 오늘의 처지이다.
시장 전문가들은 무엇보다도 지난 5월초 한진해운 자율협약 신청이 받아들여진 후 8월말 법정관리에 들어가기까지 4개월 여 동안 유동성 보강을 위한 구속력있고 상호 신뢰할 만한 강력한 자구책을 한진측과 채권단이 만들어 내지 못한 점을 아쉬워하고 한편으로는 문제제기를 한다.
채권단은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사재출연을 포함해 대주주 및 그룹측의 실효성있는 자구안을 계속 요구했지만 한진측은 속사정이야 어쨌든 요구를 충족하지 못했다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채권단의 7000억 원 대와 한진측의 4000 억 원 대의 자구안 셈법이 간극이 컸다. 특히 한진그룹의 반(半)페이퍼상의 자구책은 현대상선 회생을 위해 현대그룹측이 결단한 현대증권 매각, 용선료 조정, 대주주 감자등의 그 것과 비교되면서 당국의 마음을 사지 못한 게 사실이다.
정책 당국도 역할과 책임을 온전히 다했다고 보기 힘들다. 정책결정 능력의 한계와 수준을 보여줬다는 비판이 정치권안팎에서 비등하다. 정부가 해운산업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체 단지 원칙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하겠다)했다는 명분에만 집착, 사후 대처 플랜이 허술했다는 질책의 목소리가 크다. 물류대란에 국가 신인도까지 훼손되는등 후폭풍이 몰아치자 관계부처 합동대책반을 부랴부랴 꾸리는 것을 보면 해운 시장의 작동원리와 사태의 심각성을 제대로 모르는 것 같다는 것이다.
해운업이 조선업과 철강업을 선행한다는 산업특성을 모르고, 해운물류업에 대한 종합적 이해없이 금융논리로만 뇌관을 건들인 게 아니냐는 지탄도 일각에서는 나온다.
한진해운발 물류대란이 글로벌 이슈로 확산되자 정부와 한진그룹간 책임회피 공방도 볼썽사납게 전개되면서 한진해운의 항로가 극히 불투명하다. 완전 파산설도 꿈틀대고 한편에서는 '한진해운 청문회'개최설도 거론된다.
기업의 파산은 경영인의 최대 수치이고 평생 짊어질 짐이다. 국내 유일의 육해공(陸海空)종합 수송그룹이 삼각편대 중 '해운'이 자칫하면 포말로 사라질 처지에 놓였다.
그룹 창업주 고(故) 정석 조중훈 회장이 1966년 베트남 퀴논항에서 본 미국 화물선에 매료된 뒤 다음 해에 정식 해운사 '대진해운'을 설립한지 꼭 50년 만의 일이다. 우리나라 해운의 현대화를 다졌던 정석이라면 현 위기상황을 어떻게 돌파할련 지 문득 궁금해진다.
지난해 발간된 조중훈 회장의 평전격인 '사업은 에술이다<이임광, 청사록>'에 따르면 정석은 "백지종군(白紙從軍)의 심정으로 외환은행의 조건을 따르겠디"며 1987년 대한선주(당시 대한상선)를 인수해달라는 정부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국내 최초의 국영기업이었던 해운공사가 민영화되면서 개명한 대한선주는 1980년대 중반 해운불황의 파고를 이겨내지 못하고 부도처리 직전에 몰렸다. 당시 정부는 대한선주의 도산은 세계시장에서 신용을 잃어 우리 해운업계 전체가 타격을 입을수 있다고 판단, 한진해운에게 도움을 청했고 조중훈 회장은 '숙명처럼' 부채 4000억 원을 떠안으면서 인수했다.
그때 정석은 이순신 장군의 백의종군(白衣從軍)에 빗대 백지종군을 언급하면서 국익을 먼저 생각하는 모습을 보였다. 정석은 다음해인 1988년 한진해운에 대한선주를 합병하고 첫 조회에서 직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대한선주를 인수한 것은 노후 선박과 부채등 유형자산을 인수한 것이 아닙니다. 그동안 우리나라 해운을 이끌어왔던 직원들의 경험과 노하우를 인수한 것입니다."
한진해운의 결말을 섣불리 예단할 수는 없지만 수습과 회생의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면 정부도 채권단도, 조양호 회장도 30여 년 전 한진해운이 대한선주를 인수할 때의 정석의 판단과 결정을 한번쯤 되새겨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한진해운의 컨테이너선들이 부산항에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은 부산시민만 가지고 있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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